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분야에는 선구자가 있다. 전기를 생각하면 에디슨이 떠오르고 자동차를 보면 헨리 포드가 상기되듯이 인인덱스 펀드도 마찬가지다. 인덱스 펀드를 통해 패시브 투자를 세상에 알린 선구자의 이름은 바로 잭 보글(Jack Bogle)이다. 동시에 현존하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중 블랙록(Blackrock)과 함께 가장 큰 뱅가드(Vanguard Group)의 설립자다.
출처: Vanguard
잭 보글은 1951년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학부 시절 우연찮게 Fortune지의 뮤츄얼 펀드 산업에 대한 글을 보고 보글은 졸업 논문으로 <뮤추얼 펀드의 경제적 역할: The Economic Role of the Investment Company>을 작성했는데 당시 뮤츠업 펀드 산업 규모는 3 Billion USD(~4조 원)으로 태동기에 불과했다.
이 논문은 당시 펀드 업계의 큰손이었던 웰링턴 펀드(Wellington Fund)의 창업자인 월터 모건(Walter Morgan)의 눈에 띄어 보글은 1951년 졸업 후 웰링턴 펀드에 입사해 커리어를 시작했다. 보글에 대한 모건의 신뢰는 처음부터 두터웠는데 입사 전부터 모건은 보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는 업계에 있는 우리보다 펀드 산업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He knows more about the fund business than we do“
1929년에 설립된 웰링턴 펀드 단 하나의 펀드만을 운용했는데 이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펀드이며 전체 자산의 2/3을 주식에 그리고 1/3을 채권에 넣어 분산 투자의 운용 방식을 고수한다. Wellington Fund는 현재 Vanguard Wellington Fund로 불리며 매니징 되는 자산 규모는 103.6 Billion USD(~120조 원)에 달한다.
보글은 웰링턴 펀드에 입사한 이후 승진 가도를 달리는 데 펀드의 운용만큼이나 상품 전략에도 탁월했다. 1958년 회사의 상품 라인업을 다각화해 주식과 채권에 분산 투자를 하는 Wellington Fund에 이어 100% 주식에만 투자하는 Windsor Fund를 출시했다. 그리고 입사한 지 14년 만에 35세의 나이로 보글은 웰링턴 펀드의 부사장(Executive Vice President)이 되는데 보글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이때 인생 최악의 투자를 하게 된다.
부사장이 된 후 보글은 1966년에 보스턴에 위치한 Thorndike, Doran, Paine & Lewis 투자 회사를 인수한다. 해당 기업은 30 million USD(360억 원) 가량의 소규모 자산을 운영했는데 당시의 시대상이었던 Go-Go 스타일에 어울리는 운용 전략을 구사했다.
1960년에서 1970년도는 미국은 Go-Go 시대라고 불리는데 당시의 시대상은 컴퓨터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신경제’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찼다. 실제로 1969년에는 NASA의 아폴로 11호 미션이 성공했고 기술 주식들을 위주로 엄청난 주가 상승이 나타났다. 이는 최초의 테크 버블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닷컴 버블보다 30년을 앞선 사례다.
낙관적인 미래상과 기술주 중심의 증시 과열에 편승해 당시 펀드들이 우후 죽순 생겨났고 이 펀드들은 시대상에 걸맞게 Go-Go Fund라고 불렸다. 2017년도 있었던 전 세계적인 비트코인 상승장을 생각해 보면 Go-Go Fund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거의 50년을 앞선 ‘가즈아’와 ‘떡상’과 같은 표현이다. Go-Go 시대의 열망은 1970년 5월의 증시 폭락과 함께 사라졌는데 당시 대부분의 테크 회사들의 주가가 80%가량 증발했다. Go-Go Fund들의 말로가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글이 Thorndike, Doran, Paine & Lewis을 인수한 배경에는 보수적으로 운용됐던 웰링턴 펀드의 기업 문화에 Thorndike, Doran, Paine & Lewis의 공격적인 스타일을 더해 Go Go 시대를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보글의 전략은 초기에는 유효했고 1970년에는 월터 모건을 이어 웰링턴 펀드의 CEO가 된다. 하지만 1970년의 주가 폭락 그리고 1973년의 석유 파동으로 시작된 1973-1974년의 베어 마켓으로 보글의 CEO 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의 간판이었던 웰링턴 펀드는 1965년 2 billion USD(2.4조 원)의 규모였는데 이는 1970 폭락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480 million USD(5,800억 원)으로 80%가량 쪼그라들었다. 당연하게도 웰링턴 펀드를 운용하는 웰링턴 회사의 주가 또한 급락했는데 1968년 주당 50$이었던 주가는 1975년이 되자 4.25$을 기록하게 됐다. 그리고 잘못된 인수 합병의 대가로 보글은 1974년 웰링턴 이사회로부터 쫓겨난다. 즉 CEO로서 회사에서 잘린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던 웰링턴에서의 퇴임은 보글 인생에 있어 크나큰 전환점이 되는데 빈 손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보글은 웰링턴에 새로운 구조의 펀드 하우스 설립을 제안한다. 보글의 제안은 웰링턴에서 승인돼 1975년 5월 1일 1.8 billion USD(2.2조 원)의 운용 규모에 50명 남짓한 직원들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오늘날 8.5 trillion USD(~1.1경 원)을 운용하는 Vanguard Group의 시작이다.
