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이야기
적당히 통통하고 긴 우엉을 고른다. 감자 채칼로 흙이 묻은 껍질을 벗겨내면 미색의 통실한 알몸이 드러난다. 남편은 엄지 손가락 만한 길이로 얇게 채를 쳐서 식촛물에 담근다. 물기를 뺀 우엉에 물과 양조간장과 올리고당을 넣고 30분 이상 졸이면 일주일 간 먹을 수 있는 믿음직한 우엉조림이 된다. 어머님으로부터 전수받은 간편한 레시피로, 어머님 우엉조림보다 덜 끈적이지만 짭조름하니,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자마자 우엉 데치는 씁쓰름한 훈기가 훅 덮쳐온다. 또 우엉조림이냐고 타박하는 아이들에게 습한 날에 불 앞에 서서 아빠가 고생해서 만든 반찬이니까 특별히 남기지 말라며 밥숟가락 위에 우엉조림을 한 움큼 올려준다. 그러면 멸치볶음은 남겨도 되냐고 묻는 둘째에게 멸치는 털어서 볶기만 하면 되니까 덜 수고스럽다고 말해준다. 남편에게 이제 우엉조림은 5월 우엉 제철일 때 딱 한 번만 해주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러면 아내인 내가 엄청 남편을 살뜰히(?!) 챙기는 듯하지만 남편이 바로 니가 제일 문제야 받아친다. 난 그저 요새 반찬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뿐. 억울한 눈빛을 발사하며 다음 말을 햇완두콩을 넣은 흰쌀밥 한 숟가락에 저 깊이 밀어 넣는다. 꿀꺽. 남편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인 나는 며칠 째 랩을 벗겨 올라오는 반찬인 울릉도산 명이나물 절임에 묵묵히 젓가락질한다.
남편이 회사 부서에서 파트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에게 나름 청천벽력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남편의 부서가 매각되었다는 기사가 떴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 뒤로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불안을 호소하는 여러 직장인의 글이 올라왔다. 하루는 남편이 밤 사이에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는데 꼭 자신이 쓴 듯하다며 몽유병 있는 건 아니겠지 묻는다. 글인즉슨, 이곳에 뼈를 묻을 생각으로 여남은 해만 잘 버티자며 마음을 다독이는데 매각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너무 불안하단다. 대부분 이런 게시글에는 동조하는 댓글 대신에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든지, 이제 급식실 한산해서 좋겠다는 조롱하는 글이 달린다고 한다. 작성자는 이런 댓글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일기는 일기에 쓰라지만’이라는 전제로 글이 시작되었다. 웃펐다. 게시글은 금세 삭제되었다.
남편의 회사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불황기로 더 이상의 경제 발전이 단기간에 요원해 보인다. 기업마다 투자 파트의 수장이 아닌, 구매 파트 수장으로 대체가 되며 기업의 크기를 줄이고 있다. 남편이 속한 부서는 차에 없어서는 안 될 램프 담당 부서이지만 오랫동안 수익이 마이너스였다. 덩어리가 큰 남편의 부서는 바로 매각이 어렵다 해도, 기업이나 사모펀드에 매각이 되면 불안한 고용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타 회사로 매각이 되면 우리가 그동안 믿고 있던 복지와 연봉이 달라진다. 매달 줄어든 월급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다만, 아이들 대학 등록금이 나올 때까지만 버티자는 나름의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자가와 저축이 없어도 나름 즐기며 소탈하게 살고 있었다.
역시 시간은 늘 우리보다 한 발 앞서간다. 고용 불안은 지금 당장만 살아가는 구조인 우리 집에, 아니 나에게 직격탄이었다. 우리는 넉넉히 10년 뒤에 남편의 퇴직을 예상해 이제 노후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식이 오르거나 원금이 되면, 영동에 땅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중이었다. 그러나 샀으면 어쩔 뻔했나. 질렀어야 하나. 오매불망 심간이 편치 못했다. 설상가상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나를 잠식시키더니 안 그래도 뜻이 없던 가사에 더 의욕을 잃었다.
그것과 별개로 내 가게인 돌숲에도 더욱 비장해져 갔다. 역시 육아를 하고 책 읽고 글을 쓰며 최소한의 벌이를 하겠다는 목표는 욕심이었나. 놀멍쉬멍 할 수 없다.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수익을 올려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려면 상가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전단지를 붙여 돌숲을 홍보하고, 아파트 앱에 아이디를 찾아 로그인을 해서 아직도 안샘 수업을 모르는 주민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6월에는 일월 도서관 야외 팝업 스토어에도 참여하여 한 권이라도 책을 팔고 지역주민과 도서관에도 얼굴을 내밀어야지 우격다짐한다.
