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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Jun 26. 2024

68세 동갑 남편과 따로 또 같이 살기


 매일 아침 가족 채팅방에 안부가 오간다. 독립 가구 4개로 이뤄진 우리 가족 간 생존 신호 발신이다. 나는 햇감자와 햇보리를 섞어 지은 아침밥상 사진을 올린다. 세종시의 아들은  함께 사는 냥이 아롱의 한 컷으로 화답한다. 딸에게선 이모티콘 하나가 날아온다. 대구에 사는 남편은 무더위 속 건강을 챙기라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던진다. 근황에 대한 업데이트는 없다.   


 수상하다. 뭔가 일을 벌이고 있을 때 이 68세 롱디 남편은 조용하다. 몇 년 전 인터넷에 올라온 청도의 작은 산을 사들일 때도 그는 유난히 조용했다. 뒤늦게 알게 된 경주의 시어머님과 시누이들까지 나서서 뜯어말렸지만 “산을 갖고 싶다”는 그를 말릴 수 없었다. 하고 싶은 건 많고 실제 관리 능력은 턱없이 부족한 1인. 그 산 한 귀퉁이에서 그가 굴러 발목이 부러졌을 때, 나는 그저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놀란 시어머님은 잘 알고 지내던 무당에게 컨설팅을 받았다. 결과는 “그 산과 인연이 없으니 팔든지 소유권을 이전해야 더 이상 사고가 안 난다”였다. 남편은 산의 명의를 아들에게 넘기고 뜻하지 않게 산주의 아버지가 됐다.  

      

 대구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이 작은 산은 그의 ‘자연인’ 놀이에 최적화된 놀이터. 백퍼 ‘자연인’이 되기에는 체력이나 생존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한 뒤 그는  옛 주인이 남긴 움막을 보수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구들을 고쳤다. 프로판 가스통을 자르고 용접해 난로를 만들며 뻐겼다. 움막 리모델링은 공대 출신의 성취감을 듬뿍 누리는 계기가 됐다.      


 봄에는 산 두릅과 나무들을 뜯어와 대구 친구들에게 배달하고, 가을엔 다래 바구니를 형제들에게 돌린다. 약초에 입문했다고 떠들더니 올해는 온갖 약초 모종들을 심어 놓았다나. 요즘은 나홀로 움막의 여름밤을 만끽하는 중. 불빛 적은 산에서 망원경으로 좋아하는 별들을 실컷 쳐다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가족들은 멧돼지나 다른 야생동물 걱정을 하지만 그는 태연하다. 오히려  여름 산의 호젓한 아름다움과 시원한 밤의 맛을 모르는 우리를 가엾게 여긴다.  

    

 정년 퇴직 후에도 처자식이 있는 서울로 오는 대신 대구에 계속 머물기로 결정한 건 남편이었다. 그린벨트 지역 내 마당 넓은 집은 실로 방대한 취미활동의 무대. 그는 목공을 위해 목재를 사들였다. 침대와 식탁과 스툴을 만들어 쓰거나 선물했다. 망원경 20 여대를 보관할 공간도 만들었다. 쇼핑을 사랑한 덕분에 컨테이너와 비닐하우스엔 공구와 장비가 넘쳐났다.      


 한동안 나는 그가 사는 대구 평광동 집을 오가면서 살았다. 때로는 한 달의 절반을 대구에서 사는 반반살이도 했다. 요즘은 자주, 또는 오래 대구 집에 머물지 않는다. 힘에 부쳐서다.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 나는 집안에 물건을 별로 늘어놓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물건 많은 대구 집은 내게 두통거리. 내가 치우지 않으면 거실은 처리하지 않은 택배 포장지와 공구들,  책들과 쓰레기들로, 식탁 위는 약병들과 컵과 그릇들로 뒤덮이곤 한다. 바깥 수도관 누수 지점을 찾는다고 부엌 근처 땅을 파헤쳐 흙더미가 산을 이룬다. 마당도 그의 쓰레기 테러를 피하진 못한다. 플라스틱 조각들, 골판지와 비닐 등 생활쓰레기가 한데 어울려 썩어가거나 때론 바람에 날려 다니기까지 하니,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그 어질러진 풍경 속에서 태연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남편. 내 짜증이 때로 폭발했던 이유다. 

