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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여자 Jan 20. 2021

그 말이 오래도록 나에게도 남았다.



새해가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큰아빠다.

곧 기일이 다가온다. 큰아빠가 떠난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으니 꽤 시간이 흘렀다. 건강하셨는데 갑작스럽게 백혈병 진단을 받고, 짧은 시간 투병생활을 하다 우리 곁을 떠나셨다.


큰아빠는 7남매 중 맏이로 시골마을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후 동생들을 다 불러 모아 제2의 고향을 만들어주셨다. 학창 시절 우리 집차가 없었다. 그래서 매번 우리집 대소사가 있을 경우 기사 노릇을 자처하며, 태어주셨던 고마운 분이다. 수능을 보는 날도 어김없이 오셔서 고사장까지 태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투병생활을 하시던 중 회사 근처에 사는 친구분을 만나 인사차 회사 앞으로 찾아온 적이 있다. 근무 중이라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인사만 하고 가셨는데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맛있는 점심 사드리겠다고 친구분이랑 다시 오라고 해서 회사 앞 식당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했다. 아마도 큰아빠와 함께한 식사자리는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날 그냥 그렇게 인사만 하고 갔더라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순간이 되었을 것이다.  


사촌오빠들이 다 타지에 살고 있어서,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엄마가 항상 본인들한테는 카네이션 주지 않아도 되니 큰아빠 집엔 꼭 다녀오라고 해서 매년 카네이션을 사들고 다녀왔던 추억이 있다. 대학교 가던 해부터 직장생활 초창기 몇 년 동안은 어버이날은 큰아빠 집 가는 날로 자연스럽게 정해져 누가 말하지 않아도 다녀왔던 것 같다.

 

큰아빠와 추억 참 많다. 풀어낼 이야기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일찍 가셨는지.

큰아빠 그때 나이가 이제 아빠 나이다. 동생들이며, 조카들이며, 가족들에게 참 따뜻하고, 자상한 분이셨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좋은 세상 좀 더 있다 가시지 너무 허망하게 떠난 것 같아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지금 같은 의술이었다면 더 우리 곁에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든다. 서울 병원으로 가시는 날 현관문에서 집안 곳곳을 한참 동안 둘러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떠나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알기라도 했듯이. 서울 병원으로 가셔서 결국은 평생 살던 그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운전할 때 항상 조심하고, 한 번에 뺄 생각하지 말고 왔다 갔다 여러 번 해도 안전하게 차도 빼야 한다."

"운전할 때는 항상 초보였던 마음으로 해야 한다. 자신감이 붙었다고 자만하면 절대 안 된다"라고 운전을 시작한 초보때 큰아빠에게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다. 아직도 시집가지 않고 있는 나를 본다면 잔소리를 엄청 하실 것 같다. 그 잔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전 큰아빠 기일 이야기를 하며,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큰아빠가 살아생전에 "자식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게 되어 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애써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도 내가 솔선수범하는 모습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며, 본보기를 보여주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 말을 엄마도 되새기며 살게 되었다고.


본보기가 되는 사람, 특히 본보기가 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말. 그 말이 오래도록 나에게도 남았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그런 어른으로 살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본보기가 되는 삶'라는 것에 있어 정답이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우리의 삶 자체만으로 누군가에는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본보기까진 아니더라도 부끄러운 어른은 되지 않아야 하는데 요즘 부끄러운 어른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본보기가 되는 어른이 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나도 저 말을 오래도록 되새기며,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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