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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12. 2024

엄마의 어설픈 착각

아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믿어왔다. 아이의 취향, 마음, 입맛, 능력 등 내가 모르는 것은 없다고 자신했다. 아이를 키우며 끊임없이 관찰했고 아이에게 뭐라도 하나 더 해주려고 노력했다. 아이방 휴지통을 치우다가 안 보이던 과자봉지가 자주 보이면 좋아하는 과자인가 싶어 다음날 아이 책상에 하나 올려두곤 했다. "엄마 내가 과자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어?" 놀란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보는 아이의 그 말투와 모습을 보는 내 모습을 사랑했다. 올해는 그런 내 모습을 전처럼 자주 볼 수 없었다. 여러 번 내가 틀렸다는 사실과 아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며칠 전 아이의 생일이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아이의 선물을 준비했는데 환불사태를 맞이하고야 말았다. 미리 써둔 브런치 글과 선물을 줬는데 아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엄마 나 이제 게임 안 해서 이거 필요 없는데." 기쁨보다는 실망을 드러내며 말하는 아이를 보니 내 입꼬리도 내려간다. "환불되면 엄마 그냥 환불하는 게 좋겠어." 아이의 나이에 맞는 선물을 검색으로 찾아가며 샀건만 결말은 이렇게 새드엔딩이 돼버렸다. 아이가 생일날 친구에게서 받은 뉴진스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보며 "엄마 현우 진짜 센스 있지 않아?" 자랑하는 소리를 듣게 된 나는 패잔병에 다름 아니다. 의문의 1패를 당한 나는 뉴진스 앨범을 사줘야 했었나? 하는 아쉬움을 뒤로했다.


"엄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뭔지 알아?"

"당연히 알지! 너 사과를 제일 좋아하잖아!" 아이에게 처음 먹인 과일이 사과였는데 이유식 할 때부터 갈아서 주면 그렇게나 잘 먹었었다. 여전히 매일 사과를 먹을 정도로 아이는 사과를 좋아한다.

"땡! 다른 과일이야!" 아이는 내 대답을 예상한 듯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큰소리로 말했다.

"다른 과일을 사과보다 좋아한다고? 그럴 리가!" 말도 안 되는 대답에 나 역시 목소리가 커졌다.

"엄마 그건 아기 때고 지금은 다른 과일을 더 좋아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른 과일을 뭘 좋아하는지 도무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럼 뭔데!" 괜히 아이에게 성질을 내고 만다.

"파인애플!" 아이는 급식에 파인애플 나오면 친구한테 고기반찬을 주고 파인애플로 바꿔먹을 정도로 자기는 파인애플을 좋아한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의 식성만큼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날 아이에게 파인애플을 간식으로 챙겨주며 아이가 파인애플을 사과보다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15살. 사춘기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아이는 많이 변하고 있었다. 달라져 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자주 놀랍고 반갑지만 가끔은 당혹스럽다. 아이도 사춘기가 처음이고 나도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일이 처음이기에 자연스러운 일일 거라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어쩌면 아이를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어설픈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착각은 아마 모든 걸 완벽하게 알고 챙겨줄 수 있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던 마음들일 것이다. 아이가 나의 마음 따위는 개의치 말고 더 많이 세상을 경험하고 느끼며 더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찾아나가길 응원하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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