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거 봐봐!" 외출하려고 현관에 간 아이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오랜만에 듣는 '엄마 이거 봐봐!' 다. 아이는 늘 어릴 때부터 뭔가 내게 잘 보여주고 싶어 했고, 그때마다 내게 '엄마 이거 봐봐!' 하면서 부르곤 했다. 가보니 이번에는 아이가 운동화 밑창을 보여준다. 찬찬히 보니 운동화 밑창에 전에 없이 푸르스름한 색이 감돈다. 흰 운동화여서 그런지 가장자리를 따라 더 초록빛이 두드러진다.
"엄마 나 농구 너무 많이 했나 봐."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초록색 학교 농구 코트에서 저녁마다 농구를 하다 보니 그리된 모양이다. 아이는 운동화 산지 3개월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낡았다며 걱정하는 말을 했다.
"이거 산지 별로 안 됐는데." 운동화 한 켤레를 두 손에 쥔 아이 얼굴에 근심이 서린다.
"운동화가 빨리 닳았다는 건 네가 열심히 산 증거야. 잘했어! 더 농구해!" 아이가 내 말을 듣고 그렇구나 싶었는지 유쾌하게 일어나서 나갔다. "엄마 농구 다녀올게!"
아이는 요즘 햇볕이 제풀에 기세를 잃어가는 저녁이 되면 자주 농구공을 들고 학교 운동장으로 농구하러 간다. 슛이 잘 들어가게 정성을 들이는 건지 사전 의식처럼 농구공을 닦고, 생수 두병을 챙긴다. 슬램덩크 송태섭을 흉내 낸다며 빨간색 손목 보호대도 잊지 않는다.
"엄마 오늘은 슛 연습을 할까 아니면 드리블 연습을 하고 올까?"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그래도 엄마가 정해줘 봐." 엄마의 선택에 기꺼이 따라주겠노라고 으스대는 모습에서 잠시 어릴 적 아이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호기롭게 나간 아이가 돌아올 때면 정말 준비 없이 나간 외출에서 소나기를 듬뿍 맞고 돌아온 것처럼 온몸이 젖어 있다. 원래 땀이 잘 나는 아이의 머리는 두피부터 젖어 머리가 엉키고 윗옷은 몸에 찰싹 달라붙어있다. 가져간 물통은 텅 비어 있고, 오다가 목이 말랐는지 사 먹은 빈 이온음료 통도 보인다. 누가 보면 혼자 농구 연습을 한 게 아니라 농구대회에 나가서 4 쿼터까지 풀로 뛰고 온 줄 알 정도다.
농구를 시작해서 그런지 아이는 요즘 다시 초등학교 시절 아이로 돌아간 듯 어딘지 마음이 편안해 보인다. 수학문제가 안 풀리면 책상을 내리치며 1초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던 그 공격성도 사라졌다. 찡그리던 얼굴을 보는 횟수가 줄었고, 예전처럼 내게 장난을 거는 일이 잦아졌다. 실제로 숨이 찰 정도로 운동을 하면 도파민, 세로토린,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들이 우리의 기분과 감정을 긍정적인 상태로 만들어 준다고 한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공격성이 가득한 몸은 운동으로 자주 움직여 줘야 아이의 뇌가 안정된다는데 아마 아이의 뇌도 충분히 움직여져 위로를 받는 듯하다. 땀과 함께 넘쳐나는 호르몬이 함께 나온 건가 싶은 착각마저 든다. 만화의 한 장면처럼 아이가 농구에 몸과 마음을 쓰는 동안 호르몬들도 잠시 구경꾼이 되어 놀란 눈으로 아이를 지켜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주말 아침마다 날씨를 보게 된다. 오늘도 아이가 농구하러 갈 수 있으려나? 아이의 신발 밑창이 더 초록색으로 변하고 빨리 닳았으면 좋겠다. 그 닳음이 아이에게는 행복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