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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DE Aug 26. 2020

ETF의 세상(6)
-ETF의 창시자와 최초의 ETF

<ETF의 세상> 시리즈

1. ETF의 세상 인트로           

2. 펀드와 지수    

3. 인덱스 펀드(Index Fund)와 비용 

4. 인덱스 펀드와 제로섬 게임

5. 인덱스 펀드의 창시자 잭 보글(Jack Bogle)

6. ETF의 창시자와 최초의 ETF(SPDR S&P 500)

7. ETF의 구조와 장점

8. ETF의 구조와 세금 효율성

9. ETF의 구조와 투명성

10. 좋은 ETF란 <1> 

11. 지수의 산출 방법 <1>

12. 지수의 산출 방법 <2>

13. 좋은 ETF란 <2> "추적오차"

14. 좋은 ETF란 <3> "괴리율"

15. 채권형 ETF <1> "채권 기초"

16. 채권형 ETF <2> "글로벌 채권 지수와 ETF의 마법"

17. 채권형 ETF <3> "코로나 사태의 주역:  HYG & LQD"

18. 원자재 ETF <1> "원자재 기초"

19. 원자재 ETF <2> "선물 거래(Future Contact)란?"

20. 레버리지 / 인버스 ETF: 구조와 장단점



6편 ETF의 창시자와 최초의 ETF(SPDR S&P 500)


"선구자"


1975년 잭 보글은 Vanguard를 설립하고 다음 해에 최초의 인덱스 펀드(Index Fund)를 선보였다.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다른 업계에 한 눈을 팔지 않고 자산운용(Asset Management)이라는 한 길만을 고수했다. 물론 그 이후로도 보글은 2019년 1월 타계하기 전까지 금융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글은 전통적인 금융인이었다.


하지만 여기 조금 다른 선구자가 있다. 보글이 창조한 S&P 500 인덱스 펀드 개념을 기반으로 미국증권거래소(AMEX: American Stock Exchange)에 상장시켜 마치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의 이름은 네이트 모스트(Nathan Nate Most)이며 최초의 ETF인 SPDR S&P 500 ETF(SPY)의 창시자다.


출처: Institutional Investor


Most의 경력은 매우 이색적이다. ETF의 창시자이니 마치 보글처럼 평생을 금융 업계에 종사했을 것 같은 양반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첫 커리어는 바로 음향 엔지니어였다.


Nate Most는 UCLA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후 2차 대전 당시 미 해군 잠수함에서 음향 관련 엔지니어이자 물리학자로 활동했다. 이후 아시아 지역을 돌며 음향 장비 사업을 했고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Pacific Vegetable Oil 회사의 홍화씨(Safflower Seed) 트레이더로 일하며 원자재를 처음 접하게 됐다.


이때부터 Most의 커리어는 원자재 관련으로 굳어지는데 코코넛 오일 선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Pacific Commodities Exchange의 사장을 걸치고 1974년 처음 신설됐던 미국 상품거래위원회(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 의장의 기술 자문(Technical Assistant)으로도 활동했다. Most 경력의 중심에는 원자재가 있으며 Most 스스로도 자신을 Commodities Man이라 불렀다. 그리고 Commodities Man으로서 경력은 Most가 향후 ETF를 발명하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된다.


Most가 원자재 관련 경력을 쌓으며 보고 깨달은 것은 원자재 거래 과정에서 실제 실물이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가령 코코넛 오일을 예로 들면 거래하는 전 과정에서 코코넛 오일 실물은 창고(Warehouse)에 보관된다. 코코넛 오일을 사는 거래는 실질적인 오일을 창고에서 꺼내 오는 것이 아니라 창고에 보관된 코코넛 오일의 소유권(receipt)을 획득하는 것이다.


반대로 코코넛 오일을 판다는 것은 창고에서 오일을 꺼내 파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보유한 소유권을 상대에게 파는 행위다. 즉 원자재 거래에서 원자재는 움직이지 않고 창고에 보관된 소유권만 거래될 수 있다. 물론 소유권을 지급하고 창고에서 원자재를 꺼낼 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소유권이 원자재의 실물 움직임을 대신하는 점이 포인트다.


