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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DE Aug 25. 2020

ETF의 세상(5)
-인덱스펀드의 창시자 잭 보글

<ETF의 세상> 시리즈

1. ETF의 세상 인트로           

2. 펀드와 지수    

3. 인덱스 펀드(Index Fund)와 비용 

4. 인덱스 펀드와 제로섬 게임

5. 인덱스 펀드의 창시자 잭 보글(Jack Bogle)

6. ETF의 창시자와 최초의 ETF(SPDR S&P 500)

7. ETF의 구조와 장점

8. ETF의 구조와 세금 효율성

9. ETF의 구조와 투명성

10. 좋은 ETF란 <1> 

11. 지수의 산출 방법 <1>

12. 지수의 산출 방법 <2>

13. 좋은 ETF란 <2> "추적오차"

14. 좋은 ETF란 <3> "괴리율"

15. 채권형 ETF <1> "채권 기초"

16. 채권형 ETF <2> "글로벌 채권 지수와 ETF의 마법"

17. 채권형 ETF <3> "코로나 사태의 주역:  HYG & LQD"

18. 원자재 ETF <1> "원자재 기초"

19. 원자재 ETF <2> "선물 거래(Future Contact)란?"

20. 레버리지 / 인버스 ETF: 구조와 장단점



5편 인덱스 펀드의 창시자 잭 보글(Jack Bogle)


"선구자"


모든 분야에는 선구자가 있다. 전기를 생각하면 에디슨이 떠오르고 자동차를 보면 헨리 포드가 상기되듯이 Index Fund도 마찬가지다. Index Fund를 통해 Passive Investment를 세상에 알린 선구자의 이름은 바로 잭 보글(Jack Bogle)이다. 동시에 현존하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중 블랙록(Blackrock)과 함께 가장 큰 뱅가드(Vanguard Group)의 설립자다.


출처: Vanguard


잭 보글은 1951년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을 Magna Cum Laude로 졸업했다. 학부 시절 우연찮게 Fortune지의 뮤츄얼 펀드 산업에 대한 글을 보고 보글은 졸업 논문으로 <뮤추얼 펀드의 경제적 역할: The Economic Role of the Investment Company>을 작성했는데 이는 당시 태동기(~3 Billion USD / 3.6조원)에 있던 뮤츄얼 펀드 산업에 대한 논문이었다.


이 논문은 당시 펀드 업계의 큰손이었던 웰링턴 펀드(Wellington Fund)의 창업자인 월터 모건(Walter Morgan)의 눈에 띄어 보글은 1951년 졸업 후 웰링턴 펀드에 입사해 커리어를 시작했다. 보글에 대한 모건의 신뢰는 처음부터 두터웠는데 입사 전부터 모건은 보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는 업계에 있는 우리보다 펀드 산업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He knows more about the fund business than we do“



1929년에 설립된 웰링턴 펀드 단 하나의 펀드만을 운용했는데 이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펀드이며 전체 자산의 2/3을 주식에 그리고 1/3을 채권에 넣어 분산 투자의 운용 방식을 고수한다. Wellington Fund는 현재 Vanguard Wellington Fund로 불리며 매니징 되는 자산 규모는 103.6 Billion USD(~120조 원)에 달한다.


보글은 웰링턴 펀드에 입사한 이후 승진 가도를 달리는 데 펀드의 운용만큼이나 상품 전략에도 탁월했다. 1958년 회사의 상품 라인업을 다각화해 주식과 채권에 분산 투자를 하는 Wellington Fund에 이어 100% 주식에만 투자하는 Windsor Fund를 출시했다. 그리고 입사한 지 14년 만에 35세의 나이로 보글은 웰링턴 펀드의 부사장(Executive Vice President)이 되는데 보글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이때 인생 최악의 투자를 하게 된다.


부사장이 된 후 보글은 1966년에 보스턴에 위치한 Thorndike, Doran, Paine & Lewis 투자 회사를 인수한다. 해당 기업은 30 million USD(360억 원) 가량의 소규모 자산을 운영했는데 당시의 시대상이었던 Go-Go 스타일에 어울리는 운용 전략을 구사했다.  


1960년에서 1970년도는 미국은 Go-Go 시대라고 불리는데 당시의 시대상은 컴퓨터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신경제’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찼다. 실제로 1969년에는 NASA의 아폴로 11호 미션이 성공했고 기술 주식들을 위주로 엄청난 주가 상승이 나타났다. 이는 최초의 테크 버블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닷컴 버블보다 30년을 앞선 사례다.


