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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20. 2024

나의 플레이리스트

15살 아이의 방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사춘기 아이의 방은 무릇 닫혀있어야 하지만 아이방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있다. 덕분에 나는 아이의 모습을 언제든 볼 수 있는 자유를 아직까지는 누리고 있다. 가끔 아이도 기분과 필요에 따라 방문을 닫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문이 벽처럼 느껴진다. 방문이 닫힌다는 건 집이라는 공간에 물리적으로 같이 있을 뿐 하루 잠깐 보는 우리 사이에 결코 좁혀질 수 없는 틈이 굳건하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언제  자주 닫힐지 모르는 아이의 방문이기에 열려있을 때 뭐라도 해주고 싶어 기웃거린다. 


가끔 간식을 챙겨주고 장난을 걸기도 하지만 요즘은 직접 가기보다는 거실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뉴진스의 음악을 틀어준다. 뉴진스 음악도 다양한 버전이 있다. 재즈버전, 피아노 버전 등 많기도 한 유튜브 음악 중에서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찾고 방해가 안되게 아이의 눈치를 슬며시 보며 적당한 소리로 틀어놓는다. 거실에서 틀지만 음악은 아이방까지 전달이 되어 각자의 공간에서 함께 음악을 듣는다. 운이 좋은 날에는 음악에 맞춰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변성기가 온 아이의 목소리에 뉴진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자주 음악을 틀다 보니 나도 외워져 버려 뉴진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내가 만든 쿠키 너를 위해 구웠지' 나도 모르게 어느 날 한 소절 따라 부르자 아이가 "엄마 뉴진스 노래가사 다 외웠어?" 하면서 놀란 눈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라도 아이랑 같이 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내 마음을 아이는 알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엔가 아이가 컴퓨터 앞으로 가더니 음악을 바꿨다. 내가 고른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다 싶었다. 처음 듣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건 무슨 노래야?"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음악이야." 아이는 유튜브에서 뭔가를 찾더니 화면 가득 음악 화면을 틀어놓고 다시 자기 방으로 갔다. 나를 위한 음악이라니! 꾸밈없이  '나 너 좋아'와 같은 돌직구 사랑 고백을 받은 것처럼 괜스레 기분이 설렜다. "오! 엄마를 위한 서비스야?" 아이가 생각하기에 난 어떤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걸까? 궁금한 마음에 틀어준 음악을 맞춰보려고 귀를 기울이는데 난데없이 기타 소리가 났다. 기타 소리가 이렇게 좋구나 싶어 아이가 틀어두고 간 음악이 뭔지 확인을 해봤다.


 '노을 보면서 듣는 몽글몽글 일렉기타 playlist'  하던 일을 뒤로하고 잠시 아이가 나를 위해 틀어준 음악을 멍하니 들었다. 잔잔한 노래가 일렉타로 연주되어 집안에 울려 퍼졌다. 하루 내 쌓였던 피로와 일도 엄마 노릇도 다 잘 해내려고 꽉 잡아 단단하다 못해 굳어버렸던 마음이 플레이리스트 제목처럼 몽글몽글해졌다. 그 뒤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마다 아이가 나를 위해 골라줬던 음악을 습관처럼 고 있다. "엄마 그 음악이 그렇게 좋아?" 매번 듣고 있는 나에게 아이가 물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왜 엄마가 이 음악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냐고 물어봤다. 아이는 "엄마가 딱 좋아스타일의 노래야"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지만 내가 좋아할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아준 아이의 관심이 좋았다. 가끔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준 모습에서 나를 더 분명하게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몽글몽글 해지고 싶어 아이가 골라준 음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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