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터널 끝에서, 요가를 만나다

by 이하린

드디어 발리로 향하는 날이다.

밤비행기였지만 설레는 마음에 눈 한번 붙이지 못했다.

억지로 잠을 청하는 대신 내가 어떻게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고, 어쩌다 이 먼 발리까지 가게 되었는지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첫 요가 수련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른 살 가을 무렵이었다.

20대 초부터 간헐적으로 찾아오던 우울감이 내 안에서 꽤 크게 몸집을 불리던 때였다.

터널 속을 빠져나온 지금에 와 돌아보면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때 날 지배한 건 분명 깊고 짙은 우울이었다.


신경숙 작가가 일본의 츠시마 유코 작가와 함께 쓴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에는 “나는 잃은 게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늘 무엇을 잃어버린 듯한 마음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오랜 시간 나는 내가 무엇을 잃었기에 이토록 헛헛한가 수없이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을 마구 짓누르는 것 같았고, 매일 벌 받는 기분으로 하루를 견뎠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날이면 낮이고 밤이고 밖으로 나가 발바닥이 뜨거워질 때까지 골목을 걸었다.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까지 멀리 가버렸다가, 낯섦과 배고픔에 질려 출발 전보다 더 무기력해진 채로 집에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추석 연휴.

어김없이 울적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던 중 문득 혼자서 멀리 떠나고 싶어졌다.

곧바로 고속버스를 예매해 3시간여 만에 속초에 도착했다.

유명하다는 물회 전문점에서 거하게 한 그릇을 먹고 청초호를 한 바퀴 걷고 나니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인근 책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가 눈에 띄는 책을 아무거나 집어 들었다.

제목이 <아무튼 요가>였다.

작가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 요가를 만나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결국 강사 자격증까지 따 요가인으로 새롭게 사는 여정을 담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전까지 전혀 관심 없던 요가가 참을 수 없이 궁금해졌다.

요가에 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직접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서울로 돌아와 동네 요가원 몇 군데를 추렸다.

좋은 요가원을 고르는 기준 같은 건 몰랐다.

집에서 가깝고 후기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골라 처음 가본 곳이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비하요가다.


요가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어릴 적 맡아본 크레파스 냄새 같은 팔로산토 향이 코끝을 스쳤다.

둥그런 러그와 작은 찻잔들, 촘촘하게 꽂힌 수십 개의 요가 매트가 눈에 들어왔다.

원장인 비하샘은 내가 살면서 처음 만난 요가인이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이름 모를 절에서 사람 좋은 스님을 마주했을 때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가 요가인들 사이에서 꽤 이름난 스승이라는 사실은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요가 매트를 밟았다.

삶을 완전히 바꿔줄 첫 수련의 순간이 이제 막 펼쳐질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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