낙관적인 미래상과 기술주 중심의 증시 과열에 편승해 당시 펀드들이 우후 죽순 생겨났고 이 펀드들은 시대상에 걸맞게 Go-Go Fund라고 불렸다. 2017년도 있었던 전 세계적인 비트코인 상승장을 생각해보면 Go-Go Fund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거의 50년을 앞선 ‘가즈아’와 ‘떡상’과 같은 표현이다. Go-Go 시대의 열망은 1970년 5월의 증시 폭락과 함께 사라졌는데 당시 대부분의 테크 회사들의 주가가 80%가량 증발했다. Go-Go Fund들의 말로가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글이 Thorndike, Doran, Paine & Lewis을 인수한 배경에는 보수적으로 운용됐던 웰링턴 펀드의 기업 문화에 Thorndike, Doran, Paine & Lewis의 공격적인 스타일을 더해 Go Go 시대를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보글의 전략은 초기에는 유효했고 1970년에는 월터 모건을 이어 웰링턴 펀드의 CEO가 된다. 하지만 1970년의 주가 폭락 그리고 1973년의 석유 파동으로 시작된 1973-1974년의 베어 마켓으로 보글의 CEO 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의 간판이었던 웰링턴 펀드는 1965년 2 billion USD(2.4조 원)의 규모였는데 이는 1970 폭락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480 million USD(5,800억 원)으로 80%가량 쪼그라들었다. 당연하게도 웰링턴 펀드를 운용하는 웰링턴 회사의 주가 또한 급락했는데 1968년 주당 50$이었던 주가는 1975년이 되자 4.25$을 기록하게 됐다. 그리고 잘못된 인수 합병의 대가로 보글은 1974년 웰링턴 이사회로부터 쫓겨난다. 즉 CEO로서 회사에서 잘린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던 웰링턴에서의 퇴임은 보글 인생에 있어 크나큰 전환점이 되는데 빈 손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보글은 웰링턴에 새로운 구조의 펀드 하우스 설립을 제안한다. 보글의 제안은 웰링턴에서 승인돼 1975년 5월 1일 1.8 billion USD(2.2조 원)의 운용 규모에 50명 남짓한 직원들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오늘날 6.2 trillion USD(7,000조 원)을 운용하는 Vanguard Group의 시작이다.




"선구자의 유산: 인덱스 펀드(Index Fund)"


보글 본인에 따르면 Thorndike, Doran, Paine & Lewis 인수의 실수에서 배운 것은 시장을 이기려 하는 Active Investing 보다는 낮은 비용으로 전체 시장을 추종하는 Passive Investing이 장기적으로 유효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Vanguard의 설립과 함께 보글은 자신의 이상을 현실화시킨다. 1974년 MIT 대학의 교수 폴 세뮤엘슨(Paul Samuelson)이 Journal of Portfolio Management에 발표한 Challenge to Judgment에서 영감을 받아 보글은 1976년 업계 최초로 First Index Investment Trust을 만들어낸다.


Vanguard 500 Index Fund라고 불리는 이 펀드는 최초의 인덱스 펀드이며 미국의 전체 주식 시장을 추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0년 6월 말 기준으로 533.6 Billion USD (640조 원)의 규모가 된 이 펀드는 뱅가드의 상징이자 전설이다. Vanguard 500 Index Fund는 다른 Index Fund와 ETF들과 함께 현재 뱅가드 운용 규모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단 시작부터 창대 했던 것은 아니다. 되려 너무나 볼품없었는데 초기 설정 금액은 11 million USD(132억 원)에 불과했다. 펀드 규모만 초라했던 것이 아니었다. 업계에서 인덱스 펀드를 바라봤던 시각 또한 차갑기 그지없었다.



“미국 답지 못하고 평범함으로 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Un-American and Sure Path to Mediocrity”



여기서 미국 답지 못하다는 말은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로 삶을 개척해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 Mindset)에 어긋남을 의미한다. 일견 이는 그럴싸한 비판인데 최소한의 비용으로 전체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얻겠다는 인덱스 펀드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최소한의 노력과 의지(Un-American)로 지극히 평범한 결과(Sure Path to Mediocrity)만을 내겠다는 표현으로 들렸을 수 있다. 즉 열심히 살아 삶을 개척해야 하는 미국의 정신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보글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대표적인 지수인 S&P 500 Index을 추종하는 자금 규모만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해당 금액의 규모는 11 trillion USD(1경 3천조 원)에 달한다. 압도적인 규모의 글로벌 자본이 지수에 연동돼 운용되고 있다.


보글은 분주하게 이것저것을 하지 않고(빈번한 포트폴리오 조정) 뿌리를 내리고 한자리에 자리 잡은 나무처럼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유지하는 것(매수한 포트폴리오 유지)이 성공적인 투자의 열쇠라고 봤다.


인덱스 펀드는 전체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추종한다. 이것만 보면 당대의 비난(Mediocrity)이 옳아 보인다. 하지만 인덱스 펀드는 전체 시장을 추종하기에 빈번한 포트폴리오 조정이 없다. 한 마디로 매수(BUY) 하고 기다릴(HOLD) 뿐이다. 그러므로 펀드 내에서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지 않아 저비용으로 펀드 운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비용이 낮을수록 펀드의 수익률은 시장 전체의 수익률에 수렴해 펀드의 수익률이 곧 시장의 수익률이 된다. 비용의 횡포를 피함과 동시에 복리의 마술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오래 지속되는 평균(Mediocrity)은 그 자체로 더 이상 평균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지속된 평균은 종극에 압도적인 결과(Outstanding)가 된다.



“잭 보글이 인덱스펀드를 고안한 것은 바퀴와 알파벳 그리고 구텐베르크의 활자와 치즈와 함께하는 와인만큼이나 가치가 있다. 인덱스 펀드는 보글 본인을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주지 않았으나 투자자의 장기 수익률을 그만큼 증가시켰다. 하늘 아래 진실로 새로운 발견이다” – 폴 세뮤얼슨


“I rank this Bogle invention along with the invention of the wheel, the alphabet, Gutenberg printing, and wine and cheese: a mutual fund that never made Bogle rich but elevated the long-term returns of the mutual-fund owners. Something new under the sun.” – Paul Samue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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