보글 본인에 따르면 Thorndike, Doran, Paine & Lewis 인수의 실수에서 배운 것은 시장을 이기려 하는 액티브 투자보다는 낮은 비용으로 전체 시장을 추종하는 패시트 투자가 장기적으로 유효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Vanguard의 설립과 함께 보글은 자신의 이상을 현실화시킨다. 1974년 MIT 대학의 교수 폴 세뮤엘슨(Paul Samuelson)이 Journal of Portfolio Management에 발표한 Challenge to Judgment에서 영감을 받아 보글은 1976년 업계 최초로 First Index Investment Trust을 만들어낸다.
Vanguard 500 Index Fund라고 불리는 이 펀드는 최초의 인덱스 펀드이며 미국의 전체 주식 시장을 추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0년 6월 말 기준으로 533.6 Billion USD (640조 원)의 규모가 된 이 펀드는 뱅가드의 상징이자 전설이다. Vanguard 500 Index Fund는 다른 Index Fund와 ETF들과 함께 현재 뱅가드 운용 규모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단 시작부터 창대 했던 것은 아니다. 되려 너무나 볼품없었는데 초기 설정 금액은 11 million USD(132억 원)에 불과했다. 펀드 규모만 초라했던 것이 아니었다. 업계에서 인덱스 펀드를 바라봤던 시각 또한 차갑기 그지없었다.
“미국 답지 못하고 평범함으로 향하는 가장 확실한 길”
“Un-American and Sure Path to Mediocrity”
여기서 미국 답지 못하다는 말은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로 삶을 개척해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 Mindset)에 어긋남을 의미한다. 일견 이는 그럴싸한 비판인데 최소한의 비용으로 전체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얻겠다는 인덱스 펀드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최소한의 노력과 의지(Un-American)로 지극히 평범한 결과(Sure Path to Mediocrity)만을 내겠다는 표현으로 들렸을 수 있다. 열심히 살아 삶을 개척해야 하는 미국의 정신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즉 이는 "게으른 투자"였다.
그러나 역사는 보글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대표적인 지수인 S&P 500 Index을 추종하는 자금 규모만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해당 금액의 규모는 11 trillion USD(1경 3천조 원)에 달한다. 압도적인 규모의 글로벌 자본이 지수에 연동돼 운용되고 있다.
보글은 분주하며 빈번한 포트폴리오 조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한자리에 자리 잡은 나무처럼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유지하는 것이 성공적인 투자의 열쇠라고 봤다. 이유는 단순하다. 많이 움직일수록, 즉 거래를 많이 할수록, 거래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거래 비용은 증권사만을 배불릴 뿐 펀드의 실적에는 해가 될 뿐이다.
인덱스 펀드는 전체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추종한다. 이것만 보면 당대의 비난(Mediocrity)이 옳아 보인다. 하지만 인덱스 펀드는 전체 시장을 추종하기에 빈번한 포트폴리오 조정이 없다. 한 마디로 매수(BUY) 하고 기다릴(HOLD) 뿐이다. 그러므로 펀드 내에서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지 않아 저비용으로 펀드 운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비용이 낮을수록 펀드의 수익률은 시장 전체의 수익률에 수렴해 펀드의 수익률이 곧 시장의 수익률이 된다. 비용의 횡포를 피함과 동시에 복리의 마술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흔한 표현으로 모든 면에서 평범한 사람은 찾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왜냐면 모든 면에서 평범한 사람은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한 키, 적당한 외모, 적당한 벌이, 모나지 않은 성격 -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비범한 사람이다.
투자 수익률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오래 지속되는 평균(Mediocrity)은 그 자체로 더 이상 평균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지속된 평균은 종극에 압도적인 결과(Outstanding)가 된다.
