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쏘렌토 긴 여행기
그래. 바다야, 간다아.
여름휴가 첫날, 쏘렌토 안.
“우리, 어디로 가?”
“우선 김해 아무 곳이나 찍자.”
암컷 넷, 수컷 하나가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 인근의 항구 도시인 지명으로 여행과 모험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도록 모델명 한 기아차 쏘렌토를 타고 여행과 모험을 떠난 이야기를 하겠다. 비록 이태리까지는 아니지만 절벽 해안 선상에 있는 도시에 가는 느낌만은 엇비슷한 여행기다. 모름지기 여행은 인생에 비유가 되는데, 이번 여행이 꼭 그랬다. 우리의 여름 휴가지는 10여 년 가까이 남해인데, 모로 가면 남해라고, 어디를 거쳐가든 우리의 목적지는 무조건 남해 ‘상주은모래비치’ 면 되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정이 여름휴가다. 이번 여정에는 김해, 함안-창녕, 원래는 마산을 거쳐 오려고 했으나 뒤에 있을 계획 오류(계획이 있긴 했니...?라고 남편이 묻는다.)로 마산은 건너뛰고 남해로 향하게 된다.
우리는, 아니 나는 여전히 여행 당일에 새벽에 눈을 떠 그제야 캐리어에 내 옷과 아이들 옷을 담는다. 요즘에는 감사하게도, 초저녁에 저절로 곯아떨어져 꼭두새벽부터 깬 덕분에 출발 전에 널널하다. 유부초밥을 먹고, 호두 약을 먹이고, 현관을 나서는데 8시다. 남편은 이미 늦었다며 안 그래도 뾰족하게 휘어진 눈썹이 더 꺾어졌다. 자기 짐을 이미 다 싸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씻고 준비를 끝내고 아침까지 준비한 남편 눈에 우리 세,,,네 암컷은 게을러터진 베짱이로 보일 뿐이다. 덕분에 나는 메가커피에 들러 아이스 라떼 한 잔 사가자는 말을 못 하고 동네를 벗어난다.
출발할 때 늘 떠들썩해야 할 차 안이 아이들이 태어나고는 처음으로 고요하다. 어쩐지 야무져진 두 아이는 각자 이어폰을 충전해서 귓구멍에 꽂고 자신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듣느라 차 안이 절간이다. 이제 차 안에는 영어로 된 원서의 음원이 나오지 않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안 틀어도 되니 떼창이 들리지도 않고, 하물며 좋았다가도 금세 틀어져 싸우는 자매는 서로의 음악에 묻혀 창 밖만 내다보는 것이다. 아직 아무 일-조용히 하라고 소리치는 나와 집중 못하는 남편의 짜증도 일어나지 않고 무사한 사실에 한숨 돌린 나는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에 부랴부랴 아이스 라떼를 먹고 싶다고 고백한다. 운전 중에 샛길로 새거나, 예상치 못한 자잘한 일정이 추가되면 예민해지는 남편이 갑자기 유턴을 하고 골목 사이사이를 헤쳐가는 동안 얼른 아무 커피숍이나 등장하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남편 기분이 썩, 괜찮다. 이러구러 무사히 커피를 픽업하고 출구만 잘 나서면 된다.
<슬로우 리딩>독서 모임 분들과 함께 읽은 김훈의 <<현의 노래>>를 읽고 이번 여행지는 기록이 잘 없어 왜곡된 채로 사라진 가야국을 꿈꿨다. 특히 이미 가야국을 다녀온 슬리딩 멤버와 챗 gpt 덕분에 역시나 도시만 정하고 무작정 떠나게 되는데, 오늘은 금관가야였던 김해로 낙점되었다. 차 안에 앉아서야 김해 박물관과 김수로왕릉과 대성동 고분군 투어를 결정한다. 이제야 김해 ‘아무 곳’에서 ‘김해 박물관’으로 내비게이션에 도착지를 찍는다.
이번 여행에는 마산에 사는 둘째 고모를 만나야 하는 중요한 일정이 더 있었다. 허리와 다리가 아파 집 밖을 잘 나서지 않는 고모라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마산 어디쯤에 있겠거니, 창녕에서 남해로 가기 전 아침에 잠시 들르면 되겠지 두루뭉술하게 생각하고 숙박만 정했더랬다.
바쁘게 핸드폰을 놀렸더니 어지럽다. 오랜만에 윤상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틀었다. 사연 속에 무작정 떠나고 보는 우리 같은 사람이 많다. 진정한 휴가는 역시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차창 너머로 구름이 모였다, 흩어졌다 반복하며 쏘렌토를 계속 따라온다. 문득 어젯밤에 돌숲에 전시한 ‘양선미’ 작가의 <구름 나무> 유화 그림들이 떠오른다. 전작은 주황빛과 연두색의 밝은 빛을 많이 사용했다면 최근작에서는 어두운 톤이다. 그 어둠이 왠지 음울하지 않고, *어둠을 밝히는 건 어둠뿐*이라고 했던가, 희망과 긍정성이 엿보인다. 어둠 속에 존재하는 구름은 달과 별을 품고 여행을 한다. 전날 밤, 흩어지는 것에서 모아지고 품은 구름의 연작 앞에서 나는 잠시 울컥했었다. 여행 내내 구름이 나를 두드릴 것 같다.
