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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대하여-2

by 비비안 Mar 19. 2025

2024년 8월 15일 광복절이었다.


대한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

공휴일이었기에 부모님의 헬스장은 쉬는 날이었다.

나도 재택근무 회사일을 쉬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맞이한 온 가족의 휴식을 즐기기 위해 부모님은 새벽부터 노량진에 들러 킹크랩과 조개를 사 오셨다.

어김없이 아침부터 거실을 빙글빙글 걸어 다니는 할아버지, 킹크랩과 조개를 큰 들통에 넣어 찌는 엄마, 앉아서 핸드폰 게임을 하며 쉬고 있던 아빠.


할아버지는 궁금하신지 부엌을 계속 기웃기웃거리셨다.

아침부터 라면 반 개만 잡수셨다고 하신다. 잘했다고 했다. 다음에는 국물을 마시지 말아 보자고 말씀드렸다.

"배가 우리하다. 배가 이상하다." 어김없이 그 말을 하셨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일단 참았다. 오늘은 휴일이니 조용히 보내야지.


킹크랩과 조개가 다 쪄져서 넓은 접시에 펼쳐냈다.

할아버지에게 킹크랩 다리와 조개를 발라드렸고, 내장도 몇 입 드렸다.


아빠가 물었다. "맛있으세요 아버지?"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응."


더 드시라고 해도 더 이상 드시진 않았다.


우리가 남은 킹크랩과 조개를 먹는 동안 할아버지는 거실을 뱅글뱅글, 방에 들락날락하셨다.


남은 킹크랩 껍질은 다시 씻어 육수 내는 용으로 써보고 싶어 식품건조기에 넣어 전원을 켰다.

온 집에 해산물 냄새가 났다. 나쁘진 않았다.


후식으로 과자를 꺼냈다. 여러 가지 과자를 꺼내 한 줌씩 접시에 올려두었다.

할아버지가 관심을 가지셨다. 조금씩 덜어서 그릇에 드렸다.

그릇째 들고 거실을 걸어 다니며 과자를 드셨다.


어느새 다 드셨는지 계속 우리 접시의 과자를 하나 둘 가져가셨다.

그만 드시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결국 안쓰러운 마음에 몇 개 더 집어 그릇에 더 덜어드렸다.

그마저도 금방 드시고 더 드시려고 했다.

결국 우리도 과자를 모두 치웠다.


할아버지는 계속에서 배가 우리하다고 했다.

변이 안 나온다고 했다.

변비약을 더 달라고 했다.


오늘부터 음식을 더 드시니까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듣지 않았다. 계속해서 힘든 이야기만 하셨다.

조금씩 아빠와의 대화에서 언성이 높아지고, 매일같이 할아버지와 함께 집에 있던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매일 밥을 해드려도 감사할 줄 모르는 할아버지,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눈빛, 언어, 행동 모든 것에 나는 지쳐있었다.


뭐라고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한마디 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는 발로 나의 허벅지를 쿡쿡 찌르며 그만하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방 문이 닫히는 순간 내가 말했다.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너무 힘들어하시고 나도 힘들어."


엄마가 말했다. 그런 말 하면 후회한다고.



식탁을 치우고 엄마아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나도 엄마아빠 방에 가서 누웠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엄마아빠 방 문을 잠그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미웠다.


하지만 잠그지 않았다. 문만 닫았다.

침대에 누워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유튜브를 보다가 잠들었다.

우리 가족 모두 잠들었다.



해가 질 때쯤.. 눈을 떴다.

엄마아빠도 눈을 떴다.

거실에 나와보니 집이 고요했다.


할아버지 방문은 닫혀있었다.


저녁준비를 하려고 했다.


엄마는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 식사하셨냐고 물어보려고 하셨다.


방에 안 계신다고 했다.


"이게 왜 여기 있지?"라는 말을 하셨다.

"아휴 또 선풍기 켜두시고 나가셨네."라고 하시며 엄마가 할아버지 방에서 나왔다.


"방에 안 계셔?" 내가 물었다.

"나가셨나 봐."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아빠를 데리고 할아버지방으로 갔다.

"왜 이 스툴이 여기 있을까?" 엄마가 물었다.

"글쎄." 아빠가 대답했다.



나는 식품건조기에 말리고 있던 킹크랩껍질을 살펴보고 있었다.

낮잠을 자는 사이 바짝 잘 말랐다.


그때 할아버지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아이고, 우리 아버지 결국 일 저지르셨네."

"너 들어오지 마!"


엄마는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방에서 나오셨고, 아빠는 낙담한 눈빛.. 덤덤한 눈빛.. 놀란 눈빛으로 방에서 나오셨다.

무슨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돌아가신 줄 알았다. 자연사인줄 알았다.


문 뒤, 못에 노끈을 걸어 목을 매다셨다고 했다.


놀랄 틈도 없었다.

아빠에게 혀가 많이 나왔는지 물었다.

많이 나왔다고 대답하셨다.

오래된 것 같냐고 물었다.

오래된 것 같다고 대답하셨다.


119에 전화를 하며 엄마아빠를 소파에 앉혔다.

나만 직접 본 것이 아니었으니 내가 제일 침착해야만 했다.


구급대원이 전화를 받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할아버지가 목을 매달았다고 대답했다.

