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 어떻게 하셨을까.' 이런 감정.
아이를 낳고 신체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는 신생아 때부터 두 돌 즈음까지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고 화장실조차 원할 때 갈 수도 없다. 말끔하게 씻고 싶어도 샤워하는 시간 쪼개서 자려고 누우면 기저귀, 물티슈 사야 하고 쿠팡 열고 최저가 할인 행사 알려주는 육아 카페 들어가서 구매를 고민하는 순간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너무 피곤하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을까 하는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오히려 신생아 쪼꼬미 시기(두 돌 이전)를 지나고 귀염둥이 절정인 문화센터 나들이 시기(세네 살)를 지나, 인간다워지는 유치원생이 되니, 매일 매 순간 느낀다. 부모님이 만들어준 환경에서 영향을 받은 나의 모습을 만나고 그 모습을 더욱 사랑하고 부모님께 감사하고 그 감사함을 아이에게 전하면서 정작 당사자에게 전하지 못하는 현재의 삶이 안타깝기도 하다.
내리사랑은 어렵지 않은데 윗사람에 대한 사랑 표현인 치사랑은 너무 어렵다. 남편하고 가정을 이뤄보니 사랑으로 만나도 표현하지 않으면 어느새 사랑의 존재를 잊기도 한다. 그러니 사랑은 표현이 정말 중요하다는 진리를 너무 잘 알고 있어도 부모님께 오늘 하루 안부 전화하는 것조차 일상 루틴으로 가져오기가 어렵다. 마음이 작아서가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의지한다는 믿음 때문일까. 어쩌면 옛 말에 '무소식이 희소식'은 맞는 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틀리지도 않았다.
평생 한결같은
부모에 대한 자식 마음
결혼하기 전 혼자 세운 목표가 하나 있었다. 그래봤자 회사원이었지만 8천만 원 모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8천만 원을 모아 5천만 원을 부모님께 드리고 나머지로 결혼하고 싶었다. 정말 그랬냐고? 초봉 960만 원으로 시작한 내가 그럴 리 없다. (물론 열정적인 근무 실적과 전문적인 이직 스킬로 기하급수적인 연봉 상승 계단을 올랐지만) 5천 만 원 드리고 결혼하기 계획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 삶의 실패 사건 세 가지 중 하나로 남았다. 부끄럽지만 공개하자면, 여기서 내 삶의 실패 나머지 두 가지는 토익 990점 맞기, 부모님 전상서 출판하기다. 심지어 그 세 가지 중에 두 가지가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다.
어쩌면 K장녀이기 때문일까. 부모님은 아직 경제적 능력도 있으시고 건강하신 편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신경 쓰지 못함에 대한 자책이 내 삶에 짙게 그늘져 있다. 아마 우리 집에 일어난 개인적인 사건이 자책 버튼을 더욱 활성화시킨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엄마, 아빠가 나의 이런 마음을 알게 되면 속상하실까 싶다. 자식에게 짐이 되는 것처럼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 나이의 부모가 되어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런 감정은 부모를 짐짝처럼 여기는 게 아니라 너무나 올바로 훌륭하게 자랐기에 나타나는 정상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자식 키워보니
이해하는 삶의 의미
육아는 두 번째로 주어진 삶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아이와 함께 하기에 어린 시절을 다시 한번 살고 있다. 아이가 없었으면 가보지도 않았을 법한 레고랜드도 다녀오고, 계절을 보는 미술 놀이를 하면서 피부에 스치는 날씨의 변화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어릴 때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말들이 떠오른다. 나와 함께 했던 엄마의 삼십 대가, 사십 대가 흐릿하게 기억난다. 육아하는 삶은 두 번째 어린 시절을 걸어가는 기회이며 나의 과거를 함께 걸어온 엄마의 젊은 시절을 이해하는 과정인 듯하다.
"엄마는 무슨 계절이 좋아?"
"엄마는 가을이 좋아."
초등학생 때였나. 나는 내 생일이 있는 따뜻한 봄이 제일 좋았다. '바다에 놀러 갈 수 있는 여름도, 하얀 눈을 볼 수 있는 겨울도 아니고, 이도저도 아닌 가을이 좋다니 이게 웬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며 점점 짧아지는 가을을 느끼며 엄마가 왜 가을을 좋아했는지 알겠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엄마처럼 가을이 제일 좋다. 마흔에 다다라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은 부모님 전상서를 엮어서 곧 오는 엄마 생신에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가득 담아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역시나 이 또한 삶의 실패로 묻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생각보다 할 일이 너무 많고 이미 2주 채 남지 않아서 글렀다. 제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은 상대에게 표현해야 알 수 있지만 나는 오늘도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