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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6개월 안에 중국어를 마스터하라고?

by 문정아중국어

“중국이요?”

“응, 2박 3일 출장 준비해. 이번에 나랑 홍 대리랑 가니까.”


2주 전 박 팀장이 건넨 폭탄 발언에 홍 대리는 눈만 껌뻑거렸다. 중국 진출은 2년 전부터 회사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던 프로젝트였기에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어 한마디 못하는 자신을 왜 출장에 데려가려 하는지 박 팀장의 의중이 궁금했다.


“저기, 팀장님. 저 중국어 하나도 못하는 거 아시죠?”

“알지.”

“그런데 왜 저를…….”

“못하면 배우면 되잖아. 오늘부터 당장 배워.”


출장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주. 그 안에 간단한 회화라도 익힐 겸 틈날 때마다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애써 외운 중국어는 중국에 도착한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홍 대리의 중국어를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박 팀장조차도 이렇게 물었다.


“그게 어느 나라 말이냐? 중국어 공부해 오랬더니 대체 뭘 배워 온 거야?”


아니라고, 책도 보고 동영상으로 발음도 익혔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부했다고 반박하기에 자신의 중국어는 얇은 유리보다 깨지기 쉬운 것처럼 보였다. 박 팀장은 2박 3일 내내 틈만 나면 홍 대리를 구박했다.


“아이고, 중국까지 와서 말도 못하고 답답해서 어쩌냐. 혼자 호텔은 찾아가겠냐?”


‘저녁에 맥주 마시자고 하기만 해봐라. 절대 안 나갈 테다!’

속으로만 부득부득 소심한 복수를 꿈꿨다.

하지만 소심한 복수조차 할 시간도 없었다. 호텔에서 잠깐 눈만 붙이고 튀어나가야 할 만큼 2박 3일의 일정이 빡빡한 탓도 있었지만, 난생 처음 와본 중국의 스케일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한국에서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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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뻗은 16차선 도로,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 백화점들과 시속 40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기부상열차, 초고층 빌딩들이 숲을 이룬 듯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거리까지 시내 곳곳은 어딜 가나 활기로 넘쳐났다. 세계의 중심으로 매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비즈니스 현장에서 제시하는 청사진이나 그림은 ‘판’이 달랐다. 지금껏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음을 절감했다. 서서히 중국에 대한 선입관이 깨지면서, 회사가 왜 그토록 중국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지 피부로 느껴졌다. 홍 대리의 눈에도 커다란 기회가 보였던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장난 아닌데? 한국 돌아가면 중국어부터 배워야겠어.’

역시나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박 팀장은 홍 대리에게 특명을 내렸다.


“돌아가면 중국 진출 제안서랑 기획안 제출하고, 사업계획서 멋지게 만들어봐. 당장 중국어 마스터하고. 출장도 자주 다니고 현지 바이어도 만나야 하니까. 얼마나 걸리겠어?”

“부지런히 해도 1년은 넘겠죠.”

“1년이 넘는다고? 부지런히 하는데 1년? 너무 길어. 줄여.”

‘뭐? 1년이 너무 길다고?’


영어는 10년을 공부해도 여전히 외국인 앞에 서면 쭈뼛거리는데, 하물며 아무것도 모르는 언어인데 1년은 겪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마저도 팀장님 앞이라 줄이고 줄인 기간이었는데, 1년이 길다고? 홍 대리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근데, 바이어와 대화하는 수준까지 되려면 최소 1년은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박 팀장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홍 대리의 눈을 쳐다보며 호통을 쳤다.


“1년은 무슨. 우리가 그렇게 시간이 많은 줄 아냐? 학생도 아니고 한가하게 1년 넘도록 배우고 앉아 있어? 다른 사람한테 프로젝트 낚아 채이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가. 딱 6개월 준다! 그 안에 무조건 중국어 마스터해.”

“네? 6개월이요? 진심이세요?”

“그래, 진심이다. 내가 농담하는 걸로 보여? 홍 대리, 중국어는 처음이지?”

“네, 머리털 나고 처음입니다.”

“니 하오! 할 만할 거야. 6개월이다. 그 뒤에 중국인 상대 못하면 이 일은 홍 대리한테 못 맡겨.”

‘팀장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 * *


홍 대리는 본격적으로 ‘씹어 먹는’ 중국어 공부에 돌입했다. 만만해 보이는 중국어 기초 교재도 한 권 샀다. 퇴근 후에는 책상 앞에 앉아 연습장을 빽빽하게 채우며 중국어 단어를 쓰고 외웠다. 까맣게 채워지는 연습장을 보니 절로 흐뭇해졌다.


‘진작 이렇게 공부했으면 하버드를 가고도 남았을 텐데…….’

