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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의 공존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01- 터키 이즈미르

by 류광민

터키 3의 도시 이즈미르

이즈미르는 인구 4백만이 넘는 터키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5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도시로서 20세기 초에도 그리스와 터키가 뺏고 빼앗기는 전쟁을 치른 곳이다. 이즈미르는 깊숙히 바다에서 들어와 있는 이즈미르 만을 끼고 발달한 국제 항구 도시이다. 이 곳의 고대 유적으로는 아고라가 대표적이며 상업 중심지 해안가 코냑 광장에는 이즈미르의 상징 이즈미르 시계탑이 있다. 이 탑은 오스만의 마지막 황제 술탄 압들라밋2세 왕위 25주년(1901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지역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만든 탑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시간에 코냑 광장의 이즈미르 시계탑에 햇살이 비친다. 광장 한가운데 도도한 모습으로 서 있는 시계탑을 배경으로 아내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는데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날개를 확 펼친 비둘기가 사진에 온전하게 잡혔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마치 합성한 것 같은 사진이 나왔다.

시계탑은 정성이 많이 들어간 기념물이다. 시계탑 옆에는 1748년에 지어진 작은 모스크(Konak Mosque)가 있다. 아마 시계탑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이 광장의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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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냑 과장에는 시계탑과 코냑 모스크, 재래시장, 현대 도시 분위기의 건물들이 모두 함께 있다.

아고라 앞의 재래시장

이제 광장에서 아고라를 찾아가 보자. 아고라는 시장 골목을 통과해야 찾아갈 수 있다. 엄청 큰 규모의 지역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재래시장을 구경하는 것도 매우 재미있다. 그 시장을 통과하고 나면 이즈미르의 그리스 유적인 아고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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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살아 있는 지하 세계

아고라는 알렉산더 대왕 때 만들어졌고 178년 지진 때 무너졌다고 한다.

그런데 유적지 정문이 어딘지 잘 모르겠다. 안내 표시판도 안 보인다. 다행히 감으로 찾아간 곳에 정문이 있었다. 길게 늘어선 기둥을 복원 중인 유적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 유적의 아치형 문위에 작은 얼굴의 여인 상이 새겨져 있다. 지진 후에 마크 루스 황제가 아고라를 복원하였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황제의 아내 파우스티나의 흉상을 새긴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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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을 기다리고 있거나 복원 중인 아고라 유적지. 현재의 모습으로도 과거 아고라의 규모와 화려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치와 기둥 옆으로 가면 지하에 있는 아고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지금 이 유적지에 방문객은 우리 둘 뿐.

아고라에 시장이 열렸을 당시 사용했던 수도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난다. 과거에 3층이었던 아고라가 지금은 지하만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아고라 건물이 꽤 웅장한 느낌을 준다. 지하 건물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깨끗하게 들리고 금방 고대인들이 나와서 물건을 사고팔 것 같은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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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흘러 나오는 수도의 물소리가 지하 아고라에 울려 퍼진다.

내 짝은 어디에 있을까?

지하 아고라를 나오면 넓은 공터가 나온다. 아직도 자기 짝을 찾아야 하는 돌기둥들이 한쪽에 쌓여 있다. 조금씩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언제 이 작업이 끝날지 모르겠다. 유적지 뒤 쪽 산자락에 허름한 집들이 보인다. 부산 감천문화마을과 같은 분위기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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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가격에 많은 것을 살 수 있는 곳

시장 골목으로 다시 나오면서 양고기 케밥(개당 10리라. 닭고기 케밥에 비해 두배 정도 비싼 것 같다)도 먹고 사고 싶었던 터키 젤리(500g에 5리라), 꽃차도 샀다. 시장물가는 참 착한 가격이다. 아내는 혼합 견과류 500g을 10리라에 샀다. 상인들 대부분이 영어가 안된다. 견과류 가게는 손님들로 붐빈다. 아내가 용기를 내어본다. 사야 할 견과류 앞에 서서 10리라를 내어 보인다. 종업원이 10리라에 해당하는 양만큼 무게를 달아 준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다 통한다.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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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 케밥을 파는 가계와 다양한 견과류를 무게로 담아 파는 가계

아까 양고기 케밥을 먹었는데도 배가 고파진다. 광장 입구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든다는 식당가가 있다. 식당 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릴 치킨 케밥, 비프 케밥, 차 2잔과 물을 시켰다. 나온 음식이 너무 맛있다. 그런데 양도 충분하다. 결국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다음날 다시 한번 먹었다. 가격은 47리라. 음식점 가격도 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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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식당에서 먹은 여러 종류의 케밥과 샐러드 등

분위기 즐기기 딱 좋은 곳!

