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사춘기를 겪으며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올라왔다. 여드름으로 인해 잔뜩 붉게 상기된 얼굴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급기야 자기 얼굴이 못생겼다고 말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거울을 보다가 그 불만이 심한 날에는 유전자 탓이 아니느냐며 나를 그림자 취급하며 아무말이나 해댔다.
"엄마가 보기에는 남자답고 멋진 얼굴이야."
"엄마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거야."
내가 보기에는 얼굴도 작고 머리도 직모에 이목구비도 남자아이 답게 멋져 5초 슬램덩크 서태웅 닮은 얼굴인데 아무리 말해도 아이는 엄마니까 그런거라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어느 저녁 시간. 밥을 먹다말고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아이가 갑자기 피식 웃는다.
"엄마 우리 기가샘 웃겨" 기술 가정을 담당하는 선생님을 말하는 듯 했다.
"갑자기 수업하다가 나보더니 oo이 잘생겼네."라고 하더라고. 처음에는 놀리는 것 같았는데 계속 그렇게 말해." 그렇게 말해놓고 엄마인 나한테도 겸연쩍었는지 다들 자고 있었는데 자기는 안자고 있어서 일부러 좋게 말해주려고 한 것 같다고 말을 덧붙였지만 아이는 그 말을 되새김질하며 기분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봐. 엄마가 말했잖아. 너 멋지다니까" 기가샘의 한 마디가 추운 아이의 외모 자존감 온도를 1도는 올려준 것 같았다. 그 뒤로 아이의 외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늘 귀여운 그 얼굴이다. 변함없는 외모와 달리 아이는 거울을 보다가 더이상은 성을 내지 않게되었다.
"엄마 우리학교 선생님들이 나 알더라?"
지난주에는 아이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해서 며칠 학교에 반기브스를 하고 갔었다. 수업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무슨 일이냐고 걱정해줬다고 했다. 자기는 조용한 성격이라 선생님들이 자기를 모를 줄 알았는데 다 이름을 알고 있어서 놀랬다고 했다. 수많은 누군가 중 한명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알아봐주는 관심과 마음에 아이는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유쾌했던 것 같다.
사춘기 아이에게는 엄마나 가족의 말보다는 타인의 위로와 인정이 더 효과적이다. 사춘기 시기의 아이들은 타인의 반응에 예민하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자신이 부족한 점을 찾아내는데 탁월해 보인다. 이런 부족함의 발견은 꼬리를 물고 낮은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정말 드라마처럼 완전하게 고민 상황이 해결된다든지, 친구, 선생님과 같은 타인들의 긍정적 반응이다. 가족의 반응은 가족이니까로 뭉뜽그려져서 눈에띄는 효과가 없다. 굳이 엄마인 내 역할을 찾는다면 뭐 그런 일로 그러느냐며 아이가 가진 고민을 작게 보지 않는 것, 같은 고민을 줄기차게 말해도 그에 못지 않은 인내심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아이의 주변에 위로를 주는 타인들이 자주 소나기처럼 존재했으면 좋겠다. 마른 땅에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처럼 아이가 작게만 느껴지는 그런 날, 지나가면서 잠깐 위로를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면 아이의 사춘기는 무탈할 수 있었던 작은 순간으로 포장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