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대리는 공부하다 모르는 게 생기면 문 소장에게 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홍 대리가 어떤 질문을 하든지 문 소장은 정확 하고 자세하게 답변을 보내주었다. 귀찮을 법도 한데 한 번도 거르는 적이 없었다. 더 고마운 일은 물어본 것뿐만 아니라 그와 연관된 내용도 함께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부님 밑에서 중국어를 못한다면, 그건 내 탓이다!’
홍 대리가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꾸준히 중국어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8할이 문 소장의 지지와 격려에서 나왔다. 덕분에 홍 대리의 중국어 실력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공부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회사의 중국 진출 업무가 진척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홍 대리가 한 달 이상 공들여 만든 기획안이 드디어 통과된 것이었다.
“잘했어, 홍 대리! 이번 출장도 같이 가자고.”
박 팀장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홍 대리의 등을 두드렸다.
“네, 감사합니다! 팀장님 덕분입니다!”
“무슨 소리야. 이번 건 확실히 자기 공이지.”
홍 대리가 박 팀장을 믿고 따르는 이유는 절대로 부하의 공을 가로채는 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로채기는커녕 팀원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고, 스스로 해낼 때까지 지켜봐주었다. 이런 성품을 지닌 박 팀장이었기에 팀원들은 물론 사내에도 그를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
‘난 참 운이 좋은 놈이구나.’
홍 대리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상사가 있었고, 회사 밖에서는 출중한 실력과 온화한 인품을 지닌 스승이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기획한 일이 채택되어 회사의 큰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기에 홍 대리는 중국어 공부에 더욱 열을 올렸다. 문 소장을 만나기로 한 날까지 몇 번이고 반복하며 충실하게 복습했다.
“발음이 아주 좋아졌네요. 연습을 열심히 하셨나 봐요. 말 그대로 ‘학습’을 하셨네요.”
“학습이요?”
“네, 배우고 익히셨잖아요. 배우기만 하고 자기 것으로 익히지 않으면 학습이 아니죠. 툭 치면 탁 하고 나올 정도가 돼야 학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해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 잊어버리는 이유가 ‘학’만 되어 있고 ‘습’이 안 되어 있어서 그런 거예요. 외우고 있는 것과 완전히 아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커요.”
홍 대리는 문 소장에게 가르침을 받기 전 자신이 했던 중국어 학습을 떠올려보았다.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습’으로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차이점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국어를 ‘말’하려고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말하기 위해서 중국어를 배우는데, 정작 지식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 소장과 공부를 하면 머리로만 이해되는 게 아니라 스펀지처럼 몸으로 중국어를 흡수하는 기분이 들었다.
“말로 중국어를 익히니까 공부가 훨씬 재미있고 쉬워요.”
“기본적으로 언어의 목적은 ‘소통’이니까요. 말이 통해야 흥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어요.”
“조금씩 말을 하게 돼서 그런가, 요즘은 중국어 공부가 진짜 재미있어요. 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문 소장을 만날 때마다 즐거운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말이 통한다는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 * *
“홍 대리님,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치는 중국어 공부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그런 게 있어요?”
그런 비법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랬다면 자신의 중국어 실력은 박 팀장을 능가했을 것이다. 홍 대리는 다음 출장길에서 박 팀장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싶었다. 그렇기에 문 소장이 말한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치는 중국어 공부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건 바로 ‘반복되는 패턴’으로 배우는 거예요.”
“패턴이요? 같은 구조를 반복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같은 문장 구조 하나에 단어만 갈아 끼우는 식이에요. 단어 열 개만 바꿔도 열 문장을 알게 되는 거죠.”
“아하! 그래서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치는 거군요!”
“그럼 내친김에 연습을 한번 해볼까요? 따라 해보세요. 니 취 마你去吗(너는 가니)?”
“니 취 마?”
“좋아요. 이번엔 ‘가다’라는 뜻의 ‘취去’ 대신 ‘사다’라는 뜻의 ‘마이买’를 넣어볼게요. 니 마이 마你买吗(너는 사니)?”
“니 마이 마?”
“잘했어요. 하나 더 해볼까요? ‘바쁘다’라는 뜻의 ‘망忙’을 넣어서 니 망 마你忙吗(너는 바쁘니)?”
“니 망 마?”
“훌륭해요! 이번엔 한 번에 세 문장을 혼자 말해볼까요?”
“니 취 마? 니 마이 마? 니 망 마?”
집중해서 배운 것을 말하자 저절로 말에 리듬이 생겼다. 문 소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앞에서 말한 세 단어를 활용해 부정 패턴을 말해볼까요? 워 부 취我不去(나는 안 가).”
“워 부 취.”
“워 뿌 마이我不买(나는 안 사).”
“워 뿌 마이.”
“워 뿌 망我不忙(나는 안 바빠).”
“워 뿌 망.”
“자, 이번에도 단번에 가봅시다. 워 부 취, 워 뿌 마이, 워 뿌 망.”
“워 부 취, 워 뿌 마이, 워 뿌 망.”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남들이 볼 때는 유치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홍 대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따라 했다. 뼈대가 되는 핵심 문장을 익힌 후 단어를 바꿔 말하자 무궁무진한 문장이 만들어졌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치는 게 아니라 백 개, 천 개, 만 개를 알게 될 것 같았다.
“이거 진짜 신기하네요. 새로운 것을 말하는 동시에 반복도 되고, 완전 일석이조인데요?”
“거기에 말할수록 리듬까지 입에 붙으니 일석삼조죠.”
“아니에요. 자신감도 생기고, 단어 공부도 되고, 발음도 좋아지니, 어디 보자…… 일석육조네요.”
‘패턴 중국어’의 장점은 어마어마했다. 원리는 간단했지만 효과는 강력했다. 반복할수록 기본 문장이 입에 착 붙는 것은 물론, 다양한 단어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이렇게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니, 중국어 포기하지 않기를 정말 잘했어!’
홍 대리는 앞으로 꼭 배워야 하거나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 번 더 도전하면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패턴 중국어를 알고 나니 우리말로도 자꾸만 패턴이 만들어졌다.
“엄마, 나 돈가스 먹고 싶어. 아니, 치킨 먹고 싶어. 아니, 피자 먹고 싶어.”
계속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이러다가는 패턴에 중독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뭐 어떠랴 싶었다. 이렇게 좋은 중독이라면 얼마든지 심하게 중독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