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소망, 이미 되었다고 생각하기
스무 살 중반 남편을 만나기 전에 ‘시크릿'이라는 아주 유명한 책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자석이 되어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라는 내용의 책이었다.
귀감을 받아 열심히 보고, 매일 일기를 쓰면서 원하는 것을 끌어당겼다.
내가 바라는 소망은 나와 잘 맞는 남자친구를 만나서 연애하고 싶은 것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매일 운동하고 스트레칭하면서 다이어트를 하고, 자기 전 일기를 쓰면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 상세하게 적었다.
오래되어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듬직하고 이해심이 바다와 같고, 평정심이 있고, 기복 없는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열심히 바란 덕분에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요새 건강 이슈로 지독한 민감함을 경험하고선 안정을 찾고 싶은데 왜 안 될까?
고민하다가 문득 이 시크릿 책이 생각났다.
성인이 된 이후부터 늘 안정을 바라면서 사는데 나는 이 평화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답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내가 불안했던 이유는, 안정보다는 불안을 없애는 데 집중해서였다.
"안정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라기보다, "불안함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비현실적인 것을 소망으로 빌었다.
이렇게 되면, 내가 두려워하는 감정과 부정적인 것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고
그 감정이 찾아오면 '나쁜 감정'이라며 감정 자체를 몰아내려고 힘을 쏟는다.
나의 경우, 몰아내고 싶은 감정은 나의 평화를 깨는 상황이었다.
매달 하는 생리, 아이 문제, 건강 문제, 인간관계 변수, 계획이 틀어지는 상황, 미래에 대한 걱정 등
어떤 것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큰 불안을 느꼈다.
그런데, 문득 불안보다 안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저항이 없는 삶인 것 같아서 너무 편안해졌다.
미래의 내가 잘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단지 망하지 않기 위해서만 애쓴다면, 작은 실수조차도 큰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는 잘 살 거야."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도 안정된 삶을 살아간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실수쯤은 늘 겪는 일의 일부일 뿐이라고 조금은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게 되자 비로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이 생각을 떠올리기 전, 방금 전까지도 나는 불안한 사람, 예민한 사람, 가복이 있는 사람,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언할 수 있는 건 나는 결코, 이런 면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상회할 장점이 많다는 것을 안다.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나를 좋아하고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고 기복 때문에 어려워도 늘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기분 관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뇌도 착각을 해서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난 오늘, 나를 위해 긍정 확언을 써봤다.
내가 되고 싶은 미래의 나를, 떠올리며 바라는 것을 적었다.
그곳에는 완전한 꿈같은 환상을 바라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이 와도 내 기조를 유지하며 관리한다는 내 정체성이 있었다.
나는 건강관리를 잘한다.
나는 나를 위해 운동한다.
나는 정신적으로, 매우 안정된 사람이다.
나는 기쁠 때 함께할 좋은 친구들이 많다.
나는 슬플 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있다.
나는 배움을 위해 노력한다.
나는 오래 가지고 싶은 취미가 있다.
나는 경제적인 발전을 위해 매일 공부한다.
나는 작가다. 매일 책을 쓴다는 생각으로 글을 발행한다.
나는 나를 잘 파악해서, 내 기준에 맞게 무리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이 확언들을 계속 읽으며,
나는 점점 내가 되고 싶은 나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