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머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케이팝 광인, 그게 나예요
나는 2006년, 그러니까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일 때에 처음 케이팝에 눈을 떴다. 슈퍼주니어의 뮤직비디오를 본 이후부터 나는 쭉 케이팝을 앓고 있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케이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무서워했다.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 때문이었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해?”, “그러니까 네가 연애를 못 하는 거야”, “제발 현실을 살아”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들은 전부 다 독이 됐다. 넌 내 기억을 지워야 해 암 포이즌.
하지만 친구들과 같이 노래방을 가면 나는 거의 무대를 장악했다. 내 춤사위를 보는 친구들은 경악했다. 어떻게 아이돌 춤을 다 알아? 어떻게 이런 노래까지 알아?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몸짓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춤보단 동작에 가깝다) 직캠을 많이 봐서 그래. 운동을 춤으로 해서 그래… 모쪼록 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욱 자세히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란 이름의 간섭)은 더욱 심해졌다. 물론 나도 잘한 건 없었다. 교수님에게 아파서 수업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메일을 보낸 후에 최애의 팬사인회 출퇴근길을 보러 달려갔다. 걔가 멀리서 보내오는 희미한 웃음이 내 것이라 믿으며 설레는 발걸음으로 자취방에 돌아갔다.
내 방엔 당시 좋아하던 아이돌의 앨범이 수십장 쌓여 있었으며, 놀러 온 지인들에게 하나씩 쥐어줬다. (당연히 가지고 싶은지 의사를 먼저 묻고) 콘서트가 밤 늦게 끝나 밤을 샌 뒤에 다음날 아침 첫차를 타고 와서 중간고사를 본 적도 있다. 이게 다가 아니지만 나의 사회적 체면을 고려해 여기까지만 기술하겠다.
맞다. 나는 내가 케이팝 덕후인 게 부끄러웠다. 왜 내 사랑은 현존하는 인물에게 향하지 않는지 늘 의뭉스러웠다. 모니터 안에만 존재하는 나의 사랑은 존재 가치가 없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문명특급’을 마주하게 됐다.
‘문명특급’의 엠씨 재재는 케이팝 팬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돌과 케이팝 노래 맞히기 대결을 하고, 아이돌 안무를 소화하며, 아이돌의 약력과 팬들만 아는 일화를 줄줄 읊었다. 나에겐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아이돌 덕후도 저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 헉 나도 저 노래 아는데. 나도 저 춤 출 줄 아는데! 그렇게 나는 그와 내적 동질감을 쌓기 시작했고, 결국 그의 사랑과 열정과 재능을 동경하게 됐다.
그리고 ‘문명특급’을 사랑하게 된 후로는 이제 더이상 케이팝을 좋아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세븐틴 콘서트에 다녀왔음을 당당히 인스타 스토리에 업로드했다. 블로그엔 세븐틴이 우리 동네에 왔었으나 나는 보지 못해 매우 우울했다는 내용의 일기를 적기도 했다. 나의 절친인 Y에게 세븐틴의 자체 콘텐츠 ‘고잉세븐틴’을 영업했다. 그 결과, Y는 나의 훌륭한 ‘덕메’(덕질 메이트)가 돼주고 있다.
내 덕질의 판도를 바꿔준 그와 ‘문명특급’에 감사한다. 덕분에 나도 꿈이 생겼다. 언젠가 재재 언니처럼 크게 성공해서 언니랑 같이 케이팝 댄스 배틀을 해보고 싶다. 케이팝에 있어선 승부욕이 꽤나 있는 편이지만 언니 앞에선 져도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