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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가족

우당탕탕 일본기1탄_라떼는 계속된다.

by 이애리

작년부터 둘째가 자신만 주변에서 일본이랑 베트남 여행을 못 가봤다고 아우성이었다. 간다고 한들, 다이소깡과 돈키호테깡을 하며 유튜브를 찍을 심산인 거 같은데. 슬쩍 셋이 도쿄에 가라고 권하며 나는 혼자 중국 패키지를 알아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다니며 중국 드라마 속에 나오는 세트장과 촬영지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이 딸 둘을 데리고 가기 벅차다며 다정한 둘째만 데려가겠다고 어깃장을 놨다. 동생이 아빠와 단둘이 여행하는 꼴도 싫은데, 엄마와 단둘이 있는 것은 더 참을 수 없다며 큰 딸 정이도 꼭 가야 한다고 울더니, 어느 날 갑자기 엄마랑 집에 있겠다며 체념한다. 큰 아이의 낙이 없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그녀와 단 둘이 3박 4일을 오로지 집에서?! 자신이 없는 나는 결국 함께 가겠노라 선언했다. 나만 결심하니,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떠나기로 한 일주일 전에 (남편은) 왕복 항공편을 예약하고, (남편이) 당장 모레 묵을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급하게 예약하면서 우리는(세 여자는) 남편 뒤꽁무니만 쳐다보며 따라나섰다.

새벽 6시에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운전을 하는 남편이 공항 주차장에 주차할 곳이 있는지 알아보란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핸드폰을 보면 멀미하는 나를 알면서도 명령조로 부탁하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조수석에 앉은 나는 억지로 그거라도 해야겠기에 신경질적으로 검색한다. 만석이다. 만석이라 한들, 감이 없는 나는 가서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을 하며 눈을 감는다. 그 찰나를 참을 수 없는, 우리 집에 컨트롤 타워인 남편은 큰일이라며 내 감은 눈을 뜨게 하더니, 양미간을 찌푸리며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켁- 내 목을 잡아 트는 듯, 숨이 막혀온다.

인천대교가 앞에 보인다. 물이 다 빠져 구멍 뚫린 갯벌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구멍마다 물이 고여 웅덩이에 아침 햇살이 비추어 금빛으로 빛난다. 왠지 이번 여행은 빛의 향연으로 은혜받는 시간이 될 것 같다고 스스로 세뇌시키며 어디선가 들려오는 저 *먼 북소리에 귀 기울인다.

벌써 귀가 먹먹해진다. 요즘 인천 공항은 어떤 상황인지, 연휴에 공항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 검색조차 하지 않고 온 우리는, 만석인 주차장을 대책 없이 몇 바퀴나 돌다가 겨우 임시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캐리어 없이 각자 1인 1 백팩을 메고 온 우리는 온라인 체크인을 한 덕분에 부칠 짐이 없다고 여유 부리다가 아직 소아인 밤이가 수속 카운터에서 교환권을 발권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맨 끝 줄에 섰지만 아직 시간이 있다.

1인 1 백팩 안에 100ml가 넘는 세안제와 로션을 마구잡이로 넣은 나는 당연히 보안 검색대에서 따로 불려 나와 가방 안을 다 헤집는 영광을 누리며 남편을 낯부끄럽게 만들었다. 남편의 낯빛이 붉게 변하는 순간을 가까이서 목도하며 나는 이번 여행의 유일한 기대이자 안식이었던 면세점은 패스되리라 직감했다. 선글라스와 명품 가방을 36개월로 사고 싶었던 나는 입국할 때 살 수 있을 거라며 찝찝한 마음을 겨우 안정시키며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좌석 배치가 앞뒤로 두 자리씩이라 남편과 나는 아이 한 명씩과 앉으면 된다. 창가로 아이들 먼저 들어가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서로 아빠 옆에 앉겠다고 통로에서 다투고 있다. 아이들 뒤로 줄지은 승객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구경난 듯 우리를 흥미롭게 쳐다본다. 부끄러움은 다 내 몫이려니. 과연 이 싸움은 어떻게 종결될 것인가!

단전에 힘을 주고 앙다문 잇새 사이로 최유정 엄마 옆에 앉아. 정이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처럼 굵은 눈물방울을 떨구며 내 옆에 털썩 앉는다. 나도 울고 싶다. 벌써 일본을 다녀온 듯한 이 피로한 기분은 액자 속에만 박제된, 웃음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16년 전 시부모님과 도쿄에 간 기억을 불러온다. 아닐 거야. 아닐 거얔.

