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남학생 A는 학기 초부터 같은 반 남학생 B, C, D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B가 A를 불러내 때렸고, C는 옆에서 A를 조롱하고 욕했고, D는 A가 맞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신고하면 퍼트리겠다며 협박했다. A는 학교 가기가 무서워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다가, 담임 선생님의 설득으로 사정을 털어놓았다. 담임선생님은 즉시 학교 내 전담기구에 B, C, D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이제 피해학생 A는 학폭위가 열리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걸까?
답은 ‘No’ 다.
학폭위가 피해학생 편이 아니어서일까? 전혀 아니다. 학폭 절차는 전적으로 피해학생의 의사에 따라 진행된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학생이 피해라고 이야기하면 학폭으로 접수할 수 있다. 교육청 심의위원회까지 가는 것도 피해학생에게 달려 있다. 학폭절차를 ‘피해자 중심의 제도’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하지만 아무리 피해학생을 위해 준비된 절차여도 사실관계는 피해학생이 직접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학교든 심의위원회든, 학생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피해를 겪은 것은 학생이고, 선생님이나 심의위원회 위원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아이가 사안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어하니 알아서 진행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부모님이 있는데, 자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생이 피해진술을 해주지 않으면 구체적인 피해사실을 방법이 없다. 피해를 당한 모든 곳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 해도 보관 기간이 지나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다른 학생들에게 목격진술을 강요할 수도 없고, 받는다 해도 피해학생 자신만큼 피해상황을 자세히 진술해 줄 수 없다. 결국 피해학생 스스로의 진술이 피해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진술은 자세할수록 좋다. 학생들은 ‘때렸다’, ‘욕했다’처럼 간략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은 직접 경험한 내용이라 그 정도 진술로도 스스로 피해 상황과 정도를 떠올릴 수 있지만, 제삼자인 선생님이나 심의위원들은 알 수 없다. 따라서 ‘때렸다’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몇 대를 어느 정도 강도로 때려서 어디를 얼마나 다쳤다’로, ‘욕했다’ 역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말을 몇 번이나 해서 어떤 기분이었다’로 구체화해야 한다.
객관적인 자료도 도움이 된다. CCTV나 휴대폰 동영상, 녹음파일, 사진, SNS 대화 캡처내용, 진단서 등을 제출하면 피해진술에 힘이 실린다. 단, 자료 양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사안과 관련 없는 자료를 섞어서 내면 오히려 관련 있는 자료를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동영상이나 녹음파일의 길이가 긴 경우에는 피해 관련 부분을 특정해 주는 것이 좋다.
자세한 피해 진술, 이것은 단지 학폭 절차 진행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어려움을 털어놓고 이해받는 경험은 사안을 매듭짓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학생을 보호하고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의 성장을 돕는 것’이 학교폭력예방법의 목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