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범위 +1
책상 앞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배지를 세워놨다.
나는 이 책상에 앉아 매일 글을 쓰며 검색도 하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이 관용적인 문구를 자주 보이는 곳에 두면, 자주 보는 만큼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늘어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어렵다.
나이가 들면 갈수록 유해진다는데
나는 싫은 건 더 싫어졌다. 확고해졌달까?
싫은 게 많기 때문에 남에게도 피해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내가 피해 보는 상황도 싫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약간은 무심한 태도로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나도 담담하게 넘기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그게 쉽지 않다.
나는 뭐든지 이유를 알아야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해가 되면 바로 수긍을 하는데, 이해가 안 되면 수월하게 넘어가지 못한다.
확실한 걸 좋아해서 애매한 상황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불가능한 것 같다.
반대로 개똥 같은 상황도 이유가 충분하면 쿨 하게 넘어간다.
친구가 늦은 날엔 미안해 보다 , 왜 늦었는지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 넘어가는 스타일이다.
내 성격이 드러나는 일화가 얼마 전에 있었다.
아이 학습지 선생님이 연락도 없이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운 선생님으로 바뀌고 아이가 전 선생님이 낫다고 투덜거렸던 참이라 그의 지각에 썽이 났다.
전화를 해봐도 연락이 닿지 않아, 담당자를 통해 어떤 상황인지 말해달라고 부탁드렸다.
한참 뒤에, 교통사고가 나서 경황이 없어 연락을 미처 못 드렸다고 전화가 왔다.
나는 단순히 지각을 했거나, 스케줄을 몰랐거나, 무단으로 연락이 안 되거나 이런 상황만 생각했지 교통사고는 내 예상 시나리오에 없었다.
놀라서 선생님 상태를 여쭤보니 다행히도 주차사고라서 놀라기만 하셨다는 얘길 들었다.
나중에 보강을 하기로 하고 푹 쉬시라며 말하고
전화를 끊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 존재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선생님의 주차사고 이후로 나는 이해 범위를 +1,
하나의 사건 정도를 추가했다.
하나의 사건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예상할 수 없던 범위의 일들이라고 칭한다.
그렇게 내 시야의 반경을 넓혔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래 그런 상황일 수 있지.’
‘그래 그런 사람일 수 있지... ’
‘그래 그 사람이면 그럴 수 있지.’
‘그래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라고 말이다.
나에게 중요한 확실함을 포기하는 것 같은데
그 애매함이 나쁘지 않다.
나에게 타인을 이해하는 마법의 문장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