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아담과 하와로, 하나님이 만드신 첫 사람이야. 그러나, 좀 더 심혈을 기울여 살펴보면 ‘아담’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첫 번째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전 인류의 대표성을 의미해.
‘아담’의 어원이 앗수르어의 ‘아다무’라는 설이 있는데, ‘만들다’ ‘생기다’라는 뜻으로 ‘아담’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자를 말하거든. 따라서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이 만드신 아담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
1.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어. 창 1;27
고대 근동 문화 안에서 하나님 형상의 의미는 왕이야. 당시 왕은 마음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자유자 곧 신이었기 때문이지. 신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어. 다만 실존에 의한 표현만이 가능할 뿐이기 때문에,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 즉 왕처럼 만들었다는 뜻이거든.
인간을 왕처럼 만들었다는 것은 3가지 의미가 있어.
① 인간의 존귀성; 모든 인간은 왕 같이 귀한 존재로 창조되었어.
② 인간의 평등성; 모든 인간은 왕같이 존엄하여 남자, 여자, 위, 아래의 차별이 없어. 부모 자식 관계도 수평적 관계란다.
③ 인간의 통치성; 모든 인간은 창 1;28에 기록된 바와 같이 “생육, 번성, 땅에 충만, 땅의 정복, 생물들을 다스림”이라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왕과 동등한 통치권을 가지고 있어.
고대 창조 신화 중 인간을 신의 성품을 닮도록 만들어 함께 하는 신은 없단다. 처음부터 인간을 만들 계획이 없었지만 힘들게 노동해야 했던 하층 신들이 격분하자 그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인간은 신들을 위해 노동을 제공하는 수단이었을 뿐이었지. 그러나 성서의 인간은 신을 위한 노동 제공자가 아니라 신적 지위를 갖는 것이란다.
이집트에서 종노릇 했던 출애굽 세대들에게 모든 사람은 왕과 같은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완전한 자유인임을 선포한 것이지.
2.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신 하나님; 창 2;8-17
하나님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셨어.
① 창 2;8의 “...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의 의미
‘에덴동산’(간 베에덴); 에덴 안 동산
‘에덴 안’과 ‘동산’은 동의어야. 우가릿어와 고대 아람어에서 ‘에덴’은 풍요롭고 기쁨이 충만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행복이라 말한단다. 하나님은 사람을 풍요롭고 기쁨이 충만한 상태 안에 두신 것이야.
‘창설하시고’(바이타); 심다
‘창설하다’라는 의미는 단순히 만든 것이 아니라 심은 것이야. 심는 것은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 맺도록 한 것으로 ‘풍요롭고 기쁨이 충만한 상태’가 자라도록 하신 것이지.
첫 사람 아담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베푸신 은총이란다.
② 에덴(행복) 동산은 어디일까?; 창 2;9-14
에덴동산이최고의 선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최상의 아름다움이란다.
고대 사람들은 첫 세상은 사람이 살기 좋은 낙원이었다고 믿었어.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신화 ‘엔키와 닌후르삭’에 등장하는 ‘딜문(Dilmun)’은 ‘순수하고, 깨끗하며, 빛나는 땅으로 일곱 산골짝을 너머 높은 산 위에 있었는데 신의 거룩한 법으로 다스림을 받는 거룩한 땅’이라 한단다.
실제 자그로스 산맥의 남동쪽 끝 부분의 한 지방인 에렉의 동편 땅을 ‘아랏타’, 또는 ‘딜문’이라고 불렀어. 그곳은 풍요로워 살기 좋았고 보석과 귀금속이 풍부하였다고 해.
그리고 딜문에 관한 묘사를 “... 딜문에서는 까마귀가 울지 않는다. 매도 울지 않는다. 사자는 잡아먹지 않는다. 늑대는 어린양을 잡아채지 않는다. 새끼 염소를 죽이는 들개도 없다. 곡식을 먹어 치우는 곰도 없다. 눈 아픈 사람이 눈 아픈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머리 아픈 사람도 머리 아픈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늙은 여자는 늙은 여자라고 말하지 않고, 늙은 남자도 늙은 남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가수는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라고 기록했단다.
사 11;6-9의 말씀과 흡사해. 이미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에덴 사상’이 만연해 있었던 것이야. 결국 에덴 사상은 죄로 인하여 파괴된 세상을 가슴 아파하며 태초에 창조주가 만드신 평화스러운 세상으로의 회복을 염원한 것이라 할 수 있어.
3. 다스리고 지켜야 할 에덴동산; 창 2;15-17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진정한 자유인이었어. 이 엄청난 자유에 비해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만은 취하지 말라는 아주 작은 제한을 두셨지.
이 말씀은 곧 ‘너희가 취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는 있지만 선, 악을 판단하시는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다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야.
진정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이 작은 제한만큼은 지켜낼 수 있지 않았을까?
4. 다스리고 지키지 못한 에덴동산; 창 3;1-6
창세기 3장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선악과 사건 이야기란다. 이 사건을 일으키도록 미혹한 것은 뱀이야.
창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더냐?”
“들짐승 중에(하야트 핫사데)”--들의 사람, 원천의 사람
ית--누구, 어느 사람, שׂד--원천, 유방, 짐승 השׂדה--그 원천, 그 들
‘들짐승’이라 번역한 것은 곧 ‘들 사람’ 또는 ‘원천의 사람’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천적인 속성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다는 것이야.
그러면 “뱀” 은 무엇일까?
사술-민 23;23‘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인간의 술책
깨달음-창 30;27 “너로 인하여 복 주신 줄 내가 깨달았노니...”
뱀은 사술과 깨달음으로도 번역된단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능에서 비롯되는 사고력으로 육체의 본성에서 나는 궤휼 한 사고를 사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사고는 깨달음이라 번역한 것이야.
고대 문학에서는 뱀은 인기척도 없이 다니며 혀가 갈라져 있기 때문에 다른 마음을 품도록 유혹하는 동물로 자주 등장해. 성경도 고대의 문학적 배경 안에서 쓰인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해.
“간교하더라(아룸)”라는 단어도 선하게 쓸 때는 슬기로움(선하게 쓸 때), 악하게 쓸 때는 간사함으로 번역하지.
욥 15;5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택하였구나”
잠 12;16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지능을 선하게 쓰면 지혜, 깨달음이 되나 악하게 쓰면 사술, 간교함이 되는 것이야. 하와는 선악과를 보고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처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단다. 그러나 하나님이 금한 것이기에 먹지 않아야 했어.
하와는 먹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었지만 육체의 본성에서 나는 욕망을 따라 자신의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금령을 범하는 데 사용했어.
하나님이 주신 지능과 자유의지는 인간에게 양날의 칼과 같아.
선하게 사용하면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하나님의 통치성을 대리하는 것이 되지만, 탐욕에 의한 간교함일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인간관계도 파괴되어 그 삶에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단다.
자신의 유한성과 제한성을 인정하렴.
그래야 사술과 간교함을 취하지 않게 된단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분명하게 인식하길 바래.
그래야 제한된 경계를 넘지 않게 되거든.
더 가져서 완전해지려고 하지 마.
불완전한 가운데서도 누릴 것이 많단다.
말씀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은 달라.
아는 것은 지식으로 그치는 것이지만 믿는 것은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지.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의 교훈을 마음에 새겨 하나님의 말씀의 경계를 넘지 않는 하루를 살아내시는 한 해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