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안상배
우리 할아버지는 성격이 급하고 허풍이 심하다.
세상에서 본인이 제일 잘난 사람이며 나머지는 다 바보라고 생각하신다.
맛있는 곶감을 침대 머리맡에 숨겨두시고 종종 남의 방에 들어와 좋은 물건이 있는지 염탐을 하기도 하신다.
그러다 덜미를 잡히면 시치미를 뚝 떼시는 분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혼자서 시간을 정말 잘 보내신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뇌경색이 오고 언어를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망가지셨다.
그래서 타인과 대화 나누는 것을 힘겨워하시고 단어를 잘 기억하지 못하신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멀리하게 되고 혼자 노는 달인이 되신듯하다.
나는 할아버지가 싫었다.
허풍도 심하고 남을 무시하고.
성격도 급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들.
할아버지가 좋았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좋았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함께 살던 할아버지는 나에게 애증의 관계였다.
혼자 놀기 달인이신 우리 할아버지에게는 취미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취미는 서예이다.
서예를 참으로 잘하신다. 어릴 때 한자를 배우셨다고 하시는데 기다란 한지와 먹을 준비해서 붓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모습이 참으로 선비 같아 보였다.
잘하신다고 칭찬을 해드리면 한자의 뜻을 설명해 주시고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덕을 쌓고 살아야 해.", "항상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평소 할아버지의 언행과는 불일치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말을 듣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방에 들어가면 벽에 기다란 줄이 걸려있고 붓이 하나하나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붓 관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셨다.
두 번째 취미는 자전거 타기이다.
전기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면서 마포에서 김포까지 다녀왔다고 큰소리를 치시는 분이다.
정치에 관심은 없지만 애국자이셔서 자전거 앞에 태극기를 걸어두고 다니신다.
한동안 나라가 떠들썩할 때 태극기 단체라고 취급받아서 싸움 나면 어쩌냐고 당장 떼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동네를 걷다 보면 종종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할아버지를 볼 때가 있다. 반가운 마음에 "어! 할아버지!"라고 인사하면 영화배우처럼 손 한번 흔들고 갈 길을 가신다.
또,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가서 맛있는 식재료를 사 오기도 하신다.
종이에 '미역줄기'라고 써드리면 그대로 사 오신다. 가끔 원하지 않는 식재료를 사 와 냉장고를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시지만 결국 맛있게 먹는 우리 가족이다.
세 번째 취미는 요리이다.
나 또한 요리가 취미이기에 할아버지와 부엌에서 자주 부딪혔다.
서예 할 때 쓰는 붓 관리는 철두철미하게 하면서 그 외에 것들은 엉망진창.
이리저리 흘리고, 대충 쓱 닦아버리고, 깨부수기 일상인 우리 할아버지.
그 모습이 짜증 나고 답답할 때가 많았다.
함께 요리할 때는 여러 번 짜증도 내었다.
"아 좀!! 할아버지!"라고 외치면 할아버지는 대수라는 듯 쓱 쳐다보고 대답도 안 하셨다.
항상 내가 칼질을 할 때마다 "조심해야 해"라고 말하면서 지나가신다.
'알아서 조심할 텐데 맨날 잔소리는..'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할아버지 말마따나 조금이라도 더 조심할 수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요리를 정말 잘하신다. 위생은.. 보장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 맛있다.
특히 생선조림이나 돼지김치찌개를 기똥차게 만드신다.
유학생 시절 여름방학 때마다 한국에 왔었는데 매번 엄마에게 전화해서 "할아버지한테 생강 많이 넣은 돼지김치찌개 해달라고 해주세요."라고 주문을 넣었다.
큰 솥에 생강, 돼지고기, 파와 묵은지가 많이 들어가 밥 말아먹기 딱 좋은 김치찌개를 끓여두시면 시차가 안 맞아 새벽에 눈 뜬 나는 밥 두 공기에 김치찌개를 말아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한 공기로는 용서할 수 없는 맛이다.
생선조림도 정말 잘 만드시는데 무, 조기, 양파, 파를 넣고 자박하게 끓여내신다. 아무리 따라 해도 이 두 가지는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없는 음식이다.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과 그 밑에서 일하는 나는 하루종일 가게에 있어야 했다.
밤 12시가 넘어 집에 돌아오면 할아버지는 그 새벽에도 매번 나오셔서 "왔냐. 왜 이렇게 늦게 왔냐. 너희가 안 오면 나는 무척 불안하다."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팔을 붙들고 부엌으로 데려가신다.
