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시 글을 쓰고 있지만 올해 한동안은 글을 쓰지 않았었다. 업무적으로 굵직한 일들이 연이어 있었고 끝나자마자 부서를 옮기느라 정신이 없어서도였지만 돌아보면 아이에 대해 글을 쓸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5월부터 아이가 짜증이 늘고 되는 일이 없다며 심술을 부리는 일이 잦았었다. 자신의 부족한 점만을 보고 머리에는 먹구름을 하나 올려놓고 언제 비가 내려도 어색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다녔다. 아이의 시그니처 미소인 반달웃음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공부를 하다가도 안되면 펜을 던지거나 책상을 쿵하고 내리치는 일도 많았다. 아이의 베개는 어느새 샌드백 베개가 되어 있었다.
혼자서도 아이를 잘 키우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혼자서는 잘할 수 없는 건가 의구심이 들었고 나 역시 지쳐갔다. 아이와 단둘이 사는 내게는 아이 일로 바통을 넘겨줄 피난처가 없었다. 아이의 낯선 모습에 어쩔 줄 몰라 침묵으로 지켜보기도 했고, 왜 그러냐고 물었다가 상처만 받고 돌아서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늘 그대로인 엄마인데 아이는 내게 너무나 낯선 아이였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매번 놀랐고, 내가 바빠진 탓에 아이가 이러는 건지 심각하게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다. sns에서 우연히 사춘기 아이에 대한 글을 읽었더니 자주 사춘기에 대한 게시물들이 떴다. 게시물 속 사연들은 내 눈을 더 크게 만들었다. 사춘기 아이와 매일 파국이라는 게시물 속에서는 아이 엄마의 깊은 한숨이 느껴졌다. 사춘기는 이런 시기구나, 다들 이렇게 아이와의 관계로 힘들어질 수 있는 관계구나 싶으니 다소 위로가 됐다.
어느 날엔가 아이와 대화하다가 서운함에 어떻게 엄마한테 이럴 수 있냐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했다. "엄마는 어른이고 나는 아이잖아. 어떻게 아이인 나한테 어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하는 거야" 아이의 말이 맞았다. 아이는 지금 호르몬이 지배하는 불안정한 상태로 자신의 행동을 마음대로 제어하기 힘든 시기다. 아이 말처럼 아이는 아직 나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일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를 연민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돼서 저렇구나,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구나. 연민이라는 렌즈를 끼고 보니 아이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 실망이나 화보다는 안타까움이 컸다. 아이가 말하면 뭐든 지나치지 않으려고 애썼고 입시 정보를 대신 찾아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화를 내도 나까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으려고 했다. 게임이든 공부든 운동이든 아이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하려고 노력했고 섣부르게 내 의견을 말하진 않았다. 아이가 원한다고 말하는 것만 내가 해줬고 하루 유일하게 함께 먹는 저녁은 정성껏 차리려고 했다. 아이를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니 아이도 차츰 자기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며 부족한 점을 찾아나갔다. 공부도 더 열심히 해보려고 계획도 세워보고, 힘들어하던 학원은 과감하게 그만두었다. 이런 시기가 몇 달이 지나니 아이의 마음이 안정되어 갔고, 아이가 걱정하던 일들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 다시 아이와 있는 시간이 긴장 없이 편안해졌고 웃는 일이 잦아졌다.
"엄마는 왜 이렇게 답답해" 아이가 중간고사 기간을 맞아 출력해 달라고 한 시험지를 건네었더니 다른 범위를 뽑았다고 아이가 핀잔을 줬다. "그러니까 엄마지" 하면서 아이를 놀리는 듯한 얼굴로 냉큼 말하고 방에서 나와버렸다. 등 뒤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저 엄마 못 말린다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사춘기 아이의 적당한 짜증과 핀잔을 손으로 퉁 튕겨버리는 유쾌함! 이게 바로 사춘기 아이를 둔 엄마의 사춘기력이다. 계속해서 사춘기력을 높여나갈 생각이다 만렙 엄마가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