아빠 아아!!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아내와 했던 버릇이 고스란히 나옵니다. 그럴 때마다 아직 덜 바뀌어서 다시 그런 쓴 뿌리가 나오는 것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빠 아아!!
아이가 아빠에게 말을 할 때는 들어주되 끝까지 잘 들어주기만 하라는 아내의 조언을 잘 실천하다 보니 딸이 가끔 제게 말을 걸고 하소연하는 날도 있습니다.
"아빠!!"
"으응?"
"오늘 학교에서 아이들과 일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자꾸 한 아이가 나를 뒷담 해요. 그러면서 내가 친해진 아이들에게까지 뒷담 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친한 애들도 긴가민가하면서 자꾸 저를 빼고 놀기도 해요."
"그럼 다른 애들도 있잖아!"
"있죠!! 그렇지만 베프라서 걔내들이 우선이에요. 다른 애들하고 놀다 보면 걔네들과 서먹해져요."
"그러면 안 되지. 그럴 거면 정확하게 너 기분을 말해!!"
"그러면서 앞에서나 뒤에서 없는 사람 말하지 말자고 그래!"
"................."
"그리고 찐친들은 흔들리지 않게 잘 지내고"
"근데 어떤 애들은 늘 사주면서 꼬셔요. 그러면 애들이 몰려요. 나만 따돌리고."
"잘 지켜봐! 매 순간 속상해서 왕따라고 그러지 말고."
"우리 때도 그런 애들 많았어. 맨날 매점 가서 빵 사주고 놀자고 그러고"
"그래도 결국에는 좋은 친구들에게로 돌아가서 놀더라"
"돈 써서 걔네들하고 경쟁하려고 하면 너 주머니 구멍 난다!!"
"친구랑 진실되게 말하고 놀면 된다. 걱정하지 말고. 왕따 되는 거"
"또 그럴 일은 없어! 미리 걱정하지 말고."
"................"
"아빠!!!"
"아빠!!!!! 아아아 앗!!!!"
"어? 어?"
"그만해요. 나 방에 갈래요. "
"어... 왜??...."
대화는 끝났습니다. 아이의 "아빠 아아아!!!!"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황이 끝났습니다. 이 기망(이번 기회는 망쳤다)입니다.
아이가 왕따를 당하거나 오해의 올가미에 휩싸여서 아주 심하게 마음 상처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아이들과 어울리며 애매한 분위기이면 쉽게 다시 힘들어합니다. 말을 더 이상 못하고 그냥 지내기 시작합니다. 그런 상황이 또 이어질까 봐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야! 너의 마음에 집중해! 항상 널 도울께!"라면서 아이의 마음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그런 상황이 또 올까 봐! 아이가 또 스스로 미리 움츠려들까봐 아무것도 못하고 가방만 등에 매고 다닐까 봐 아직은 하교한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아이가 저와 대화하다가 버럭 하면서 "아빠 아아아 아!!"하고 방에 들어간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빠 아아아!!! - 아빠! 제 얘기를 듣기만 해 주세요. 뭔가 방법을 제시하려고 하지 말고요. 들어만 주세요!!
아이가 아빠를 설득하면서 "이렇게 해주세요. 아빠!"라고 하는 건 '선물'밖에 없습니다. 거의 당면한 상황 속에서 느낀 비참함과 당황스러움에 대해 아빠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이제 아빠가 들어주는 것 같아서요. 한참 동안 자기 마음을 말하면서 풀고 있는데 아빠가 '~라테'로 빠져서 계속 말하고 있으니까 "아빠 아아아 아!!!"라면서 '대화 그만!!'이라고 한 것입니다. 들어달라고 말했는데 아빠가 더 많이 말해서 말할 수가 없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으로요.
어떻게 그런 뜻인지 알았을까요? 아이가 진짜 먹고 싶었던 젤리가 있었습니다. 당장 사주지는 못했고 아이가 거의 잊어버렸을 즈음에 기억하고 있다가 사줬더니 아이의 기분은 엄청 좋아졌습니다. 그럴 때 얼른 물어봤습니다.
"저번에 왜 그랬어? 아빠아!! 하고 더 이상 말 안 했잖아!!"
"아~ 그거요? 아빠가 자꾸 아빠 말만 해서요."
"엉?"
"내가 속상해서.. 그냥 아빠가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요. 그럴라고 말 시작한 거거든요."
"아?.... 알겠어. 다음에는 꼭 그럴게!!!"
"네. 고마워요. 다음에도 젤리 또 사줘요."
"응. 알겠어... 고맙다. 말해줘서."
그래서 아이의 단 한마디 "아빠아아앙아!!!"의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와 대화하면서 '잘 들어주세요. 그것만 해도 성공이에요.'라는 아내의 조언을 들었지만 종종 제 감정이 앞선 탓에 아직도 잘 못합니다. 뭔가를 듣다 보면 자꾸 뭔가 해결해주려고 하고 제시하는 습관이 나옵니다. 제 자신도 잘 못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내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라는 입장이다 보니 제가 더 나은 존재라고 착각하는가 봅니다. 그래도 그 말 뜻을 몰라서 어리둥절했던 아빠에게 말뜻을 말해준 딸에게 고마웠습니다.
아이의 말을 번역하다 보니 늘 저의 현주소가 파악됩니다.
잘하는 아빠가 아니라 여전히 바닥에서 올라오다가 다시 내려가는 수준입니다. 한참 멀었습니다.
아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남편이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아이의 말을 잘 이해할 리가 없습니다.
말을 듣는 사람이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사실 아이들 말을 번역하는 게 참 창피한 일입니다. 세 아이와 살고 있으면서 모든 아이들 상황을 세 번씩 겪는데도 매번 잘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런 경험 없이 대해야 하는 큰아들에게는 미안합니다.
이런 상황을 겪을 때마다 아내는 이불킥, 무언의 소리 질러를 합니다.
이 상황이 자주 반복되는 것은 가슴복장 터질 일이라면서 참견하고 한마디 날립니다. 그러면 또 감정싸움으로 번집니다.
아이들 말을 번역하고 있는 요즘, 아이들 말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것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러다 보니 길에서 아장거리고 뒤뚱거리는 아이를 보면 "아! 저 때 우리 아기들 말 잘 들어줄걸!!"이라면서 혼잣말로 엄청 후회합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지금 사춘기 2명, 아직 어린아이 1명과 지내면서 더 잘 지내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또 다짐했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가정의 평화먼저 잘 만들어야 하는 남편, 아빠의 사명을 아직은 잘 못 해내고 있는 게 현주소이니 더 잘해야겠지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Patrick F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