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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아이 부모가 흔히 빠지는 오해

아이를 바꾸기보다 나를 먼저 돌보는 일

by ADHDLAB

얼마 전, ADHD 자녀를 둔 부모들을 위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제목은 "The Winning Psychology of Confident ADHD Parents & How to Become One Yourself"
하버드 의대 임상심리학자이자 맥린 병원 전 책임자였던 로버트 브룩스 박사(Dr. Robert Brooks)의 강연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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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연을 들으며 저는 며칠 전, 작가 데보라 레버의 강연에서 들었던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를 돕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모인 나 자신을 돌보는 것.”
그 말이 이 강연과도 깊게 닿아 있었습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친절하지 못하면, 그 분노는 결국 아이에게 쏟아지게 됩니다.”

이 말이 화면에 나왔을 때,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ADHD를 가진 아이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날,
숙제를 미루고 딴짓만 반복할 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곤 했거든요.
“왜 맨날 똑같지?”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좀 더 노력하면 될 텐데, 왜 안 하는 걸까?”

하지만 브룩스 박사는 말합니다.
그 말은 아이에게 “넌 널 몰라주는 사람이야”라고 들릴 수 있다고요.


노력 부족이 아니라 ‘기술 부족’ 일 수 있다

ADHD를 가진 아이는 어떤 날엔 집중을 잘하고, 또 어떤 날엔 전혀 제어가 안 됩니다.
부모 입장에선 당연히 당황스럽죠.
“어제는 잘하더니, 오늘은 왜 이러지?”

하지만 그 불균형 자체가 ADHD의 특성임을, 우리는 종종 잊습니다.
그 아이가 성격이 일관성 없어서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 자체가 ADHD의 본질이라는 것을요.


나를 탓하지 말 것

어떤 부모들은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를 탓합니다.
저도 그랬던 적이 있고요.

“내가 좋은 부모가 아니라서 그래.”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자기 비난은 아이에게도 불편한 감정으로 전달될 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브룩스 박사는 말합니다.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이라는 시작점

강연에 등장한 9살 아이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얌전하면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어떤 날은, 나는 그냥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그 아이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자기를 지지해 주는 부모라는 것.
좋은 부모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 버티느라 고생했다면, 이렇게 말해 주세요.
“그래도 난 오늘 최선을 다했어. 내일은 조금 더 부드럽게 안아주자.”


아이 인생에 단 한 명의 ‘카리스마 있는 어른’

ADHD 아이들은 비난을 자주 듣고,
그 때문에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겐
자기 강점을 알아봐 주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단 한 명의 어른이 필요합니다.
그게 부모라면, 아이는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힘을 갖게 됩니다.


당신 아이의 ‘능력의 섬(Islands of Competence)’은 무엇인가요?

브룩스 박사는 학교에서 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를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라며 자기 방어를 했습니다. 브룩스 박사는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뭘 좋아해? 어떤 걸 할 때 가장 기분이 좋니?”

“동물을 쓰다듬을 때요.”

학교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켰고, 친구를 때리거나 등교를 거부하던 아이였지만

브룩스 박사는 그 아이에게서 가능성의 섬을 발견했습니다.
교장에게 반려동물 관리직을 만들어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 토끼를 돌보는 1호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되었고,
결국 자신만의 책까지 만들어 도서관에 비치하게 되었습니다.
문제 행동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아이의 약점보다 아름다움과 강점을 보세요."

이 말이 강연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점을 아이 스스로 믿게 하는 방법도 있었죠.
“너의 도움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것.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이,
아이의 자존감에 큰 힘을 준다고 합니다.




이 강연을 들으며 저는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
단순한 감정 관리나 힐링을 넘어서
아이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키우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 아이를 떠올렸습니다.
조금 느리게, 조금 다르게 나아가더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그 아이.

오늘, 저는 어떤 모습으로
그 아이 곁을 함께 걸어주는 카리스마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조금 지친 날이면, 제게 이렇게 말해보려 합니다.
“오늘도 잘했어. 내일은 조금 더 부드럽게 안아줄 수 있길.”

그리고 아이가 웃으며 몰입하는 모습을 함께 바라보며
그 작은 섬에 같이 머물 수 있는 시간을
자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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