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우울증인 것 같아. 외로워."
학원을 금방 다녀온 아이의 피곤하고 단순한 투정이라고 생각한 나는 사춘기 호르몬 때문인 것 같다고 가볍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아이는 내 말에 정색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왜 그래?" 아이는 내가 방에 따라 들어가자 침대에서 벽을 보고 누워버리고는 번데기처럼 이불을 감싸 그 속으로 숨어버렸다. 아랑곳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꼭 안았다.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야생동물처럼 아이는 팔꿈치로 몇 번 세게 밀어내더니 이내 포기하고는 잠잠해진다.
"미안해. 그런데 진짜 외로워?" 내 질문에 아이는 대답이 없다. 사실 질문을 하는 나에게 어떤 예상답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참 뜸을 들이던 아이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요즘 들어 우울하고 종종 외로운 기분이 든다고 했다. 꽤나 진지하게 말해서 상황의 심각성을 멍청이 엄마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진짜 외로운 사람한테 호르몬이 하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린 엄마라니! 큰 돌이 머리를 내리쳐 눈앞이 새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아이가 이제 15살. 중학교 2학년이니 내 말이 다 잔소리로 들릴 것이라고 생각했고, 우리 둘 사이의 거리가 더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게 부모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나 때문에 외로움을 느꼈다. 돌아보니 아이는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엄마는 정시에 퇴근을 한다고 했을 때에도 7시가 다되어야 집에 돌아오니 일주일에 두 번은 하교 후 저녁도 먹지 못하고 학원으로 가서 밤 9시가 다 되어야 나를 만난다. 게다가 형제도 없는 외동이니 반겨줄 다른 가족도 없고 사람 좋아하는 아이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게 어쩌면 더 이상한 일이다.
"우리 애완동물이라도 키워볼까?" 바위같이 누워있던 아이가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갑자기 고개를 돌린다. 강아지는 우리가 집에 없는 시간이 너무 길어 강아지 입장에게 미안해서 안될 것 같고, 곤충이나 거북이, 햄스터 같은 것들이 후보에 올랐다. 마침 다가오는 금요일이 지역에 오일장이 열리고 거기서 구입할 수 있으니 가보자고 약속했다. 아이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자기에게 새로운 일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감에 다시 말이 많아졌다.
아이와 약속한 금요일. 오전에 급한 일들을 마무리해 서둘러 조퇴를 하고 아이를 데리고 장에 가서 햄스터를 한 마리 사 왔다. 햄스터, 사육통과 먹이, 간식 등을 챙기니 아이 손이 한가득이다. 오랜만에 장에 온 김에 둘러보자던 약속은 온데간데없고 바로 집으로 데려가야 된다고 아이가 고집을 피웠다. 그렇게 아이에게 첫 애완동물이 생겼다.
"엄마 이름은 뭘로 할까?" 아이는 우리 집에 온 햄스터를 열렬히 환영하며 달뜬 기분이 되었다. 아이에게 우리가 어릴 적 같이 봤던 만화 속 주인공 쥐의 이름인 '투비'는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더니 피식 웃기만 한다. "왜 그래? 너 투비를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아이는 기억이 너무 잘 난다며 그 이름으로 하자고 동의를 했고, 어제도 오늘도 투비의 이름을 부르며 간식을 주고 돌보며 다가가고 있다. 아이는 마음 쓸 대상이 생겼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모양이다.
"엄마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어. 나 때문에 조퇴까지 하고 고마워" 아이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을 꺼냈다.
삶의 고비를 아이와 단둘이서 하나씩 넘기며 살아온 지 5년째. 그 시간만큼 아이를 잘 알고 있고 부모로 무르익었다고 생각했었는데 큰 자만이었다. 사춘기 아이의 외로움을 미처 살피지 못한 나는 아직도 설익은 부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