잭 보글이 인덱스펀드를 고안한 것은 바퀴와 알파벳 그리고 구텐베르크의 활자와 치즈와 함께하는 와인만큼이나 가치가 있다. 인덱스 펀드는 보글 본인을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주지 않았으나 투자자의 장기 수익률을 그만큼 증가시켰다. 하늘 아래 진실로 새로운 발견이다 – 폴 세뮤얼슨
뱅가드는 다른 금융사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독특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흔히 ESG는 Environment(환경), 사회(Society) 그리고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로 기업 경영의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들로 평가받는다. 뱅가드의 경우 금융회사이기에 환경 부분을 평가하기 조금 애매하다. 하지만 사회와 지배구조와 관련된 측면에서 기타 금융회사들, 혹은 어떤 기업들 대비 압도적으로 선진적이다. 이는 미국 내 최초의 인덱스 펀드를 만든 업적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뱅가드의 지배구조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바로 탈중앙화다. 전통 자산운용사 지배구조를 다루는 데, 어째서 블록체인의 핵심인 탈중앙성이 나오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대부분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기본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적극적인 생태계 참여를 통해 시스템의 미들맨을 제거하면 그 이윤을 모두가 누릴 수 있다는 탈중앙화 이념을 근간으로 한다. 대표적인 예가 비트코인이다. 은행을 제거하고 은행이 가져가는 모든 수익과 마진을 비트코인 생태계 참여자들이 나눠 가진다는 이념이다. 이론적으로 훌륭하지만 아직 까지 현실에서 탈중앙화가 제대로 이뤄진 경우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비트코인과 탈중앙화 개념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이를 이미 실천한 회사가 있다. 바로 뱅가드다. 일반적인 회사는 비상장일 경우 대표와 같은 오너의 개인 회사로 존재하며, 상장할 경우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의 소유가 된다. 보글은 해당 구조의 아이러니를 직시했다. 운용사가 섬겨야 하는 궁극적인 대상은 다름 아니라 운용사를 믿고 상품에 가입하는 투자자들이다. 반면 전통적인 지배구조에선 운용사의 주인은 고객이 아닌 외부 주주가 된다. 보글의 표현에 따르면 한 사람이 두 명의 주인을 섬기니 이는 양립할 수 없는 구조다.
양립할 수 없는 이유는 펀드를 가입한 수익자와 펀드 회사 주식의 주주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펀드를 가입한 수익자의 이해관계는 (1) 지속적인 수익과 (2) 이를 위한 낮은 보수다. 반면 주주의 이해관계는 (1) 지속적인 배당 및 주가 상승과 (2) 이를 실현하기 위한 높은 보수가 된다. 즉 한쪽은 보수가 낮아질수록 좋고, 반대편은 높아질수록 좋으니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게 된다. 그래서 보글은 회사에 두 명의 주인이 있을 수 없음을 지적했으며 원칙으로 돌아가 운용사의 진정한 주인은 결국 펀드를 가입한 수익자임을 강조했다. 고객의 이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 바로 운용사 제1의 철칙인 신의성실 의무의 정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보글은 뱅가드를 상장시키지 않았다. 지금도 뱅가드는 비상장 회사로 남아 있다. 상장 기업인 블랙록 그리고 스테이트 스트리트와는 다르다. 더 나아가 뱅가드의 소유주는 잭 보글 개인이 아니다. PE와 VC도 아니다. 뱅가드의 소유주는 뱅가드 펀드를 가입한 수많은 투자자, 이하 고객들이 된다.
그림의 아래 부분은 전통적인 자산운용사 구조를 상징한다. 고객들이 펀드에 가입한다. 운용사는 운용보수로 돈을 벌고 과실은 상장과 비상장 여부를 떠나 운용사의 주식을 보유한 외부 투자자들에게 귀속된다. 반면 그림의 첫 번째 흐름은 뱅가드를 상징하는데, 고객이 뱅가드 펀드들을 통해 뱅가드를 소유하는 구조다.
뱅가드 구조의 가장 큰 이점으로 외부 주주를 위한 별도의 배당이 없다. 외부 배당이 없기에 뱅가드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운용 보수만을 유지한 체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 만약 외부 주주가 있으면 지속적인 보수 인하는 불가능하다. 왜냐면 회사가 실적을 내고 외부 주주들에게 배당을 해야 하기에 필요 이상의 돈을 벌어야 한다. 재차 언급하자면 이 방법은 결국 보수를 높이거나 높게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수익자들의 이해관계와 상충된다. 결국 뱅가드 펀드들이 낮은 운용 보수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독특한 지배구조에 있다. 뱅가드가 상장한 회사라면 이런 형태의 회사의 운영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지속가능하게 보수를 할인할 수 있다. ETF 시장에 경쟁이 치열해지며 운용사들은 지속적인 상품 개발과 동시에 보수 할인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0.01% 운용보수를 지닌 ETF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운용사 입장에서는 결국 제 살 갉아먹기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기업 지배구조에서 운용보수는 내려갈 수 있는 하단이 있다. 뱅가드는 어떠한가? 회사의 AUM이 커질수록 이에 비례해 보수를 더 인하할 수 있다. 현재 VOO는 0.03%지만 VOO 사이즈가 더 커지면 0.02%로 인하할 수 있다. 다른 펀드 및 ETF 또한 마찬가지다.
보글이 강조한 (1) 인덱스 투자 및 (2) 낮은 보수가 펀드에서 지향하는 방향성이라면, 뱅가드의 지배구조는 (2)인 낮은 보수를 지속 가능하게 실현할 수 있는 근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덱스 펀드만큼이나 뱅가드의 지배구조는 혁신적이다.
블록체인이 등장하기 한참 전, 탈중화라는 개념 존차 없었던 시절에 뱅가드는 이미 그렇게 설립됐다.
한 사람이 두 명의 주인을 섬길 수 없다 - 잭 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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