얼마나 오래됐냐고 했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구급대원이 일단 끈에서 빼내어 바닥에 눕혀놓으라고 했다.

싫다고 했다. 혀도 많이 나오셨고 이미 돌아가신 것 같다고 했다.

아빠와 내가 들어도 못 들 것 같았고 그냥 그 방에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구급대원은 곧 출동하겠다고 했다.


집이 조용했다.

고양이들조차 조용했다.

우리 셋은 거실에 앉아있었다.

방에는 할아버지가 매달려 있었다.


같은 집, 같은 순간 함께 있었다.


보이진 않아도 방에 어떻게 매달려있을지 보였다.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슬프지도 놀라지도.

그저 엄마 아빠가 놀라셨으니 내가 더 덤덤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아빠에게 미지근한 물을 한잔씩 드렸다.

놀라서 넘어질 수 있으니 의자에 앉으라고 말씀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과 구급대원이 왔다.

구급대원 몇 명이 방에 들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거실에 나와 언제 발견했는지, 누가 발견했는지 등등을 물어보았다.


살아계신걸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물었다.

점심 이후 3, 4시쯤이라고 말했다.


엄마랑 내가 자고 있는 사이 아빠가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그때까지도 거실을 걷고 있었다고 했다.

구급대원이 봤을 땐 돌아가신 지 꽤 된 것 같다고 하셨다.

혀도 많이 나오고, 몸도 많이 굳었다며 이미 사망하셨다고 했다.


구급대원들이 할아버지를 들어 침대에 올려두었다고 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생각났다. '술꾼도시여자들'도 생각났다.

'아 그래. 장례식장 예약을 우선 해야지. 자리가 없으면 못 들어가잖아.'

경찰관과 구급대원이 할아버지방에 있는 동안 나는 주변 큰 병원 장례식에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전화 두 번만에 원하는 방 크기의 장례식장을 예약할 수 있었다.


거실에 앉아있는 우리에게 경찰이 왔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싸웠냐고 물었다.

왜 돌아가신 건지 짐작이 가냐고 물었다.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어려웠다. 이미 나는 죄책감에 뒤덮여 있었다.

대략적인 설명을 했다.

최근 몸이 안 좋으셨고 식단조절을 하고 있었다고.

냉장고를 열어 할아버지의 음식을 직접 보여주며 해명하듯 말했다.


형사가 올 거라고 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순간 우리 가족은 애도만 할 수 없었다.

타살이 아닌 것을 보여줘야 했다.


경찰의 질문을 듣고 대답을 할 때마다 죄책감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물드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맑은 물에 검은색 잉크 한 방울 떨어트려 금방 퍼지듯 나는 죄책감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 장례식을 할 것인지 물었다.

방금 예약한 장례식장 정보를 알려드렸다.


그쪽에서 장의사가 올 거라고 했다.

그때 시신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장의사에게 문자가 왔다.

시신을 같이 들어주지 않으면 사람 하나를 더 데려가야 해서 10만 원을 지불하라고 했다.

지불하겠다고 했다.


분명 우리 가족인 할아버지인데, 아무도 시신을 들겠다고 하지 못했다.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겁에 질린 엄마는 떠나려는 경찰에게 형사나 장의사가 올 때까지 한 명이라도 같이 있어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안된다고 했다.

그럼 할아버지가 계시는 방 문이라도 닫아달라고 했다.

닫아주며 형사가 금방 올 거라고 했다.

그리고 모두 나갔다.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이 싫어서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기다리는 동안 구글에 검색해 장례식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챙겼다.

엄마아빠는 정신이 없을 것이 분명할 터이니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슬퍼할 시간도, 놀랄 시간도 없었다.


칫솔, 치약, 생필품, 옷 몇 가지 등등

장례식장에 가져가야 할 필수품들을 종이에 적어 챙기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도 정신을 차리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짐을 다 챙기고 거실에 앉아있었다.

1시간이 흘렀나..

왜 이렇게 안 오는 건지.


10분 정도 흘렀던 것 같기도 하고,

3시간이 흘렀던 것 같기도 하고..

시간 흐름이 이상하게 기억된다.


혹시라도 할아버지 방에 들어갈까 봐 눈치 없는 고양이들을 내 방에 격리시켰다.


그러다 보니 형사가 왔다.

경찰보다는 따듯하게 대해주셨다.

사건경위를 물어보고 할아버지의 방을 둘러보셨다.

장의사가 시신을 가져가고 난 후에 구 경찰서에 들르라고 했다.

작성할 서류가 있다고 했다.


떠나려는 형사에게 엄마는 다시 한번 말했다.

"저희 너무 무서운데 장의사 올 때까지만 같이 계셔주시면 안 될까요?"

형사는 알겠다고 했다.


대화가 오고 가지는 않았지만 함께 있어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의사가 왔다. 형사는 떠났다.

하얀색 옷을 입고 온 남자 둘.

한분은 나이가 많으셨고 한분은 젊었다.


들것을 들고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셨다.

우리 가족은 다른 방에 들어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 자체를 보고 싶지 않았다.


장의사가 입금을 하라며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주었다.

10만 원 입금을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시신과 함께 모두 우리 집을 떠났다.


다시 할아버지 방 문을 닫았다.


다시금 집에는 정막이 흘렀다.

이따금 방에 갇혀있던 고양이가 문을 긁는 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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