내 옆에 앉은 불쌍한 정이에게 인터넷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게임인 캣점프의 무한권을 행사하며 엄마 옆자리가 역시 명당이었음을 암시한다. 가느다란 미소를 아직 간직한 뺨에 미세한 금을 의식하며 비행기 이륙 직전까지 얼른 오늘의 일정을 짜야겠다고 생각한다. 챗 GPT에게 나리타 공항에서 시부야에 타워레코드, 다이소, 스크램블 교차로, 오기쿠보역에 있는 숙소를 넣고 일정을 짜달라고 부탁한다. 내처 1인 1 백팩에 나이키 대형 더플백까지 맨 남편의 어깨가 부러질 듯하여 시부야역에 코인로커가 있는 위치까지 물어본다. 좋은 선택이었다는 챗GPT의 립서비스에 오늘의 일정을 받아 들고 폰을 비행기 모드로 변경한 후 이제야 진짜 편안히 눈을 감는다.

아무 계획 없이 도쿄에 도착한 우리는 제각각 뿔뿔이 헤어지며 큰 딸 혼자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 남겨진 꿈을 꿨다.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뜨니, 비행기가 이제야 이륙한다. 다시 잠이 들지 않아 가방에서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를 꺼내 표지를 정독한다.

:‘서로 같음’과 ‘서로 다름’을 위트 넘치는 언어로 풀어낸 하루키의 걸작 여행 에세이!

느낌표에 감동하며 표지를 펼쳐 실실 쪼개며 본문을 아껴 읽는다.


로마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야, 하고 그들은 내게 말한다. 아무리 멀리 가도 소용없어, 붕붕붕붕, 어디로 가든 우리는 끝까지 따라갈 거야. 그러니까 당신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진정한 여행은 방구석에 누워서 여행기를 읽는 것이 아닐까. 하루키의 유럽 여행기를 읽으며 그의 나라인 일본으로 향하다니. 일본에 동행하는 책 선정이 억지로 마음에 들어 하며 왠지 뿌듯한데 불현듯 나도 먼 북소리에 끌려 도쿄행을 택한 것은 아닌가, 비행기 엔진 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다 꾸벅꾸벅 존다.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외투를 입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터키의 옛 노래


입국 심사대 앞에서 우리 넷은 젊고 마른 남자 공항 입국 심사 직원을 대면한다. 남편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하며 조금 쫄은 듯 뭔가 상기돼 보인다. 나보다 국외로 많이 나간 사람이, 많이 다녀서 그럴까. 물론,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무심하고 나른하게 남편 옆에 서있던 나는 우리 앞에서 계속 졸고 있는 직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권을 하나하나 찍는 사이마다 희미한 눈동자가 뒤로 돌아가고 고개가 함께 뒤로 젖히면서 내 앞에서 쓰러질까 갑자기 불안해진다. 나는 결국 참지를 못하고 선반을 똑똑 치며 “Are you O.K?”라고 묻는다. 직원보다 더 화들짝 놀란 남편의 눈이 땡그래지며 나를 잡아먹을 듯 쳐다본다. 미쳤어, 왜 그래. 수속 심사를 마치고 무안해진 나는 그 사람이 과로한 듯해서,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변명하니까 셋 다 고개를 흔들며 나를 지나쳐 간다.

낯선 한자가 가득 쓰인 지하철역에 들어서니, 16년 전 동경 어느 한 전철역 안에서 남편과 시부모님 세 사람이 모두 나만 쳐다보며 서 있던 막막한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여행을 위해 외웠던 일어와 망각 속에 잠든 영어를 끄집어내어 무수한 일본인과 대화를 하며 6개의 눈동자를 등으로 견뎠던 순간 말이다.

가장 큰 백팩을 메고 더플백까지 한쪽 어깨에 멘 남편의 등에서 시선을 돌리며 나는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빠 옆에만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아빠에게서 떨어지라고 제지하고, 아무 일본인에게로 걸어가 영어로 시부야까지 가는 넥스권(나리타 익스프레스권)을 어디서 사는지 물어본다. 물론, 친절하면서도 겁에 질린듯한 일본인의 일본어 안내를 받지만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아리가또를 연발하는 큰 아이와 남편 옆에서 나는 감사합니다로 일갈하며, 결국 전 세계인의 비서인 챗 GPT에게 한국어로 다시 묻는다. 남편도 돌아서서 그(챗GPT)에게 한국어로 넥스권 사는 곳을 다시 물어본다. 우리는 각자 등을 돌리고 폰으로 그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며 도쿄에 무사히 입성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결국 챗GPT 와 여행을 간 것은 아닐까. 그래, 비서니까.


