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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e Y Nov 14. 2023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시나요?

남들이 당신을 설명하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남들이 말하게 하지 마라.
- 마사 킨더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1년에 두 번, 부모 상담 시즌이 찾아온다. 어린이집은 기간 안에 부모가 원하는 날짜와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유치원은 워낙 인원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선생님이 정해준다. 전화 상담도 가능하긴 하지만, 나는 상담을 핑계로 아이가 생활하는 교실 분위기가 궁금해 방문을 선호한다. 약속을 한 주 앞두고, 원에서는 주 양육자의 의견을 묻고 아이의 가정 생활 환경을 살피기 위한 질문지를 보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질문지를 받았다. 아이의 장, 단점, 현재 우려되는 부분, 원에 바라는 것 등을 묻는다. 종이도 입이 있다면 '저는 아이에게 무척 관심이 많은 엄마입니다'라고 말하는 듯 정성스럽게 써내려간다. 칸을 가득 채우며 내심 '걱정 많은 예민맘이라고 생각하시면 어쩌지'라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그중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시나요?"라는 질문도 있다. "부모님이 바라는 아이의 장래희망은?"이라는 항목도 있다. 물론 아이가 바라는 장래희망도 묻는다. 누구나 비슷한 답변을 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앞으로 헤쳐나갈 세상 앞에 우리 딸이 용감하고 대범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 특히 외동이기에 부모가 곁에 없더라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 안에서 웃으며 살 수 있길 희망한다. 기본적으로 그렇지만 완전히 솔직해보자. 큰 일 없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아니라면 자신있게 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을 연마할 끈기도 있으면 좋겠고 슬기롭길 바라고... 또 무엇이 있을까. 아, 예쁘고 키도 크면 좋을 것 같다. 과한 욕심을 부려 하나둘 꼬리를 물다보니, 사람인지 AI모델인지 우스꽝스럽다.


"자신만의 취향을 알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행복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나는 이렇게 썼다. 

평균 나이의 중반까지 살아보니 나를 알고 어떤 방식이든 표현하는 습관이 중요했다.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말을 해도 좋고, 혼자서 일기를 써도 좋다. 글로 표출해도 좋고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춰도 좋다.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떠한 방식이든 생각을 표현하는 것, 또 표현하려면 생각이 필요하다. 사유하고 표현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틀에서 자유로워지고 때로는 해방되는 기분을 맛볼 수도 있다.  

긍정적인 태도는 감사함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에서 온다. 소소해보이지만 감사를 느끼는 건 '능력'이다. 주변을 보니, 경제적으로 풍족하다고,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남들이 나를 정의하는 게 아닌 내가 나를 정의하고 나를 표현하고 나를 알아줬으면 한다. 그래야 별거 아닌 인생이 특별해진다. 때로는 운나쁘게도, 신을 원망하고픈 시간을 만나면 본질을 직시하고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초등학교때 장래희망을 쓰는 란이었는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냐는 질문이었는지, 교실 뒤 게시판은 아이들의 희망사항으로 채워져있었다. 여자친구 대부분은 아나운서, 남자친구들은 과학자, 선생님, 그런 직업군이었던 것 같다. 아마 장래희망에 대한 물음이었나보다. 살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 있었나? 우리 어릴 때는 어떤 사람이라는 말은 암묵적으로 어떤 직업을 말했다. 부모님은 내가 무슨 직업을 가졌으면 한다는 어떤 의사도 표현한 적 없다. 부모님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랐고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원했던 걸까. 


무뚝뚝한 아빠가 우리 자매에게 사준 첫 책은 '자신의 일을 찾아 성공한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세계 최초 여성 비행사, 세계 최초 여성 과학자 그런 이야기였다. 여전히 남아선호사상이 짙은 사회 분위기에서 아빠는 신식이었던 듯하다. 책의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표지 그림은 정확히 기억난다. 아빠는 모르겠지만 인생이란 바다에서 암초를 만났을 때 나를 일으켰던 힘은 언제나 그 책의 표지 그림이었다. 잠시 주저 앉은 시기에도 책 속 주인공처럼 나는 단단한 사람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대학을 선택할 때도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고 선언했을 때도 회사를 결정하고 결혼을 할 때 조차 아빠는 아무 말씀 없으셨다. 단지 내게 생각을 물으셨을 뿐이다. 


우리가 자랄 때는 요즘 부모처럼 자녀와 조곤조곤 이야기하진 않았다. 아빠와 딸 사이는 더욱 그렇다. 부모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자식은 부모의 기대감을 알고 있다. 아빠가 준 첫 책, 자라온 환경에 미루어 짐작컨데, 우리 부모님은 내가 떳떳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길 바랐던 것 같다. 아마 이보다 거창하진 않았을 테지만 부모의 기대감은 자녀에게 크게 다가온다. 삶을 개척하고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도 압박하지 않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여전히 엄마는 나만의 일을 찾기를 바라는 뜻을 매번 내비치신다. 분명하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떤 직업을 갖든, 멋진 커리어우먼의 삶을 살길 바라셨나보다. 결혼한 후 너무 힘들어서 갈라설 위기를 겪으면 언제나 갈라서서 다시 시작해도 좋다는 말씀하셨던 걸 보면 보통 아부지는 아닌 것 같긴 하다. 사실 부모님의 바람만이 아니다. 기질인지 환경적 영향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의 인생관도 그렇다. 그저 지금 중요한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 유치원 상담 질문지에 쓴 나의 답변은 아이가 닮았으면 하는 나의 모습 또는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어떻게 살길 바란다면 부모가 그렇게 살면 된다고 한다. 예컨데, 아이가 책을 읽길 바란다면 부모가 책을 읽으면 되고 아이가 글씨를 쓰길 바란다면 부모부터 태블릿을 손에서 놓고 연필을 잡으면 된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보다도 나 또한 스스로를 발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삶을 사는 나는 엄마 마음 속 아픈 손가락일 수 있다. 당장은 아이의 엄마로 하루를 채우고 있어서 사회에서 재능을 펼치는 자식의 모습을 부모에게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지만 매일 새로운 취향을 알고 표현하며 지나가는 행복을 잡고 감사함을 느낀다. 더 바란다면, 우리 딸도 그렇게, 그리고 엄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거라고 믿는 것. 우리 부모님처럼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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