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차가운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가 어제였다. 절기를 확인하고 날씨를 느껴서일까 반쯤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차갑게 느껴지고 서늘한 기운에 걸쳐 입을 옷을 찾게 된다. 오늘 아침은 비까지 내리니 더 싸늘하게 느껴져 여름과 겨울 사이의 가을은 이렇게 사라지는 건가 염려가 된다. 여름과 겨울 사이 잠깐 가을이라는 계절을 느끼게 해주는 10월.
나는 10월을 기다리고 좋아한다. 아이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생일은 10월 10일이다. 10이라는 꽉 찬 숫자가 2개가 있으니 어딘지 풍성한 느낌을 준다. 아이도 자기 생일이 어쩐지 멋진 날 같다며 어릴 적부터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이에게 생일 선물은 무엇을 받고 싶냐고 며칠 동안 물어봐도 영 대답이 없다. "글쎄. 딱히 가지고 싶은 게 없는데." 아이는 어릴 적부터 생일이라고 뭘 사달라거나 갖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15살이 된 지금까지도 그래서 늘 생일 선물은 내가 고민해서 사주곤 했다. 6학년이 되어서야 갖고 싶은 게 있어도 나에게 부담을 줄까 봐 말을 안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뒤로 선물을 고를 때는 '엄마가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지?'라는 눈빛을 기어이 보고 싶어 욕심을 내게 된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아이와 같은 또래 제자들에게 어떤 생일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냐고 물어라도 볼 수 있었는데, 중학생 아이의 생일선물은 아이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부지런히 검색을 해보게 된다. 아이가 예상치 못하고 마음에 쏙 들어하는 그런 기가 막힌 선물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서 말이다. '중2 아이 생일 선물'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옷, 용돈이 대세처럼 나오다가 갑자기 전혀 생각하지 못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구글 기프트카드' 정확한 명칭은 구글플레이 기프트 카드! 이것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 모르는 나는 다시 검색에 들어간다. 게임 앱 내 결제 및 유료 앱 결제,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 등에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검색을 하다가 순간 번뜩 놀라운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이제까지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인데도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14세 미만이라 내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 투성이었다. 간단한 회원가입도 내 동의가 있어야 했고, 온라인으로 결제는 내가 결제를 대신해주곤 했다. 이번 생일날부터 아이는 만 14세가 되어 아이 스스로 회원가입도 할 수 있고 원하는 것들을 결제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더 이상 엄마의 승인은 필요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사실에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진정한 청소년이 된 아이에게 이번 생일은 이보다 좋은 날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플레이 기프트카드! 그래 이번 생일 선물은 너로 정했다!'아이가 어쩐지 이 선물을 좋아할 것만 같다. 스스로 결제를 해보는 경험을 하며 웃음 지을 아이를 상상해 본다. 엄마로부터의 진정한 독립을 꿈꾼 자의 미소일 테다.
"엄마 나 공부 다했는데 이 게임 아이템 사도 될까?" 아이의 기대감과 또래에 안 맞는 듯한 애교스러움이 느껴지던 톡은 이제 더 이상 볼 일이 없겠구나 싶어 아쉬운 건 오로지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아이의 생일 선물을 정하고 나니 마치 보물 찾기를 끝낸 기분이다. 선물이란 역시 받는 사람보다 준비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