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75 - 이탈리아 바리에서 그리스 가기
장기 여행 중에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머리를 다듬는 일인 것 같다. 서울을 출발한 지 벌써 3달이 지났으니 머리가 많이 자라 불편해진다. 머리가 길면 덥기도 하지만 머리를 감을 때 물도 많이 들어간다. 항상 물을 절약해서 사용해야 하는 캠핑카 여행에서 물은 항상 소중한 자원이다. 오늘 저녁 배 타는 시간까지 남는 여유 시간에 머리를 깎기로 하였다.
2박 3일의 휴식처였던 폴리야노아마레 해안 절벽 위 정박지를 아쉬운 마음으로 아침 일찍 떠난 것도 바로 미장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바리에서 우리가 선택한 미장원은 중국계 이민자분이 운영하시는 곳이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중국계 미용사들은 한국인의 머릿결을 나름 잘 알 것이라는 기대감과 다른 곳보다는 비싸지 않다는 장점 때문이다. 과감히 입장. 당연히 가격은 적당한 비용. 여러 가지 머리 스타일이 있는 사진첩을 주더니 고르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른 스타일이 있다.
한국에서 찍어온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이 모양으로 깎아달라고 하니 이분이 알았단다. 결과는 아내도 대 만족, 나도 대 만족. 기분 좋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저녁 시간에 바리를 떠나는 배는 다음날 아침에 그리스에 도착한다. 그리스로 가는 배 안에 음식 가격이 비싸다는 소리가 있어서 배에서 먹을 음식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이탈리아인이 차 문을 두드린다. 주차비 2유로를 내란다. 물론 영어는 아니다. 우리가 못 알아듣자 2유로 동전을 보여준다.
'이 친구 보게! 이 장소에서 며칠 동안 정박했어도 주차비 달라는 놈이 없었는데 말이지!'
사실 이곳은 무료 주차장이다. 그런데 돈을 달라니. 일종의 삥 뜯기. 속으로는 그렇지만 2유로를 가지고 힘들게 따질 수 없는 일. 그리고 이놈이 어떤 놈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혹시 그 유명한 이탈리아 마피아면 어떡하지.
여기는 이탈리아이다.
"무언가 소위 삥 뜯긴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그래도 괜찮아. 지금까지 이탈리아에서 아무 일도 없었잖아. 그냥 기부한다고 생각하자."
조금 일찍 항구로 가본다. 파트라스 가는 배는 항구에서 가장 안쪽에 있다. 예약 이메일에 적혀 있는 예약번호와 여권을 보여주니 티켓 발권은 아주 간단하게 끝났다. 마치 부산에서 제주가는 배를 타는 기분이다. 매표소 직원은 그리스 파트라스라는 커다란 종이를 한 장 주고 차 앞에 두란다. 그리고 5시부터 차를 배에 실을 수 있단다.
남은 시간 동안 항구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다른 부두에는 커다란 페리 여객선이 정박하고 있다. 저 배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드디어 항구에 해가 저물고 있다.
아톰이 페리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톰을 출발시키니 직원이 손짓으로 가야 하는 방향을 알려준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나는 다른 차들을 쫒아 간다. 아톰이 처음에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차들을 놓쳤다. 그런데 우리가 타야 할 배로 들어가는 문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같은 장소를 두 바퀴 돌았다. 분명 이 곳 어딘가에 있을 텐데 말이다. 그때 다른 직원이 같은 방향을 또 가리킨다. 분명 이 쪽 어딘가에 있다는 거지.
정말 있었다. 세관직원 두명이 아무런 불빛도 없는 문 앞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조금 어이가 없지만 이 또한 이탈리아이다. 간단하게 여권과 표 검사를 하고 통과. 짐검사는 없다. 그리스 파트라스는 이 배의 마지막 종착지이어서 인지 아톰을 배 가장 안쪽에 주차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저녁 식사, 침낭과 세면도구를 간단히 챙겨 선실로 올라간다.
이제 이탈리아여 안녕. 언제 다시 보려나.
배를 예약할 때 아내와 많이 고민한 일이 하나 있다. 페리의 방을 예약할 것인지 아니면 의자에 앉아 갈 것인지이다. 생각보다 요금 차이가 꽤 크다. 비용을 절약하면 괜찮은 호텔에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이다. 하루 밤인데 그냥 의자에 앉아서 가보자고 합의.
우리가 예약한 곳은 커다란 방안에 뒤로 조금 제켜지는 의자이다. 이 곳보다 더 싼 곳은 데크 자리이다. 그러니까 실내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 아무 곳에서나 자유롭게 각자 잠을 자면 된다. 여름과 같이 따뜻한 날에는 가능할 것도 같다. 이 테크는 의자보다 30유로나 싸다.
의자가 있는 방을 예약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그런데 이분들 의자 3개에 한 명씩 누워버린다.
"아하! 지금 비수기라서 의자를 침대처럼 쓰려고 하는 거구나."
우리도 신속하게 움직인다. 항상 붙어 다니던 부부가 이렇게 빨리 떨어지다니. 맨 뒷줄에 자리를 잡고 가져온 수건으로 의자 사이의 틈을 매운다. 이제 나름 편한 침대가 되었다.
이제 잘 곳을 정하고 나니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지금부터 배 안을 탐사해보자. 식당은 정해진 시간마다 열리고 카페는 항상 영업을 한다. 그리고 그 앞에 손님이 앉을 자리도 많이 있다. 식사를 하는 사람, 맥주 한잔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누워계신 분도 있다. 의자 칸에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서 조용하지만 이곳은 시끄럽다. 그러나 30유로나 절약할 수 있는 곳이다. 그냥 우리도 데크로 예약할 것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든다.
여름과 같은 기간에는 캠핑카를 가져온 사람들은 캠핑카에서 잘 수도 있지만 겨울에는 금지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객실 칸에서 화물칸으로 가는 문을 잠가 놓는다. 캠핑카에서 자는 것으로 예약하면 비용이 꽤 싸진다.
우리에게 항상 어디나 관심을 받는 곳은 식당이나 카페가 아닌 화장실이다. 일반적으로 국가 간 이동을 하는 장기 페리 화장실에는 샤워시설이 있다. 그러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나 감격스럽다. 아침에 머리도 깎았고 이제 목욕까지 하면 새 신랑과 신부가 되어 그리스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이제 목욕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목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우리 부부. 이 능력도 캠핑카 여행이 우리에게 준 또 다른 선물이다.
진짜 또 한 번의 신혼여행이 다시 시작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