넥스권으로 빨간 전철을 타고 우린 드디어 첫 코스인 시부야역에 도착했다. 한숨을 돌리며 코인 락커부터 찾는다. 공항에서 긴급하게 환전을 하느라 현금이 부족했던 우리는 카드 결제가 안 되는 바람에 락커를 이용하기가 쉽지가 않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대형 락커 하나를 골랐는데, 옆에 일본인 노부부가 서더니 우리가 결제한 락커에 짐을 넣으려고 한다. 날이 서있던 남편은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를 보듯이 일본인 노부부에게 “마인!!! 마인!! MINE”을 외친다. 그 사이에 나는 결제하는 기계를 가리키며 “저기 가서 결제를! 결제를! 결제를 하고 여기를 이용하세요!”를 한국어로 계속 외치고, 제일 교양 있는 이성적인 큰 딸은 파파고가 통역해 준 문장을 어색한 억양의 일본어로 블라블라. 한 순간에 시부야역 코인 락커 앞은 아수라장이다. 그때 막내는 무얼 했는지는 여태 물어보지 못했다.

3박 4일 동안 도쿄에서 우리는 계속 이런 상황의 연속이었다. 일본인은 일본어로, 남편은 공격적인 단답형 영어로, 큰 딸은 파파고로 최소한의 통역을 시도하며, 막내는 침묵의 언어로 일갈했다. 나는, 능숙한 한국어를 쓰다가 돌아왔다. 3일 내내 아침마다 들른 당고 가게의 백발이 성성한 일본인 주인장에게 계속 “이거 하나요, 저거 두 개요, 감사합니다” 말한다. 남편과 첫째는 요즘 너무 좋은 파파고로 통역을 사용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 처한 남편은 자기도 모르게 극단적인 영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알까 모르겠다.

일본을 떠나는 날 우리를 발견한 당고 가게 직원들도 엄청나게 긴 일본어로 매우 잘 가라는 듯 양팔을 흔들며 우리를 환송했다. 나 역시 두 팔을 높이 흔들며 안녕히 계세요만 외치다 돌아섰다. 모르겠다. 일본은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본어여야 소통이 가능한 지점에 나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그들처럼 나도 당당하게 한국어를 쓰고 손짓, 발짓하며 의사소통을 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후회되는 점은 일정 체크는 고사하고 일본어의 기초도 익혀가지 않아, 자유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고 귀차니즘으로 여행자의 기본 예의도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여행 내내 나를 짓눌렀다. 이 양가감정을 계속 느끼며 우리 가족은 같은 일정으로 동일한 곳에 여행을 하지만, 따로국밥처럼 끊임없이 다른 언어를 쓰며 서로 다른 도쿄를 여행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우리가 인천으로 들어와 제1 터미널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임시 주차장에서 내릴 때 외국인 두 명이 영어로 제2터미널이 어디냐고 물었다. 따라만 다녀서 잘 모르는 나는 일본에서 헤매다 온 생각이 나서 여행자인 그들에게 꼭 대답을 하고 싶다. 역시나 모르는 남편과 아이들은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본다. 다급한 나는 함께 내리지만 안면이 없는 승객에게 물어보니, 다음이란다. 나는 그들에게 “넥스트”라고 전한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데서 다음은 하얏트라며 지금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자 조금 전에는 안면이 없었지만 이제는 안면이 있는 승객이 지금이라고 내게 다시 전한다. 버스 계단을 내려가던 나는 급히 뒤돌아 그들에게 “나우”라고 말한다. 이 모든 사람이 임시주차장인 허허벌판에 후다닥 다 같이 내렸으나 내가 느끼는 찝찝함은 그지없다. 다행히 그들은 우리보다 더 빨리 그곳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잘 갔을지 내가 계속 신경을 쓰자 남편은 이 오지라퍼 아줌마야, 공항 셔틀버스가 자주 오니까 잘못 내렸어도 금방 다음 차 탈거라고 말해준다. 큰 아이는 자기가 알아보겠다며 검색을 한다. 막내는 기억에 없다. 나는 제2터미널이 정확히 어디인지 아직 잘 모른다. 미안하고 두려운 마음은 여전히 제2 터미널이 어디인지 비서에게 확인하기를 꺼리게 만든다. 언젠가 다음 여행에서 인천공항 제2 터미널에 가게 된다면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하며, 그때 정확히 알게 되는 걸로. 그때 즈음이면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한 그들에게 조금 덜 미안하지 않을까?


