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증 시대의 연애(10)
(전 편에서 이어짐)
두식이가 바람을 피운 건 명백했다. 그런 쓰레기는 면상을 볼 필요 없이 단칼에 끊어야 했다.
그런데, 한번만 더 만나고 싶었다. 딱 한번만. 우리 사이가 무엇이었냐고 묻고 싶었던 것 같다.
시청역에 도착했다. 저 앞에 두식이가 서 있었다. 꽃다발을 들고서.
“이게 뭐야?”
“내가 주는 거 아냐. 우리 엄마가 너 생일이라고 주는 거야.”
예전에 두식이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 아줌마는 고기를 구우며, 두식이가 내 덕에 많이 밝아졌다며 연신 고마워했다. 고기를 다 먹고 음식점을 나오기가 무섭게 아줌마는 벤츠를 끌고 사라졌다.
그 벤츠 아줌마가 나한테 꽃을 보냈다고? 받을 수 없다. 지하철 환풍구 위에 꽃을 내려놓았다. 니가 알아서 들고 가든지 버리든지.
마지막이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미 통화로 모두 들었으니 이제 끝만 내면 되는 거였다. 날 사랑하긴 했느냐고 물었다. 진짜 삼류 영화같네. 마지막까지 통속적이고 식상하구나. 두식이는 태어나서 가장 사랑했고,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나였다고 말하며 흐느꼈다.
나는 두식이를 탓하지 않았다. 바보처럼. 그저 그가 나를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며 나를 원망했다. 두식이에게 잘못했던 일이 많았다. 싸우다가 화가 나서 가방 들고 그대로 나와버린 일, 갑자기 면접이 잡혔는데 나와의 약속이 먼저 아니냐며 토라진 일, 나랑 있다가 친구들 보러 간다고 했을 때 화낸 일…. 이 모든 게 내 잘못이었다.
난 상대방이 내게 흥미가 사라져서, 혹은 내가 싫어져서 멀어지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못되게 굴어서 상대방이 떠나는 건 견딜 수 있었다. 상대방이 떠난 건 내 잘못이니 반성하고 추스르면 되니까. 이런 꼴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내 잘못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회사에 가고, 수업이 있는 날엔 학교에 갔다. 시시때때로 견딜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지만 가까스로 눌러놓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모든 경계를 풀고 마음을 준 사람. 부모만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한 사람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넌 왜 멍청한 실수를 해서 우리의 완벽한 세계에서 빠져나갔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잖아. 넌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한 거야.'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한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었다.
두식이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 마주 앉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두식이도 아무 말 없었다. 잘못했다고 빌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를 했던 내가 멍청했다. 내 앞에 앉은 그는 사과 한 마디 없었다.
마침내 입을 연 그가 말했다.
“류미야, 그때 제주도에서 봤던 개 두 마리 기억나? 그때 마치 세상의 끝 같았잖아.”
두식이가 흐느꼈다. 나도 함께 울었다. 용서를 구하지 않은 그에게, 너를 용서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완벽한 그 세계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식이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나도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어 우리는 해피엔딩이었다, 였으면 좋았으련만. 역시 그렇지 않았다. 개버릇 남주지. 그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심지어 세상의 끝을 함께 보았더라도.
다시 만나면서, 난 두식이에게 집착이 심해졌다. 연락이 뜸하다 싶으면 화가 났고, 나를 정말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두식이도 예전같지 않았다. 싸우면 달래주던 사람이 사소한 말다툼에도 연락을 끊기 일쑤였다. 메시지도 뜸해지고 만나는 횟수도 적어졌다. 이럴수록 '내가 널 용서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하며 분노했고, 한편으론 또 헤어지게 될까 봐 많이 불안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그의 핸드폰을 보게 되었다. 평생 남자친구 폰 검사를 안 하는 걸 자랑처럼 여기던 내가 바닥까지 내려간 순간이었다. 바닥에서 본 건 시궁창이었다. 두식이는 여자 몇 명과 카톡으로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만나자느니, 자긴 여자친구가 없다느니, 심지어 야한 사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진짜 더러운 놈이었구나.
내가 알던 두식이가 아니었다. 처음 사귀자고 할 땐 그렇게 뜸들이고 조심스럽더니, 이렇게 가벼운 사람이었어? 두식이가 새로 사귄 친구들이 질이 안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십대 후반씩이나 돼서 그런 데 동조했을 줄은 몰랐다. ‘우리 애는 원래 착하다'면서 남의 악질적인 애들한테 물들었다고 탓하는 엄마가 이런 건가?
한창 연애하고 있었을 때조차 걔는 나쁜 놈이었을지도. 진실은 지금도 모른다. 그러나 내 소중한 시절을 함께하고, 처음 느끼는 감정을 경험하게 해준 사람임에는 분명했다.
나는 그때 비로소 세상의 끝에서 걸어나왔다. 사실 둘만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나 혼자만의 세계였다.
우리는 사랑이었을까?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와는 다르다. 사랑은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각자 상대에게 갖는 일방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그 사람 또한 내게 어떤 감정을 가진다. 서로 동시에 사랑한다 해도 사랑은 같은 모양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것으로 존재한다. 나는 사랑을 했다고 생각한다. 두식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랑을 했지만 결국 사랑은 어떤 대단한 일을 하지 못했다. 그저 그와 함께하는 시간에 쏟은 내 감정이 있었을 뿐. 이 일을 겪은 후 더 이상 사랑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적으니. 나는 앞으로 남자를 볼 때 단 한 가지만 보기로 다짐했다. 백프로 믿을 수 있는 사람. 내게 완전히 무해한 사람.
그때부터 더 심해졌던 것 같다. 누굴 만나면 바닥까지 파고들어 상대방을 검증하는 버릇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