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복통에 시달렸다. 배 속에 똬리를 튼 진통이 주기적으로 잠을 깨웠다. 아침이 되자 통증이 잦아들어 그럭저럭 오전을 보내고 오후 늦게야 학원에 갔다. 수업을 따라 이래저래 자세를 해봐도 몸이 무겁고 허리도 뻐근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배가 볼록하네요. 뭘 먹었길래 이럴까요?”
나의 불편한 상태를 알아본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했다.
“어젯밤에 달리 먹은 것도 없는데 소화가 잘 안 되어 잠을 설쳤어요.”
“혹시 뭐, 걱정거리라도 있어요? 마음이 체하면 음식이 얹히기도 해요.”
앗. 그렇지. 걱정거리. 있지요. 있고 말고요.
퇴사 후 훌쩍 일 년이 지나버렸고, 퇴직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글로 수입 창출하기란 오리무중이니, 근심이 없을 수 없다. 의기양양 사직서를 내던지고 홀가분하게 회사생활을 청산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편치 않다. “자기 밥그릇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은 한 인간으로서 결코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공지영의 섬진 산책 中)”는 말에 깊이 동의하는 자로서, 현상태의 개선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원인분석을 하는 사이 선생님이 난데없이 누워보라고 했다. 아뿔싸!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선생님께 아프다고 하면 안 되는데.’
내가 아프면 선생님은 매번 비상 모드로 돌변한다.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닌데 방심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라, 나는 매트 위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먼저 배의 가스를 빼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한 다리씩 무릎을 접어 허벅지를 가슴 쪽으로 당긴다. 최대한 끝까지 당겼다 싶으면 다리를 툭, 하고 풀어준다. 뒤꿈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긴장이 늦춰진다. 다리가 자연스레 당겨질 때까지 여러 차례 해준다. 다음은 바람 방출 자세(아파나 아사나)를 한다. 접은 양 무릎을 손으로 잡고 들숨과 함께 다리를 몸통의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고 날숨과 함께 몸통 쪽으로 당긴다.
이런 식으로 장을 자극해주고 나서 등, 허리 풀기를 한다. 체했을 때 배만 아픈 줄 알지만 실은 등과 허리도 같이 아프다. 배에 가스가 차면 복부에 힘이 없어 등과 허리만으로 몸통을 지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긴장된 뒤쪽도 풀어줘야 한다. 방식은 간편하다. 아파나 아사나에서 바로 팔로 다리를 감싸 안아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등 마사지를 해주면 된다.
마사지로 뒤쪽이 풀리면 쟁기 자세(할라아사나, 다리를 들어 머리 위로 넘기고 손으로 등을 받쳐 엉덩이가 하늘을 향하도록 지지한다)로 넘어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깨로 서기(살람바 사르반가아사나, 쟁기 자세에서 양손으로 등을 받치고 다리를 천장으로 서서히 들어 올리면서 척추를 편다). 이 정도 하면 복부 기관에 활력이 생기고 장도 풀어진다. 여기서 다시 쟁기 자세로 다리를 머리 위로 넘겼다가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누운 자세로 돌아온다. 일반적이라면 이후 교각 자세(세투 반다아사나)에서 송장 자세(사바 아사나, 가장 마지막에 하는 자세)로 넘어간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선생님은 갑자기 공작 자세(마유라아사나)를 해보자고 했다. 요가에는 동물의 형상을 빗대어 만든 아사나가 많다. 굉장히 자연 친화적이다. 고양이, 소, 개, 독수리, 물고기, 원숭이, 낙타, 사자, 비둘기, 까마귀가 있으니 내가 아는 것만도 수두룩하다. 문제는 공작은 새롭게 등장한 존재라는 점이다. 그 화려하고 엄청나게 긴 깃털을 자랑하는 새로 변신하라니. 간신히 인간이 되었는데(레슨 5. 참조하세요) 조류로 회귀라니.
참으로 못마땅했으나 체했을 때 효과 만점이라는 선생님의 회유에 시도해 봤다. 공작 자세는 먼저 두 팔꿈치를 모아 복부 중앙에 대고 손바닥으로 땅을 짚는다. 여기서 두 다리를 든다. 모양을 그려보면 내 팔이 공작의 다리, 내 다리가 공작의 기다란 깃털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시선은 사선 바닥을 향한다. 이게 가능하냐고? 나도 안될 줄 알았는데 되긴 된다. 다만 인간이 굳이 왜 이런 요상한 자세를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복부에 가해지는 압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두 다리를 펴고 중심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고통스럽다. 길고 길어 아름다운 깃털을 들고 다녀야 하는 고달픈 공작의 삶에 격하게 공감할 즈음 체기가 쑥 내려갔다.
하지만 이렇게 아사나가 끝날 리 없다. 선생님은 추가로 활 자세(다누라아사나, 엎드려 배는 바닥을 밀고 손으로 발등을 잡아 들어 올리는 후굴자세)를 시켰다. 덧붙여 활 자세를 유지한 채 앞뒤로 바이킹처럼 흔들흔들 구르기까지 한다. 이쯤 되자,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곤란함도 온데간데없어졌다. 몸을 조율하면 마음도 조절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확인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밥그릇 책임은 넓고 먼 시야로 차근차근 준비하리라’ 결심하게 되고 이미 행복해져 버린 나는 저녁엔 치킨을 먹어야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