미코노스
이 한 달 반이라는 기간은 나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하고. 이 철 지난 에게 해의 섬에서 나는 대체 무엇을 했던 것일까. 잠시 동안 거기에 대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진짜로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내 머리에는 군데군데 구슬 같은 공백이 생겨있다.


월요일 밤 11시 30분에 우리 차는 드디어 수원에 들어섰다. 쇼핑할 때만 빼고 내 기억 속에 늘 존재감이 없던 막내는 갑자기 설렁탕을 먹으러 가잖다. 이 평일 야밤에 가당치도 않은 제안에 할 말을 잃고 어이없어하는 사이에 남편은 24시간 하는 설렁탕 집으로 향했다. 밤이는 밥 두 그릇을 말아 한껏 익은 깍두기를 얹어 야무지게 싹 말아먹고는, 역시 한국 밥이 최고라고 말한다. 남편은 아무 준비 없이 갔지만 이번 여행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중2 사춘기만큼이나 허세가 쩌는 첫째는 자신의 일본어 실력이 이번 여행에 많이 도움 되지 않았냐며 되려 묻는다. 무슨 말을 내가 더 할 수 있으리오. 이 사이에 낀 편육과 깍두기를 빼내며 이번 여행을 떠올린다. 음, 그 얘기라면 할 수 있겠다. 아이들 학교 가방용으로 샀다가 물병 넣는 주머니가 작아 안방 천장 구석에서 1년 6개월 방치된 백팩을 꺼내 이번 여행에 메고 갔던 나는 이 주머니에 맞는 물병을 일본에서 찾았다. 게다가 더운 날씨에 필수였던 작고 가벼운 양우산까지 들어가며 이 백팩의 효용성과 매력도가 높아졌는데, 나는 이번 여행으로 이걸 알게 돼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입고 있던 흰 바지를 벗어서 쓰레기통에 미련 없이 버렸다. 1인 1 백팩을 고수하며 짐을 줄이려고 제일 만만한 흰 바지 하나만 입고 갔는데 돌아오는 날 지퍼가 뜯어져 쓰임을 다한 바지다. 늘 두세 번 확인하는 남편은 그 바지를 다시 꺼내서는 진짜 버리냐고 되묻는다. 당시에는 두 번 묻지 말라며 버럭 했지만, 이번에는 후쿠오카 쇼핑을 하고 싶다는 둘째의 말에 쓰레기 봉투 안에 들어간 그 바지를 조용히 다시 꺼낸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오는 날 탈이 난 고마운 바지다.

가족 여행을 하는 동안 세대와 젠더 간극을 좁혀 보려고 잠시나마 마음을 먹었던 나는 더 벌어진 간극으로 차라리 나다움에 집착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중이 절을 떠나리다. 셋이 안 떠나니, 혼자 떠나야지. 결국 중국 여행을 패키지로 혼자 떠나기 위해 얼마 전부터 인스타와 카카오톡에 계속 뜨는 광고를 보고 외국어 회화 수업을 결제했다. 카카오톡으로 매일 중국어와 영어 쉐도잉이 한가득 배달돼 오는 수업이다. 안 읽은 숫자가 점점 커지지만 다시 뭔가 새로운 일을 할 의지가 생겼다는 지점에 나는 정신 승리를 양껏 만끽한다. 옆에서 남편은 그 여행을 또 되새김질을 하는지 우리가 모르고 먹었던 그 아이스크림이 유명했던 거였어 뒷북을 친다. 또다시 아무리 생각해도 후쿠오카는 아닌 듯한데, 슬며시 흰 바지와 백팩을 안방 드레스룸 천장에 올린다.

마지막에-여행의 끝
내게는 지금도 간혹 먼 북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오후에 귀를 기울이면 그 울림이 귀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진짜 도쿄 여행은 다음에 2탄으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가고자 했던 곳에 간 기억은 사라졌다. 가는 동안 네 사람은 계속 투닥거리다 겨우 목표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도착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가는 길과 오는 길만 있었다.


*모든 인용문은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저/문학사상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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