    

 그런데 웬일인지 나는 더 이상 짜증내지 않는다. 어느 시점부터 그가 조금 낯설어지기  시작하더니 낯익은 동네 할배처럼 느껴진 거다. 그가 꾸준히 집을 어질러대는 것에도 어느덧 웃어댈 수 있게 됐다. 이러다 보살이 되는 건 아닐까?      


 남편으로선 짜증나는 존재이지만, 한 인간 개체로 바라보자면 그는 ‘자기몰입형’ 인간이다. 무엇보다 호기심이 많다. 우주와 별들과 지상의 꽃들과 나무들, 고양이와 강아지들 뿐만 아니라 갈라파고스 제도의 동물들에게까지 관심이 뻗친다. 그는 연구한다. 약초를 연구하고 중국어와 일본어를 연구하며 스마트폰과 노트북 자판을 혼자 낑낑 만들고 있다. 큰 고무통에 오줌을 모아 텃밭 채소를 기르기도 한다.      


 그는 자기 관심사에 열심이고 관심이 없는 일들은 그저 모른 체 내버려두는 사람이었다. 그는 변하지 않는다. 내 폭풍 잔소리나 읍소로 그를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짜증을 내느라 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내가 변해가는 이유다.  

    

 생각해보면 남편의 무관심 덕분에 나 역시 자유로워진 걸 인정한다. 춤과 중국어를 배우러 동네 문화센터를 드나들고, 친구들과 여행을 다닌다. 남편 케어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내가 좋아하는 일에 쏟을 수 있으니, 남편의 무관심주의의 수혜자라고나 할까.     

   

 남편은 한 달에 한번 꼴로 SRT를 타고 서울 집에 온다. 가족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고 병원에도 가고 공구나 전자 제품 쇼핑도 다닌다. 달 밝은 밤, 그는 망원경을 들고 양재천에 나간다. 동네 사람들, 특히 어린 산책객들에게 달  표면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는 대구 달서구의 공원에서도 망원경을 펼쳐놓고 달이나 별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참가한다. 이건 일종의 ‘나라 빚 갚기’ 활동이다. 대학과 대학원 시절, 국가장학금을 받았던 그는 이 나라에 진 사랑의 빚을 평생 갚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덧 남편과 나는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어간다. 두 아이 양육으로 단단히 묶였던 우리 두 사람 간의 연대는 결혼 35년 무렵 무사히 끝났다. 딸과 아들은 결혼하지 않은 채 각각 독립했다. 그들의 독립으로 남편과 나도 독립할 기회를 얻은 셈이니 이 어찌 기쁘지 않을까. 


 남편은 당뇨병을 앓고 있어 관리에 신경을 써야한다. 그 핵심은 음식 조절. 떨어져 사는 나는 남편을 돌보지 않는 죄책감 비슷한 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방치’당하는 상황을 좋아하는 눈치다.    

  

 “요즘 뭐해요?”  라고 내가 물으면 그는 신이 나서 근황을 떠들어댄다. 마치 여름방학을 맞은 초딩처럼 천진난만한 얼굴로 마당 냥이들부터 텃밭 놀이, 그리고 최근 본 기발한 유튜브 영상들도 빼놓지 않는다. 얼핏 심심하고 시시해보이기까지 하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산다는 것, 타고난 능력인가. 쏟아지는 그의 수다를 듣다보면 나도 슬며시 웃게 된다. 남편은 이미 정해 놓은 묘비명, “잘 놀다갑니다”를 자랑하기까지 한다.     


 그가 지금처럼 오래오래 제 멋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아무렴, 행복추구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가 아니던가. 동갑내기 부부인 우리 사이 연대감은 예전보다 훨씬 느슨해졌지만,  각자의 꿈과 자유를 응원하는 ‘따로 또 같이’ 살기는 앞으로 쭈욱 계속될 것 같다. 이 모든 날들을 위해 어쨌든 건강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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