이제 해가 지려고 하는 시간이다. 그냥 아톰에게로 가기에는 무언가 섭섭하다. 파도가 잔잔한 해안을 따라 공원과 산책로가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이 분위기를 즐기고 가자. 아내를 설득해서 페리 선착장 2층에 있는 분위기 있는 카페로 올라갔다. 젊은 남녀들이 분위기를 내기 위해 찾는 곳인가 보다. 가격이 조금 되지만 아내도 기꺼이 커피와 터키 차를 주문한다. 그래도 22리라이다. 참, 착한 가격이 다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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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냑 광장 앞에 있는 항구의 2층에 있는 카페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이상한가?

아까 저녁 먹으면서 사실 아내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케밥은 샐러드가 딸려 나오는 식사였다. 먼저 풍성한 샐러드와 고추 피클이 수북하게 접시에 담아 나왔다. 아직 본 음식이 안 나온 상황. 그런데 아내가 음식을 싸가자는 이야기를 한다. 아직 음식이 다 나오지 않았는데 싸가자는 이야기부터 하는지 모르겠다.

'왜 음식이 다 나오지 않았는데 싸가자는 이야기를 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나 보다. 순간 화가 난나보다. 아내가 왜 화를 내냐며 화를 낸다. 사연을 다시 들어보니 아내는 고추 피클이 너무 많아 남을게 분명하니까 싸 달라고 하자는 것이었단다. 나는 샐러드를 싸가자라는 말로 알아들은 것이다. 내가 아내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화를 낸 것이다. 내가 결국에는 사과를 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음식이 다 나오기 전에 싸갈 생각부터 하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오늘은 아들 생일이었네!

카페 창문 너머로 해가 지는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고 손님들로 빈자리가 채워져 가고 있다. 그 풍경과 분위기에 방금 전에 다투었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늘이 아들 성두 생일이다. 카톡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 여자 친구가 생일 챙겨주었다고 한다. 내년에 상견례해야 한다고 하니 이제 우리도 많이 늙었나 보다. 아내와 잘 살아야지.


단절 없는 트램

아톰이 있는 주차장을 나와 시내로 들어오기 위해 트램을 타고 이즈미르 해안가를 따라 달리다 보면 트램이 지그재그로 가는 느낌이 든다. 그냥 직선으로 가면 빨리 갈 수 있겠지만 나름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많은 도시에서 트램과 같은 교통수단이 도입되면 철도가 자연스럽게 공간을 분리하게 된다. 그런데 이즈미르에서는 트램이 해안과 주택가나 상가 지역을 단절시키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자동차가 다니는 지하도가 있고 그 지하도 위를 자연스럽게 공원으로 만들어 주택가나 상가를 해안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트램을 지그 재그로 운행하게 만들어서 생긴 넓은 공간에 공원을 조성했다. 트램 속도도 빠르지 않아서 사람들이 철로 위로 다녀도 문제가 없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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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조성된 해안공원과 트램역 그리고 이즈미르 만의 여러 지점을 연결해주는 카 페리 항에 불이 들어온 모습

깊게 들어와 있는 만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 특성상, 해안가를 따라 여러 개의 항구가 있고 그 항구마다 도시의 여러 지점을 연결하는 페리가 버스처럼 운행되고 있다. 주요 항구에는 페리 부두와 함께 트램 역도 있다. 그리고 공원도 함께 조성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과 차들로 붐비고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한가롭게 낚시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데이트하는 여유로운 사람들로도 붐빈다. 나는 이런 풍경이 좋다. 바다를 건너고 싶으면 배를 타면 되고 해안가에서 놀고 싶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즐기면 된다. 인구 400만이 넘는 바쁜 대도시 한가운데에 편안하고 낭만적인 공간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


더 따뜻한 곳으로 가야 한다!

이즈미르는 지중해 영향을 받아서 오늘 낮 최고기온이 9도인데 해가 진 지금 6도이다. 일교차가 거의 없어서 겨울밤에도 춥지 않은 편안한 해안이 있는 도시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내일 더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갈 계획이다. 이즈미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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