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의 마지막 아픔이기를
한참 전부터 시작한 브런치였는데, 이제야 100번째 글을 쓰게 되었다. 바쁘다고, 여유가 없다고 내팽개친 지난날들이 그렇다고 필요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그 빈 공간은 어쩌면 내가 삶으로 써 내려간 것들일 테니 말이다. 누가 읽든 말든 자기만족에 불과한 일기 같은 나의 모든 글들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른다. 하나 분명한 건, 여전히 훔쳐보고 싶은 일기 같은 글을 쓸 것 같다. 구상은 누구보다 멋지게 하지만,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는 부족한 나는 다음 글을 써내기 위해 수십 개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예정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아픔이기를"이라는 제목으로 써낸 내 이야기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여기저기 분산된 이 모든 글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시간이 올 수 있을까 했는데, 결국 끝마쳤다. 혹시나 앞선 19개의 글을 읽으셨다면, 이 글로 꼭 마무리해주셨으면 좋겠다.
‘살고 싶다’와 ‘죽고 싶다’를 반복하는 요즘, 글을 쓰기 위해 걷고 사진을 찍고 정보를 모으고 생각을 정리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다. 괴롭게 했던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휘발되어 날아갔으나, 그것보다 더한 낭만 없는 이 현실이 오히려 나를 더 괴롭게 한다.
가난을 품겠다느니 같은 거창한 말은 사실 합리화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삶은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늘 주저하고 머뭇거리며 날릴 시간이 허다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아가야 한다면, 시간 앞에 솔직해져야 한다면, 이런 좋은 말로 나를 바꾸고 변화시키는 편이 더 나았을 뿐이다.
솔직히 아프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들처럼 멋진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로또 당첨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 한 번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다 그렇게 고만고만하게 산다. 한 걸음 앞서거나 뒤처져있을 뿐. 뒤에 있는 사람은 항상 앞사람의 뒤만 보기 때문에 그의 앞모습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대단하고 부러운 사람으로 동경한다. 하지만 앞사람의 현실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고통, 고난, 불안, 우울 등 아픔을 유발하는 감정들이 삶에 왜 필요할까 싶다. 하지만 피할 수 없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쩌면 행복한 시간보다는 그렇지 못한 시간이 더 많이 있는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수긍하고 순응하는 것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더 나은 삶은 솔직히 있지 않다. 운명론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 슬프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나의 마지막 아픔이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스러져가는 많은 이들과 그들을 하염없이 지켜만 봐야 하는 남은 사람들. 오늘도 병마와 싸우며 홀로 버티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 겨우 작은 라면 하나로만 먹고살았던 과거의 나에게 그리고 오늘 어떤 사람들에게. 마트에서 들었다 놨다를 하면서 인생의 비린맛을 느끼고 있는 그 어떤 사람들에게. 수많은 사람들 속 홀로 외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끝으로 모든 아픔이 마지막 아픔이었으면 좋겠다. '찬란한 봄'과 같이 사계절 앞에 붙는 좋은 형용사들이 이제 우리 삶에 붙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