당장 아침과 낮, 하루에 두 잔 마시던 라떼를 한 잔으로 줄이고, 한 잔은 집에서 내려마신다. 이런 행동은 즉각적인 보상심리가 생겨서 커피를 더 마시고 싶게 만들었다. 커피를 마셨던 잔에 물을 담아 마시며 이렇게라도 커피 언저리에 있고 싶은 마음을 다독인다.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이라 환급금 돌려받는 광고가 난무한 사이트를 다 무시했던 나는 이제 시키는 대로 침착하게 버튼을 다 눌러 단 돈 100원이라도 돌려받기로 한다. 무작위로 신간을 구매하기보다는 좀 더 선별하여 도서관에서 신작을 대출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예술가를 돕고 동네 문화생활을 위한 서로가 윈윈이라는 거창한 목표 아래 줄줄이 잡은 강연과 행사 일정에 잠시 아찔해진다. 마음이 병든다.
불현듯 안팎으로 자주 아팠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시절에 단편 영화감독이었던 경지숙 언니가 생각이 났다. 언니는 어울리지 않게 치과를 비롯한 병원에 정기검진을 자주 갔었는데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었다. 언니가 가난하면 아프면 안 된다고, 병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미리 병원에 자주 간다고 했다.
지난밤, 나는 유통기한이 지난 마스크팩을 냉장고에서 꺼내 얼굴에 덮는다. 가난하면 더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다. 내일이면 흉하게 뜯어지더라도 둘째가 발라주는 매니큐어에 만족하며 잠이 든다. 아침마다 유통기한이 다 돼 세일하는 아이크림을 왕창 사서 온 얼굴에 펴 바르던 나는 골이 깊게 파인 이마에 크림을 눈곱만치 찍어 골 사이사이 퍼지게 펴 바르고 눈가 자잘한 빗금에 눌러주며 입가 팔자 주름에 촘촘히 덧발라 준다.
국에 만 아침밥을 서서라도 챙겨 먹는다. 지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서 패드와 핸드폰이 100퍼센트 충전 안 됐다는 원망을 흘려들으며 늘 on 되어있는 4구 멀티탭을 보이는 대로 off 한다. 우리 집에 유일한 사치였던 주방 조명을 내도록 끈다. 화장실에 물기 있는 것을 질겁해서 늘 환풍기를 켜두는 남편 몰래 나는 생각날 때마다 환풍기를 끈다.
요란스럽다. 언제까지 내가 오두방정일지 모르겠다. 정신이 산만하고 피폐하다. 문득 부지런하다는 것은 사소한 일 하나하나 오롯이 정성을 다하는 일이구나 생각이 든다.
나의 비관과 비장함 혹은 옹졸함을 알 리 없는 남편은 작년에 부서를 옮겼어야 했는데, 자꾸 옮기는 건 병이라며 참는 게 연장자의 미덕이라고 종용한 나의 탓을 했다. 내가 진정 안다니처럼 떨뜨렸던 것일까. 묵묵히 들어만 줄 걸. 혹시나 챗gpt한테라도 사주를 물어보는 거였는데. 남편의 말대로 내가 너무 안일했던 것은 아닌가. 남편은 핑계 댈 곳이 있어 좋겠다. 이제 그의 원망은 내 몫이다. 내 입을 치며 돌숲을 접어야 하나 망상과 상상을 오가며 이미 나는 해고된 남편의 아내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다. 아, 그렇다. 이대로 나의 연기 학원도 물 건너가는 것인가.
죽상을 한 채 우리 가족은 부러 지난 주말에 집 근처 상상 캠퍼스에서 열리는 수원 연극제에 갔다. 한 때 서울대학교 농대였던 캠퍼스 자리는 이제 시민이 이용하는 복합문화공원이 되었다. 캠퍼스 곳곳에 찬연한 오월의 기운이 느껴진다. 어린 자녀들과 온 부모들이 삼삼오오 모여 텐트를 치고 돗자리를 편다. 자녀와 손주를 따라온 노년의 부모는 끊임없이 우리를 지나쳐간다. 우리는 플라타너스 구멍에서 육추 하는 붉은찌르레기를 한참 올려다 보고는 언덕 위에 자리한 바위에 털썩 앉는다. 줄 서서 산 덜 불은 떡볶이와 길고 투박한 회오리 감자를 입 안에 욱여넣었다. 대충 요기를 마친 아이들은 사라진다. 이미 여러 군데에서 연극이 시작되었는지 관람객들의 환호 소리를 뒤로 들으며 우리 부부는 지금 이런 데 올 때가 아니구나, 모든 게 시틋해진다. 여름 철새인 꾀꼬리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는 수많은 나무를 마주한다. 큰 나무들 그늘 아래서 볕뉘를 쬔다. 시원하고 따스하다. 나 좀 우울해. 그동안 회사의 동향을 알아채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달구쳤던 나는, 아니 남편과 한 몸이었던 나는 심간이 매우 지쳐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박장대소하며 쫄았냐며 은근히 즐기는 본새가 되우 아니꼽다. 한편, 안심이 된다.
