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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Jun 02. 2023

내가 인터넷 신문사를 퇴사한 이유 (상)

지난하고 괴로웠던 신입 시절을 톺아보며

MBC ‘무한도전’

 

 작년 겨울, 입사한 지 하루 만에 퇴사를 고민했다. 회사에서 가장 악명 높기로 유명한 G 팀장의 밑에서 일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에게 반말로 퉁명스럽게 지시했으며, 입사 n일 차 신입사원인 나는 그녀의 지시를 잘 소화하지 못했다. 그러면 G 팀장은 나에게 짜증을 냈다. 그녀는 나의 기사 한 문장 한 문장을 촘촘하게 지적했고, 그걸 듣는 나의 마음은 점점 말라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싱그러운 여름’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지적 받았던 일이었다. “싱그러운 건 여름이 아니라 봄 아니니?”라는 물음을 받았을 때 나는 ‘숨이 턱 끝까지 막힌다’라는 관용 표현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정말로 숨이 막히는 감각을 느꼈다. G 팀장의 발언은 나의 뇌에 유리 조각처럼 박혔고, 일 년이 훌쩍 넘게 지난 아직도 내게서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추석을 ‘민족 대명절’이라고 썼다가, “민족 대명절은 추석이 아니라 설날 아니니?”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었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지금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여전히 아무 말 못 했을 것 같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내게 깊이 박힌 트라우마다.


 사실 그녀의 언행을 견디지 못해서 입사 한 달 만에 퇴사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부장이 나를 회유했고, 나는 부장을 인간적으로 좋아했기에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 보겠다고 결심했다. 매일 내게 반말하는 팀장과 달리 부장은 늘 존대어를 쓰고, 내가 범한 오류를 부드럽게 바로 잡았다. 팀장을 제외한 팀원들도 다들 온화했다. 나를, 내가 쓴 기사를 믿어줬다. 그들 덕에 성장했다.


 어느 휴무 날에는 돗자리와 책, 수박을 가지고 한강으로 나갔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잠원한강공원이 위치해있었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고요한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책을 읽었다. 푹신한 햇살을 이불 삼아 신록에 누웠다. 그렇게 행복을 만끽할 때도 나는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 현실이 너무나 괴로워서 결국 눈물을 흘렸다. 돗자리에 덩그러니 앉아서. 지금 떠올려 보면 그때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고장나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병원에 갈 돈도, 시간도 없었다.


 나를 괴롭게 하던 팀장은 그해 이직해 회사를 떠났다. 누가 떠난다는 사실이 그토록 반가울 수 있다니. 팀장이 나가고 난 후로 타팀과 합쳐졌다. 새로운 팀장은 젠틀하고 친절했다. 팀장 덕에 업무가 조금 늘긴 했지만, 어차피 그게 다 나의 실력으로 이어지는 일이었다. 사랑 가득한 팀장과 팀원 안에서 일했지만, 일에 대한 나의 결핍은 채워지지 않았다. 직접적인 퇴사 사유는 나를 괴롭게 하던 팀장이 아니라, 나를 채우고 있던 마음이 점점 마모되고 있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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