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로 가는 길, 시작은 암 진단이었다

by 이하린

“선생님, 저도 발리에 갈게요!”


잔뜩 흥분해서 이렇게 말한 건 2025년 1월이었다.

우리 요가원 비하요가에서 4월에 떠나는 '발리 판차코샤플로우 지도자과정(Teacher Training Course, TTC) & 리트릿' 인원을 모집 중이었다.

참가 인원은 총 12명, 신청 속도가 놀라울 만큼 빨랐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하는 사이 빈자리가 점점 줄어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국 마지막 한 자리가 남았다는 소식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일단 질러 버렸다.


“하린 선생님까지 갈 수 있어요. 이제 마감이네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다행이라는 마음도 잠시, 이내 걱정과 불안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으로 신청하긴 했는데…

나 정말 갈 수 있는 걸까.


직장인이 뜬금없이 일주일 휴가를 내는 건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발리 TTC 모집 안내가 예전부터 떴는데도, 정말 간절하게 가고 싶었는데도 언감생심 꿈도 안 꿨던 이유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데서 휴직의 기회가 찾아왔다.

생전 처음 받아본 갑상선 초음파에서 9mm짜리 암 덩어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제 겨우 서른 초반. '암'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 끼어들 줄은 몰랐다.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대학병원에 전화를 돌려 서둘러 수술 날짜를 잡았다.

2월 수술, 충분히 회복한 후 6월 복직.

그렇게 몸과 마음을 돌보며 잠시 쉬어갈 생각이었다.


그때 우연히 발리 일정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있자... 4월 중순이라니.

수술 두 달 뒤라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요가에 푹 빠져 지낸 지도 벌써 4년.

요가의 성지라 불리는 발리에 갈 생각을 하자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갑상선암 관련 포털 카페를 뒤지고 주변 수술 경험자들에게 조언을 구해봤다.

웬만하면 수술 한 달 뒤부터 운동이 가능하고 비행기도 탈 수 있다고 했다.

과한 전굴이나 후굴 동작만 아니라면 요가 동작을 취하는 데에도 큰 문제가 없을 듯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피로감이 심할까 봐 걱정되긴 했지만 이미 앞서 달려버린 내 마음을 멈출 정도는 아니었다.


고민 끝에 내 회복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발리에서 '천하제일 요가경연대회'를 치르겠다는 게 아니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공기 마시며 마음껏 수련하고 싶은 게 전부였다.

설사 몸 회복이 더뎌 과정을 완벽하게 따라가지 못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요가의 성지에서 마음 편하게 즐기며 ‘살아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불행인 줄로만 알았던 수술이 내게 뜻밖의 선물이 되어 돌아왔다.

그 선물이 가리키는 방향엔, 발리가 있었다.



이전 01화프롤로그 - 멈춤이 데려다준 곳, 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