우리 남편과 원조 머슴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남편의 친구인 돼지 오빠가 우울증이 왔단다. 어느 날 오빠의 현명한 아내인 언니가 우울해하는 오빠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집을 인테리어 할래, 차를 바꿀래 오빠에게 언니는 물었다. 당연히 차를 바꿀 줄 알았던 오빠는 2억을 들여 인테리어를 바꿨는데, 신기하게도 말끔히 우울증이 가셨단다. 그 이유는 2억을 대출받아서 리모델링을 하느라 빚을 갚아야 해서 우울할 틈이 없다고. 그래, 우리는 6월에 내 생일을 핑계 삼아 일본 여행을 가자고 한다. 꾀꼬리가 보이지 않으면서 주변을 뱅뱅 돌며 약 올린다.
낮곁이 지날 무렵이 되자, 사람들 환호 소리가 갑자기 숭덩 사라진다. 땅거미가 내려앉아 아이들을 소리쳐 불러 언덕에서 내려가는데 가까이 관목에 숨었던 새가 후드득 위로 날아오른다. 제자리에 멈춰 꾀꼬리가 맞는지 놓치지 않고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좇는다. 노란 빛깔이 어둑발이 내린 숲으로 사라진다. 갑작스레 사위가 어두워져 보이지 않는 붉은부리찌르레기와 꾀꼬리 그리고 바위는 어딘가, 곱다랗게 자리하겠지 여기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남편은 매일 술을 마시고 새벽에 집에 들어온다. 이틀은 팀 회식이다. 80년대 가부장 같은 x세대 팀장과 이참에 발 빠르게 노조에 가입한 z세대 사이에 끼어 남편은 매일 혼자 일한다고 아우성이었는데, 이제는 더 큰 공공의 적인 부서의 존폐라는 공동의 고용 불안 아래 팀 내의 불화는 문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매일 욕하던 팀장과 어떻게 얼굴을 맞대고 2차, 3차하는지, 원래 그들은 수다스러웠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루는 오랜 친구를 만나 신세 한탄을 하고, 또 하루는 동향 업체 지인을 만나 정보를 얻는다. 그동안 안 만나던 지인을 다시 만난다. 남편은 가방과 아이스크림이 든 봉지를 양손에 들고 비틀대며 들어와 비틀비틀 샤워를 한다. 제발 술 마신 날에 샤워는 안 했으면. 앉아서 오줌을 눴으면. 음주 후 배뇨 중에 실신한 전적이 있는 남편은 내 잔소리를 듣다가 뭐라는 겨 중얼대다 곯아떨어진다. 모로 누운 몸을 바로 펴더니 회사 동료에게 회사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는 잠꼬대를 한다. 새벽 2시 45분. 소파에 누워, 열린 베란다 문 사이로 오봉역행 화물 열차가 내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새벽 네 시가 되도록 정신은 반송반송해져 이른 산책에 나선다. 1층 오르막길, 새벽바람에 얇고 잔 이파리가 자잘 자잘 수다스럽게 흔들리는 흰 자작나무 앞에 선다. 흔들리며 별처럼 반짝 반짝이는 자작나무 목소리가 침잠한 내 기분을 끌끌하게 트여준다. 갓밝이에 점점 신명이 난다.
아직 자는지 집에서는 소식이 없다.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일찍 깬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빠르게 밀며 운동하는 아빠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매일 개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노란 티셔츠를 입은 할아버지를 만나 애교 많은 개와 인사했다. 그러다 주말에도 일찍 출근하는 친구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6개월 정도 육아 휴직을 한 친구의 남편은 다음 달이면 복직인데, 맨날 쫓기는 꿈을 꾸다가 이제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단다. 남자들도 각자 자신만의 계절을 겪느라 고군분투한다. 나는 알지 못하는 시간을, 남자들은 통과하고 있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남편이 아점 차린다고 얼른 들어오란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남편이 좋아하는 보석바와 메가톤바, 비비빅, 깐도리를 바구니에 먼저 담는다. 아이스크림이 한가득 담긴 봉지를 한 손에 들고 현관문 앞에 떨어져 있던 건강검진 결과표를 주워 든다.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이 쫓아 나와 비닐봉지를 채간다. 식탁에는 샤브샤브가 냄비째 올라와 있다. 갑자기 다리가 풀리며 허기가 밀려온다. 우편물은 뒷전. 우선 따끈따끈한 맑은 국물을 들이켜고 푸른 미나리와 청경채, 흰 숙주와 팽이버섯으로 우리의 속을 달랜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남편에게 20년 동안 잘 살았다, 앞으로 또 10년 잘해보자고 말했더니 남편이 내일은 아이들이 깨기 전에 둘이 같이 커피숍에 가서 브런치를 먹자고 한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움찔하며 나는 고분고분 그러마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