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인생은
돈 한 푼 없이 전전한 20대는 그래도 사명이라는 거룩한 포장 덕분에 핑곗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돈이 없어도 있는 사람처럼 살았다. 그렇다고 겉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한다거나 좋은 차를 몬 것은 아니었다.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웃기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사람 눈에는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테지만.) 자린고비처럼 살지는 않았다는 말로 이해해도 좋다.
장기간 일할 때는 공장을 다니면서, 방학 때는 막일을 하면서, 학생 때는 틈틈이 이 알바 저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일에 대한 여러 가지를 기술들을 배우면서 나름 일의 원리라고 하는 것을 터득할 수 있었다. 성실이 최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지만, 돈 앞에서 성실과 함께 실력까지 있어야 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경험과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난에서 탈출할 수는 없었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적금을 붓고 얼마 안 있으면 꼭 큰돈을 쓸 때가 생겼다. 나는 재정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부모가 없었기 때문에 보통은 적금을 깨 해결하곤 했다. 지금 와서 딱 하나 아쉬운 게, 많은 적금들을 깨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격적으로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계속 나오는 이야기지만, 오랜 기간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나름 배워먹은 게 신학이기도 했고, 솔직히 가르치는 게 더 재밌는 사람이라 몸에 맞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순례길 갈 정도만큼이나 돈을 벌고 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막았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그렇게 공장 생활도 몇 년 되면 수중에 돈이 좀 모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한 푼도 없다. 쓸데없는 데 사용한 것은 아니니 혀를 끌끌 차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결과론적으로 나는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더욱더 가난한 상황이 되었다. 낭만이 재화로 쓰일 수 있다면 누구보다 부자일 자신이 있는데, 될 리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마음만은 부자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살지만, 현실은 대부분 부자인 사람이 마음도 부자였다. 없는 사람들은 이것을 집고도 내려놓고, 저것을 집고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좋으면 좋을 수록이라는 격언이 삶에 적용되지 않는 삶이다. 돈만큼 정확한 건 없다. 값은 그 가치 이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없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불안에 떨면서 살기 때문에 마음이 부자일 리가 없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것이 이뤄내야 할 목표라면 나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고 싶다. 가난은 자꾸 되돌아와 나를 찾아오지만, 돌아올 때마다 성장한 내 마음은 가난을 힘껏 품어주고 싶다. 그리고 없는 것도 나누며 공감하고 싶다.
작은 바람 한 줌에도 휘청거리며 살고 있는 나의 삶이지만, 지금까지 힘들게 걸어온 이 길이 소중하다. 죽음이라는 문턱 앞에도 서 보았고, 죽음을 조망도 하면서 ‘삶이라는 게 참 덧없는 건가’ 싶다가도 그래서 더욱 아름다울지 모른다는 순례길 위의 어떤 할아버지의 말처럼 오늘도 여러 가지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이 삶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프리다 칼로의 ‘viva la vida'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