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가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
창 25:21-34 용맹하지만 경솔한 에서
이삭이 리브가의 불임으로 인하여 기도한 지 20년 되던 해, 이삭의 나이 60에 비로소 에서와 야곱을 낳았단다. 20년간 아이가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며 기도했다는 것에 대해 넌 어떻게 생각하니? 우리 같으면 20년을 한결같이 기다리며 기도할 수 있었을까? 믿음의 선조들의 인내를 본받을 수 있기를 바라.
오늘은 이삭이 기도의 응답으로 얻은 아들들 중 장자 ‘에서’ 이야기를 할게.
에서는 용맹한 들 사람
에서와 야곱은 태중에서부터 싸웠어. ‘싸우다’로 번역된 히브리 동사 ‘라 차츠(רצץ)’는 ‘박살 내다, 깨뜨리다, 상처를 입다’로 번역된 단어인데 얼마나 싸웠으면 리브가가 어쩔 줄 몰라 하나님께 물었겠어?
이때 하나님은 이미 두 민족으로 나뉘어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 말씀하셨어.
기도로 잉태된 아들, 그것도 쌍둥이가 왜 서로 격돌하며 나뉘었을까? 하나님이 일부러 그렇게 만드셨을까? 아니면 인간의 죄성 때문일까? 인간의 죄성 때문이란다.
이 둘은 태중에서부터 기싸움이 치열했던 것 같아. 특히 에서의 기질은 활발했기 때문에 태중에서도 야곱이 좀 치였을 것 같아. 그런데 야곱도 만만치 않았어. 기질은 조용했지만 결코 에서에게 장자의 자리를 내어주기 싫어서 발목을 잡은 것을 보면 야곱은 앙큼한 기회주의자였던 것 같아.
에서는 기질대로 사냥을 잘하는 용맹한 들 사람이 되었지. ‘들 사람’이란 육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단순하며 사냥을 즐기는 호탕한 사람이었던 거야. 그런데 이삭은 이런 에서를 좋아했어.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긴 망령된 사람
어느 날에서는 태중에서부터 장자를 넘보던 교활한 야곱의 술책에 넘어가고 말았어. 사냥하고 돌아온 에서가 배가 고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요구하는 야곱의 요구를 들어주고 말았단다.
에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장자의 자리를 너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고 하던가 ‘사단아 물러가라’라고 해야 했어. 육의 사람이었기에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던 것이야.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에서를 망령된 자라고 말했어.
히 12;16 “음행 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인 것을 알고 있지? 그러므로 육신을 위한 사회적 직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직분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교회의 직분이란다.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하신 바와 같이 그리스도 중심의 영적인 삶이 우리의 삶을 평안케 한단다. 영적 직분은 세상에서는 가질 수 없는 우리의 특권이니 영적 직분을 소중히 여기고 주께 충성하기를 축원한다.
부모에게 근심이 되었던 사람
에서는 부모에게도 근심을 안겨주는 사람이었어. 비 할례자인 가나안 헷 족속 유딧과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여 부모에게 근심을 안겨 주었고(창 26:34), 계속해서 이스마엘의 딸과 이방 여러 나라 여자들을 아내로 맞았단다(창 28:6-9, 창 36:2-3).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에게 근심을 만들어 준단다.
잠 10;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잠 19;13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난 아침마다 말씀을 묵상하는 이쁜 딸을 두어 너무나 감사하단다.
너의 딸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 좋은 딸로 성장하기를 축원한다.
에서의 눈물
형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은 어느 날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아 버렸어. 마침 에서도 사냥을 마치고 아버지께 축복해 주기를 청하지만 한발 늦어버렸지 뭐야. 에서가 소리 질러 슬피 울며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하여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어.
에서의 눈물은 자기의 실수를 애통하게 여기는 눈물이었을까? 아니었어. 분노와 원망과 원통함의 눈물이었어. 실수를 애통하게 여기는 슬픔의 눈물은 회개를 일으키지만 분노와 원망과 원통함의 눈물은 죄를 범하게 한단다. 그래서 그는 야곱을 죽이려는 마음먹었던 것이지.
용맹하지만 경솔한 에서의 결말
그토록 소중한 장자권을 농담처럼 음식 한 그릇에 팔아넘기고 아무런 후회나 각성 없이 살다가 뒤늦게 그 가치를 깨달은 에서에게 주어진 결말은 호전적이고 난폭한 민족과 황폐하고 척박한 땅에 대한 약속뿐이었단다(창 27: 39-40). 에서는 에돔 족속의 선조가 되었지만(신 2:5, 대상 1:35-54, 렘 49;7-10)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제외되고 말았어. 롯과 이스마엘처럼 말이야.
결국 에돔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계속 적대 관계에 놓이게 되자 선지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심판을 예고했고, 그들이 돌이키지 않으므로 인하여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어.
에서에게서 우리는 영적 직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았어. 세상에서의 직분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영적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을 대가로 얻은 선물이란다(고전 6:20, 7:23).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너무나 큰 은혜란다.
주를 섬기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요 평안이란다.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거라. 영적 직분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그리스도의 도를 좇아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열매 맺어가는 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새순 장로교회 장정숙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친정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체로 편집한 내용입니다. 인용하실 때는 출처를 명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