Commodity Business = Warehouse + Receipt


이는 마치 과거 유럽의 금은방들의 비즈니스 모델과 유사한다. 비싼 금을 매번 들고 다니기는 귀찮고 위험하니 이를 금은방에 맡기고 보관증을 받는다. 그리고 실제 경제 활동에선 금 대신 보관증이 화폐의 역할을 하게 됐다.


실물의 움직임 없이 실물의 소유권 혹은 소유권의 일부만을 사고파는 거래 방식은 Most가 1976년 미국증권거래소(AMEX)로 이직한 후 발명한 ETF의 탄생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AMEX의 상품 개발 총괄"


미국증권거래소(AMEX)는 뉴욕증권거래소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증권 거래소다. 주식과 상품이 거래되는 점에서 이 둘은 유사하다. 하지만 뉴욕증권거래소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증권시장인 데 상징성이 있다면 AMEX는 옵션과 같은 파생상품 거래의 중심지다. 1976년 62세의 나이에 Nathan Most는 AMEX의 파생상품 개발 총괄로 들어간다. Most에게는 원자재맨에서 금융인으로의 커리어 전환이었다.


외국 거래소들은 한국 거래소(KRX)와 달리 대체로 민간사업이다. 즉 먹고살려면 거래량이 많아야 하고 거래량이 많기 위해선 상장된 주식이나 트레이드되는 상품의 종류가 다양해야 한다. 만약 상장 기업의 수와 거래 가능한 상품이 줄어들면 거래량도 감소해 거래소의 매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런 거래소들은 자연스레 셧다운 되거나 더 큰 거래소에 인수된다.


AMEX의 파생상품 총괄 담당으로 간 Most는 부진한 AMEX의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거래량을 늘리려 했다. 이는 다시 말하면 AMEX에 상장된 상품 리스트를 다각화해야 함을 뜻한다. 당시 AMEX의 문제점은 파생상품보다는 주식 분야였는데 하루에 거래되는 거래량이 미미했다. 이를 타개하고자 Most가 관심을 가진 분야가 바로 펀드였다.


당시 펀드 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이며 전체 금융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갔다. 반면 뮤추얼 펀드의 구조는 1920년 최초 탄생 이후 변한 게 없었다. 즉 투자자들은 펀드를 가입하고 펀드에서 주식 및 채권 같은 자산을 사는 구조인 것이다.


이를 보며 Most가 했던 생각이 바로 펀드를 마치 주식처럼 자유자재로 거래할 수 있게 거래소에 상장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거래소는 펀드라는 신상품을 얻게 된다. 그리고 펀드 산업은 성장하는 산업이기에 펀드의 개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동시에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유자제로 거래가 불가능했던 펀드를 매일 거래하고 싶어 한다. 결국 이는 거래량의 증가로 귀결돼 궁극적으로 AMEX의 이윤 증대를 뜻한다.


지금 보면 그리 참신한 생각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천재적이었던 것이 펀드를 상장시키는 생각을 누구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Most가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Commodities Man으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 간단히 표현하면 Most는 마치 펀드를 원자재 거래의 창고 그리고 주식과 같은 펀드 내의 개별 자산을 창고 안의 원자재 실물로 간주한 것이다.



그리고 ETF에 대한 구상이 어느 정도 완료된 시점에 Most는 최초의 ETF가 되어 줄 펀드(ETF라는 상품의 창고가 되어줄 수 있는)로 Vanguard 설립자 잭 보글의 S&P 500 Index Fund를 선택했다. 1992년 Most는 보글을 만나기 위해 Vanguard가 위치한 펜실베니아 주의 밸리 포지(Valley Forge)를 방문한다.




"SPDR S&P 500 ETF: 최초의 ETF"


모스트는 보글을 만난 Commodities Man으로 활동했던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ETF를 제시한다. 즉 뱅가드의 S&P500 인덱스 펀드가 창고가 되고 이 창고에 대한 지분을 발행 및 상장시켜 거래소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즉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의 특성을 온전히 보존함과 동시에 자유롭게 거래를 가능케 하는 것이 ETF의 핵심이다.