그러나 열정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달리기 시작한 지 딱 3일째 되던 날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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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팔이 너무 아팠다. 눈도 아프고 머리는 더 아팠다. 밤에 단어 스무 개를 달달 외우면 다음 날 아침 머릿속에는 고작 두 개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잠만 자고 일어나도 열여덟 개의 단어가 저 멀리 사라지니 이것이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이를 악물고 3일만 더 해보다가 공부를 시작한 지 일주일 후 미련 없이 연습장을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남은 것이라고는 눈 밑의 다크서클과 볼펜 똥으로 까매진 손톱뿐이었다.


다시 심기일전한 마음으로 중국어 단기 회화 인터넷 강의를 끊었다. 그러나 ‘한 달 완성’이라는 학원 광고와 달리, 한 달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홍 대리의 중국어 실력은 ‘니 하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꿎은 인터넷 강의만 탓할 처지는 아니었다. 누가 강제로 시키는 공부가 아닌 터라 일주일에 한두 번 공부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결국 빽빽이와 인터넷 강의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공부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휴, 답답해. 어디 좋은 스승님 없나? 나를 꽉 잡고 확실하게 가르쳐줄 사부님만 계시면 중국어쯤이야 완전히 박살내버릴 텐데!”


방에 처박혀 궁상을 떨다가 슬그머니 거실로 나왔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을 붙였다.

“방구석에 꿀이라도 숨겨놨나. 요즘 왜 집에만 처박혀 있어? 넌 연애도 안 하냐?”

“어휴, 지금 연애가 문제가 아니라고요.”

“얼씨구! 네 나이 때 연애가 문제가 아니면 뭐가 문젠데? 회사 일은 아닐 테고.”

“맞거든요.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중국에 진출할 것 같아요.”

“어머, 우리 아들 출세하는 거야?”

“중국어를 잘해야 출세든 뭐든 하죠. 전 망했어요.”

“까짓 거 하면 되지. 네 아버지도 잘만 하던데 뭐.”

“아버지가요?”

“그렇다니까. 이제 곧 들어올 시간 됐으니 아버지한테 여쭤봐.”


과연 김 여사의 말대로 5분쯤 지나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아유, 이 양반은 비밀번호를 알려줘도 꼭 벨을 눌러. 귀찮게.”


결혼한 지 35년이나 됐지만 부모님은 서로 죽이 척척 맞아 여전히 사이가 좋다.

“아유, 사장님 오셨어요. 고생 많으셨네요.”

“니 츨판 러 마你吃饭了吗(밥 먹었어)?”

“지금 먹으려고요. 국영이하고 같이 드시려우?”

“하오好(좋지)!”

“얼른 손만 씻고 와요.”


중국어로 말하는 아버지와 그걸 알아듣고 한국어로 대답하는 어머니를 보니 시트콤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홍 대리는 아버지의 자연스러운 중국어를 듣고 깜짝 놀랐다.

‘비록 말은 짧지만 거침없이 입에서 나오고 있잖아?’

함께 밥을 먹으며 홍 대리가 물었다.


“아버지, 중국어 배우셨어요?”

“그래, 한 일주일 됐다. 오늘도 중국인 손님을 태우고 공항까지 갔는데 어찌나 즐겁던지. 날씨 얘기나 초보적인 인사말만 주고받았는데 어설퍼도 대화를 나누니 재미있더구나.”

“일주일 만에 중국어를요? 대체 어떻게 공부하셨는데요?”

“허허, 공부야 그냥 하는 거지. 중국인 손님이 늘어서 중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인터넷을 좀 찾아봤어. 이 강의도 듣고 저 강의도 듣고. 그런데 나한테는 영 안 맞더구나. 내가 한자를 쓸 일이 있나, 어려운 말을 할 필요가 있나. 일상적으로 하는 말만 하면 되는데 죄다 어렵더라고.”


홍 대리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중국어를 공부하며 느꼈던 마음이었기에 아버지의 말에 십분 공감했다.

“그러다가 끝내주는 선생님을 찾았지.”

“끝내주는 선생님이요?”

“그래, 영화에 보면 무림고수의 ‘사부’ 있잖아. 딱 그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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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라는 말에 홍 대리의 눈이 커졌다. 자신도 오매불망 바라던 것 역시 바로 그 ‘사부님’ 아니던가!

“그분이 누군데요?”

“인터넷으로 중국어 강의를 듣는데 세상에! 입이 떡 벌어져. 어찌 나 친절하게 가르쳐주는지…….”


문정아.


아버지가 찾은 끝내주는 선생님은 중국어 학습 분야의 최고 고수라고 불리는 ‘문정아중국어연구소’의 소장이었다. 홍 대리도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초보 수준이라고 해도 아버지가 일주일 만에 입을 뗄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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