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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Jun 04. 2023

내가 인터넷 신문사를 퇴사한 이유 (하)

나의 마음과 글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방법


 결정적으로, 일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다. 내가 쓰는 글이 과연 대중에게 효용성이 있는가, 더 깊게 고민하고 싶었다. 하지만 밀려드는 일에 치여 숙고할 시간이 부족했다. 기계처럼 발제하고, 컨펌된 기사를 기계처럼 작성했다. 중요한 건 시간이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기사를 써내려가야만 했다.


  트렌드의 최전방에 있는 직업인데도 늘 '도태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인물에게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고, 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다고 말하는 일. 나는 나의 일을 충실하게 해냈지만 마음은 점점 비어갔다.


  퇴사를 결심한 직접적인 계기는 내가 관심있게 지켜보던 아이돌의 멤버가 하늘의 달이 되어버린 일이었다. 그 일이 알려진 당일에 나는 다행히 휴무였고(휴무가 아니었다면 나는 우느라 제대로 기사를 쓰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이틀 후에 출근했다. 이틀 후에도 여전히 그를 추모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가 과거에 했던 말, 행동, 습관 등이 모조리 주목받았다. 그의 절친한 연예계 친구들에 관한 기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것들을 기사로 옮겨 적으면 사람들은 '좋아요'나 '슬퍼요'를 누르고, 비애에 동참했다.


  슬픈 일을 널리 알리는 건 절대 악한 일이 아니다. 모두가 같이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나는 그 기사를 쓰면서 수십 번을 고쳐 울어야 했다. 그의 얼굴을 보면서 한 번, 그가 했던 말을 받아 적으면서 한 번, 그에게 팬들이 남긴 편지를 보면서 한 번. 부고를 전하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팀장의 폭력적인 언행에도 버텨냈지만, 슬픔에 마음이 무너졌다.


  이 일 외에도 내가 기사를 쓰면서 상처를 받고, 또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준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회사가 쓰라고 해서', '돈 벌어야 하니까'라는 말은 쌓아온 상처에 비해 너무나도 볼품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글쓰기는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 무의식 중에 하는 습관들을 촘촘히 짚어보는 행위다. 나는 나를 세밀하게 들여다 보며,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적확하게 옮겨 적고 싶다. 나는 나의 글을 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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