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이 약하다. 종이로 만들어졌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 먹고 나면 하루에 쓸 힘이 고갈된다. 나갈 채비를 마치자마자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고, 이후의 시간은 사회적 요구와 카페인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버틴다.
하지만 이십 대 중반전엔 건강한 편이었다. 초중고까진 단거리 달리기를 특히 잘했고 체력장 1등급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운동회 반 대표주자이기도 했으며 아픈 게 어떤 느낌인지 몰랐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던 것이다.
엉뚱하게도 당시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 내 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굵은 허벅지와 알밴 종아리를 부끄러워했고 오히려 병약한 친구를 부러워했다. 조례 시간(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매번, 지나치게, 긴 사정을 감안하더라도)을 못 버텨 픽픽 쓰러지고 체육 시간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만 하는 그런 친구 말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이런 사고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나는 신체 일부에 대해 잦은 놀림을 당했고 그로 인해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가장 감동한 소설의 주인공이 나와 전혀 다른 이미지였기에 힐난하는 눈으로 자신을 평가했다.
여러분의 궁금증을 자아낼 그 소설은 황순원의 ‘소나기’다. 순수한 사랑 이야기의 원형으로 꼽을 만한 소나기는 사실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다만 소설 속 소녀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허약했고 소나기 후 죽음에 이름으로써 이야기의 아름다움이 배가되었을 뿐이다. 안타까운 소녀는 소년에게 사무치게 그리울 첫사랑이 되었는데, 하필 나는 소녀의 죽음에 매료되어 첫사랑의 대상은 자고로 소녀처럼 연약해야 한다는 논리적 오류를 품게 되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당시(그땐 그랬지) 드라마 여주의 단골 캐릭이 청순가련이었다는 점이다. ‘청순가련’은 언제나 뭇 남성의 사랑과 보호를 받았다. 주체적인 사고를 못 했던 나는 매스컴이 주입한 이미지에 물들어 백혈병마저 뭔가 신비롭고 성스러운 존재만이 앓는 병으로 여겼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는 다양한 캐릭으로 흥미를 높였지만 ‘말라깽이 지상주의’는 여전하다.
내심 도시 소녀 느낌의 첫사랑이 되길 바랐던 나는 가느다란 다리에 핏기 없는 피부를 갖고 싶었다. 물론 땡볕에서 놀기 좋아하고 뜀박질에 능숙한, 종종 닭다리와 비교되던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내가 삼사십 대를 거치면서 가느다란 팔다리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그러나 복부비만에 병색이 완연한, 결국 청순가련과는 차원이 다른 사태를 맞이한 것은 단지 노화 때문만은 아니다.
본격적인 체력 저하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시작됐다. 처음엔 위장이 나빠졌고 어깨, 허리, 방광으로 아픈 범위가 넓어졌다. 온종일 공부하던 몸은 빈혈과 위염에 시달리다 기절하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그때부터는 몸에 신경을 썼어야 했다. 그러나 공부 시간을 줄이지 않았고 두 번째 졸도를 맞이했다. 이후는 어떻게 되었을까.
빠른 속도와 효율성, 성공에 대한 광기 행렬에 발맞추어 나는 계속 나아갔다. 몸을 그저 생각을 따라 움직여줘야 하는 기계처럼 대했다.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쓸모없다고 원망하면서. 그즈음 이차 시험이 끝나자마자 응급실에 실려 가 장절제술을 받은 선배가 합격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합격을 위해서라면 견디지 못할 일이 없었다. 꿈을 위해 올인하는 모습이라니 좀 멋진데, 라고 생각했다.
공부는 재미있었다. 지식의 방대함에 경악했지만 집중하다 보면 저 너머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빠진 건강은 열심히 산 증거였다. 그러나 거듭되는 낙방으로 유리멘털이 되었고 불면과 우울, 자학의 시간을 보냈다. 모의고사 성적은 좋았으나 정작 시험장에선 자리에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사 일간 치는 시험의 사흘째부터는 눈앞이 핑 돌고 머리를 가눌 수 없었다.
결말은 사법시험을 포기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 후 이십 년이 지났다. 작은 변주는 있었으나 나는 여전했다. 지나치게 노력하는 태도를 드높이는 문화를 추앙하다 몸의 각종 부위에 문제가 생겼다. 뒷이야기까지 하자면 어처구니없으니 이쯤에서 생략하겠다. 중요한 점은 치우친 사고방식으로 스스로를 병들게 했다는 것이다. 죽지 않았으니 다행인 걸로.
그나마 요가를 만난 덕분에 근래 가장 컨디션이 좋다. 인도 전통 의학에선 몸을 느끼지 않는 상태(예를 들어 요통이 없으면 허리를 느끼지 않고, 치통이 없으면 치아에 신경 쓰지 않는 것)를 건강한 상태로 본다는데 머리카락, 손톱을 제외하고 온몸을 골고루 느끼는 걸 보면 아직 분발해야 한다. 아사나를 통해 몸에 쌓인 독소를 배출하고 몸을 유연하게 만들 작정이다. 남은 삶은 시험공부처럼 해치워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으려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고 자연스러움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허약함은 신비롭지도 성스럽지도 않았다. 훌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