"김 구워놨다. 무척이나 맛있어! 너희가 이런 거 할 줄이나 아냐. 나니까 하지."
허풍을 약간 곁들인 자랑으로 그날 해두신 요리를 보여주신다.
주변을 보면 엉망진창. 대야에는 참기름이 제대로 헹궈지지 않아 미끌미끌, 바닥엔 맛소금과 김가루가 사방팔방 자리를 잡고 있다. 내일 먹을 김을 챙기고 할아버지가 어지럽힌 부엌을 다시 청소한다.
시장에 가시면 종종 말도 안 되는 재료들을 사 와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신다.
양동이에 피를 한가득 받아오신 적도 있고, 업체에서 쓸만한 사이즈의 곱창을 똬리채로 사오신적도 많다.
들고 오느라 힘드셨는지 식탁 위에 턱 하니 올려두시고 "자 이제 네가 정리해라. 나는 힘들다."라고 하신다.
처음 보는 식재료라 당황스러웠지만 그럼에도 피는 선지로 만들어 선짓국을 해 먹고, 곱창은 손질해서 맛있게 구워 먹는다. 하두 양이 많아서 몇 달은 먹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불평 없이 잘해 먹었다.
물론 할아버지 몰래 욕을 조금 하긴 했다.
한 번은 코피가 줄줄 나셨었는데, 난 응급처치를 배웠던 경험이 있었기에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얼음팩을 코에 대 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피가 멎었다.
최고라고 하시며 역시 손녀밖에 없다고 몇 분을 떠드신다.
아! 저승에 가실뻔한 할아버지를 살린 적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을 서성이는데 어디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할아버지 방에 갔더니 정신을 못 차리시고 사경을 헤매고 계셨다.
할아버지를 깨워도 반응이 없어서 119를 부르고 계속 할아버지 어깨를 치니 천천히 정신을 차리셨다.
꿈에서 강 너머 어떤 남자가 넘어오라고 했다고 하셨다. 내 생각엔 저승사자임이 분명하다. 내가 깨워서 살았다고 하셨다.
지금 와서는 이런 최후를 겪기 전에 그때 주무신 채로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네 번째 취미는 수리이다.
철물점을 하셨던 할아버지는 방에 잡동사니가 정말 많았다.
맥가이버처럼 모든 걸 쉽게 용접하고 분리하신다.
손재주가 좋으셨기에 옷 수선도 간단하게 해 주셨다.
물론 용의주도한 성격이 아닌 탓에 부모님과 내 마음에 안 드는 결과물이 많았던 게 태반이긴 했다.
바지에 난 구멍을 수선 맡겼더니 아주 두꺼운 가죽을 덧대어 옷을 버린 적도 있고,
신발 수선을 맡겼더니 못으로 이곳저곳 박아버려서 버린 적도 있다.
하지만 10번 중에 6번은 성공하시는 편이었다.
마지막 떠나신 날도 본인이 직접 벽에 박은 못을 이용해 가셨다.
지금도 나는 못이나 pp로프를 보면 흠칫한다.
마지막 취미는 패션이다.
옷수선을 잘하시다 보니 저절로 패션에도 관심이 많으셨던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우리 가족 중에 옷도 제일 많고, 신발도 제일 많고, 장신구도 제일 많다.
하루에 3~4번 정도 외출을 하시는데 나갈 때마다 다른 옷을 갈아입고 가신다.
모자, 선글라스, 겉옷, 바지, 신발, 손목시계.. 여자인 나조차도 할아버지를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여름에는 삼베옷을 즐겨 입으시고, 평소에는 양복을 입으신다.
분명 밖에서는 멋쟁이 할아버지처럼 다니시는데 집에서는 다 늘어난 러닝셔츠를 입고 다니신다.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기에 그런 행동양상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멋진 옷을 입고 영화배우처럼 가실 줄 알았다.
평소 입던 러닝셔츠에 후줄근한 잠옷 바지를 입고 가실 거라고는 단 1초도 상상하지 못했다.
죽음은 갑작스럽고 충격적이다.
대비를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죽음의 세계에는 그런 단어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정말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즐거운 거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지옥 같기도 하다.
희비, 삶과 죽음, 떠난 이와 남겨진 이들.
우리는 살아있다. 지금 나의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또한 살아있을 것이다.
우리 또한 언젠간 죽게 되겠지.
로마시대 사람들이 모두 죽은 것처럼, 조선시대 사람들이 모두 죽은 것처럼.
할아버지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다가, 두려웠다가, 혼란스러워진다.
이 글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공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