단 보글은 모스트의 제안이 천재적인 발상인 것을 알았음에도 이를 거절한다. 이유는 첫 번째로 모스트가 제안한 ETF라는 개념의 궁극적인 목적이 거래량을 증대시켜 AMEX 거래소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금융 상품은 거래 때마다 거래 비용이 나가는데 이는 곳 투자자의 손실이며 동시에 브로커리지 회사들의 이익이다. 즉 저비용 / 낮은 회전율 / 전체 시장 추종이란 특성을 지닌 인덱스 펀드를 만들어 일반 리테일 투자자들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일생의 목적이었던 보글에게는 이는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 아니었다. 결국 거래량의 증가는 브로커리지 회사와 거래소 이윤의 증대이자 동시에 리테일 투자자들의 손실이라 본 것이다.


한 가지 더 언급을 하자면 보글에게 있어서 투자란 트레이딩이 아니었다. 잘 사고 잘 파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트레이딩은 기업의 주식을 장기적으로 보유해 기업의 이윤을 향유하는 투자의 이념을 지닌 보글에게 거부감을 일으켰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4편(인덱스 펀드와 제로섬 게임)에서 언급했던 투자의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가 시장 평균 대비 높은 수익률은 낸 다는 것은 반대편의 누군가는 낮은 수익률을 필연적으로 냄을 의미한다. 이는 곧 펀드를 상장시켜 ETF를 만들 경우 명목상으로는 ETF 자체가 상장지수펀드이기에 특정 인덱스를 추종하나 트레이딩의 과정에서 누군가는 ETF가 추종하는 지수보다 높은 수익률을, 다른 누군가는 보다 낮은 수익률을 내게 됨을 시사한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거래 비용을 감안하지 않은 이야기로 빈번한 거래량을 고려하면 거래비용은 모든 시장 참여자들의 수익률의 일정 부분을 깎아 먹게 된다. 즉 ETF 또한 제로섬 게임의 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모스트는 보글의 거절에도 굴하지 않고 뉴욕으로 돌아와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State Street Globla Advisors)라는 자산운용사를 만난다. 그리고 1993년 1월 22일 마침내 S&P 500을 기초로 미국 최초의 ETF를 상장시킨다. 펀드의 이름은 SPDR(Standard and Poor’s Depository Receipt) ETF이며 Depository는 펀드라는 창고를 의미하며 Receipt는 창고 안에 담긴 내용물(주식)에 대한 소유권을 뜻한다. 모스트가 평생에 걸쳐 일해 온 원자재 산업의 정수(창고 + 소유권)가 담긴 걸작인 ETF는 이후 SPY(SPIDER)라는 애칭으로 불리기 되며 현존하는 ETF 중 가장 큰 펀드(330 billion USD / 400조 원)가 되었다. 참고로 SPDR이 상장되던 1993년 모스트의 나이는 79세였다.


SPDR ETF가 첫 상장한 날 / 출처: WSJ


모스트는 ETF의 창시자로서 상품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았다. ETF라는 창고는 전통자산인 주식뿐만 아니라 금과 같은 원자재 또한 기초 자산으로 지수화시킬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전략이 아닌 액티브 전략 또한 담을 수 있다고 모스트는 예견했다. 실제로 State Street는 2004년 모스트의 임종 직전 2004년 11월 최초의 Gold ETF를 출시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액티브 전략을 구상하는 ETF들이 점차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스트는 AMEX 이후 ISHARES라고 불린 ETF 상품들을 주력으로 삼는 Barclays Global Investors의 이사진으로 활동했는데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Barclays는 재정 악화로 ISHARES 라인을 분리해 미국의 Blackrock에게 팔았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채권 전문 운용사였던 Blackrock은 이를 계기로 보글의 Vanguard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ETF 운용사로 진화하게 된다.



글로벌 3대 자산운용사의 자산 운용 규모(2019년 말 기준)


모스트와 함께 AMEX에서 ETF의 상장을 진두지휘 했던 Steven Bloom은 ETF의 성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일개 상품으로 시작한 ETF는 이내 그 자체로 산업이 되었다”

“It started out as a product, and it became an indu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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