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5. 인간이 되고 싶어요 (1)

by 바람

따뜻한 바람이 꽃향기를 실어 나르는, 만물이 생명력을 뿜뿜 하던 날. 내 마음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온몸이 근질근질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잠시 산책할 요량으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한껏 들떠 코를 킁킁대며 사부작사부작 걸었다. 그렇게 공원 몇 바퀴만 걷고 돌아가려 했는데…


활기찬 새소리와 쏟아지는 햇살에 붙잡혀버렸다. 머릿속은 이 순간을 좀 더 만끽하자는 충동으로 아우성이었다. 발은 이미 유혹에 굴복해 산을 향하고 있었다. 산길에 러닝화는 불편했지만 하얀 아카시아꽃 향기에 취해 정신없이 걸었다. 물기 가득한 나뭇가지와 연둣빛 잎사귀 사이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늦봄을 누렸다.


무척 행복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이렇게 순탄할 리 없지 않은가. 대개 해피엔딩은 동화와 로맨스 영화에서나 단골손님이다.


그날 이후 허벅지 바깥쪽이 아프기 시작했다. 다음날은 엉덩이가, 그다음 날은 발목으로 통증이 옮겨갔다. 급기야 허벅지 안쪽, 허리까지 번갈아 가며 아픈 통에 아름다운 봄 산책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격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산길을 조금, 아니 좀 많이 걸었을 뿐인데 왜 이럴까.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디딜 때마다 찌릿하게 신경을 파고드는 감각에 서글펐고, 앞으로 아플 날만 남았다고 한탄하던 친구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다람쥐처럼은 아니지만 가뿐히 산을 오르내리던 시절이 꿈만 같았다.


몸이 불편해 며칠 학원도 빠졌다. 그러다 요가를 하면 좀 낫지 않을까, 남몰래 기대하며 학원에 들어섰다. 선생님은 앞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구석에 앉아 다음 수업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주섬주섬 매트를 들고 수련실 한쪽에 자리를 잡으려는데 선생님이 다가왔다.


“바람님. 혹시 어떻게 걷고 있는지 알고 계세요?”


선생님은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있었지만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걸음걸이가 얼마나 인상적인지(실은 선생님의 관찰력이 유별나다고 할 수밖에 없지만) 입구부터 시작해 탈의실, 화장실, 수련실로 이동하는 내 모습이 빵게 혹은 침팬지 같았다고 한다. 심지어 좀 전은 탈춤을 추듯 덩실덩실 어깨, 팔까지 양옆으로 흔들며 온몸을 풀어헤쳐서 다니더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비슷한 지적을 받아왔기에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옆으로 흔들면서 뒤뚱뒤뚱 걷는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빵게처럼 옆으로 가지는 않는답니다. 앞으로 가지요.”


혹여 쩍벌 할까 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나 보다. 의기소침해진 내 앞에 연이은 표현들이 던져졌다. 그렇게 걸으면 허리, 골반, 무릎 아플 텐데요.


“어떻게 아셨어요? 안 그래도 요즘 삭신이 쑤셔서 산책도 못하고 있어요.”

아프다는 대답에 선생님은 사뭇 진지해졌다. 얼른 일어나 한번 걸어보라고 했다. 걸음걸이를 선보이는 것은 민망한 일이나, 그래도 신경 써서 걸으면 빵게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안 해서 그렇지, 열심히 하면 공부를 잘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처럼.

그래서, 신경 쓴 결과는?


빵게는 면했으나 이젠 조류가 될 차례인가. 목부터 앞으로 나가고 뒤따라 가슴을 내밀면서 꼬리뼈를 뒤로 하고 걸었다(비둘기가 걸어 다니는 모습과 흡사하죠).


아랫배에 힘을 주고, 꼬리뼈를 딱 당겨, 척추를 세우고, 발로 땅을 밀어서, 다시 걸어보라는 명이 떨어졌다.

네네.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또 가슴부터 앞으로 나가잖아요,”

‘제 가슴은 원래 돌출형인데요.’

“옆으로 흔들리지 말고 앞으로 걸어 봐요.”

‘선생님이 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면서요. 앞으로 가면 옆으로도 흔들리는 게 당연하지요.’


속으로는 따박따박 대꾸했지만 선생님의 요구에 장단을 맞췄다. 한시라도 빨리 이 순간을 벗어나야 했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도저히 안 되겠다더니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책은 없으니 뭐라도 머리에 얹고 걸어보자고 했다. 탈의실 앞에 비치된 물티슈를 통째 들고 왔다. 오. 마이. 갓!


그렇게 나는 물티슈를 얹고 수련실을 돌았다. 중간에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원점으로 돌아갔다. 배를 넣고, 척추를 위로 뻗으면서 허공을 돌고, 돌았다.


어디선가 바비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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