흔치 않은 조용한 틈을 타, 남편에게 당신의 장점이 무어냐고 조용히 물었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란다. 아뿔싸, 이 질문을 물꼬로 원칙주의자인 남편의 직장 비화를 듣는다. 20년 가까이 말했건만, 여전히 원칙을 중시하는 남편이다. 나의 장점은 유연함이다. 조였다가 풀어지는 게 유일한 루틴인 나는 자식을 낳고 아침 기상부터 하루 세끼를 먹는 루틴이 생겼지만 여전히 계획에는 젬병이다. 반대의 성향인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고 반대 성향의 딸 둘을 낳아 과부가 된 새 한 마리와 쏘렌토를 타고 목적지만 있는 여행을 간다. 오늘 이 여행에서 여전히 남자는 불안하고 여자는 무심하다. 지나친 장점은 단점이 된다고 그동안 입버릇처럼 말했던 나는 오늘에서야 지나친 단점은 특장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20년 가까이 우리의 여행은 늘 불명확하고 불확실 속에서 이루어졌고 어쩌다 보니, 세월은 우리를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흰 고래 모비 딕에 미쳐 호를 이끄는 에이해브 선장에 감정이입한 나는 남해를 목표로 쏘렌토호를 진두지휘하며 차 안에서 모비 딕을 읽느라 여념이 없다. 첫째가 쉬지 않고 잔기침을 한다. 옮았는지 둘째도 깊은 기침을 뱉어낸다. 며칠 약을 먹였는데도 기침은 안 떨어지고, 약만 똑 떨어져 불안한 남편은 갑자기 괴산으로 가잖다. 얼마 전에 본 유튜브에서 괴산 맛집이 떴단다.
‘서울 식당’이라는 붉은색 간판이 인상적인 올갱이 전문 식당으로 들어섰다. 주인장은 올갱이 전문점답게 올갱이 해장국 단품만 판매한다는 자부심이 크다. 달걀을 입힌 올갱이로 끓인 된장국이라 덜 비린지 아니면 이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어서인지 남편과 아이들은 군소리 없이 한 사발씩 뚝딱 해치운다.
해장국집 좌측 건물에 있는 내과에 들러 종이에 차트를 쓰는 의사와 간호사에게서 진료를 받고 식당 우측에 있는 핑크색 간판이 흥미로운 약국으로 들어선다. 중앙 벤치 옆에 협탁에는 사탕 쟁반과 쌀과자 바구니가 단정하게 놓여있다. 한편 선반에 진열된 어릴 적에 자주 심부름 한 맨소래담과 안티푸라민을 보자, 소아 약이 즐비한 약국만 봐오던 나로서는 반갑고 신선하기만 하다. 세모꼴로 파마머리를 묶은 중년의 약사가 남편에게는 아르기닌 음료를, 우리에게는 비타 음료를 내민다. 얼마나 세심한 약사인지 두 아이의 약 봉투와 겉봉지도 달리 포장해서 두 아이에게 정성스럽게 내민다. 복약법을 얘기하는 다정한 멘트는 기본이다. 감동한 우리는 돈을 더 쓰지 못해 안달이다. 두 아이 여드름 치료제인 애크논을 굳이 사서 연신 허리 굽혀 인사하며 나온다. 또 올게요. 올갱이내로 비릿한 입 안에 사탕의 단내가 확 퍼졌다.
첫 도시, 괴산에 잠시 경유했다가 다시 쏘렌토를 타고 진짜 오늘 목적지로 떠난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시골 약을 먹은 두 아이는 금세 곯아떨어졌다. 남편이 주파수를 맞춘 KBS 라디오에서 임백천 DJ의 잔잔하고 솔직한 유머가 깃든 안정적인 목소리가 우리를 에워싼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1992년 그의 프로그램에서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떠오른다. 한국 가요사와 나의 가슴에 한 획을 그은 서태지는 데뷔 무대 인연을 계기로 사회자 임백천과 특별한 교류를 계속 이어왔다. 임백천은 내게도 신뢰하는 방송인으로 계속 남아있다. 나의 생각을 읽은 듯한 남편이 갑자기 자신의 플레이 리스트 속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2집 앨범의 수록곡인 ‘마지막 축제’를 틀더니, 열창한다. 내 친구야 창 밖을 봐. 눈이 오잖아. 모두 너를 위한 거야. 의미심장한... 선곡이었다. 물론 창 밖에는 눈이 아닌, 구름이 쏟아지는 듯하다.
남해 당도하기 전, 마산을 들렀다가 가려면 마지막 숙소는 창녕이어야만 했는데, 창녕에 얼마 없는 숙소 중에 하룻밤을 선택해야만 했던 남편은 우여곡절 끝에 한 호텔방을 찾아냈다. 넷플릭스가 나오는 대형 TV와 밤새 게임을 할 수 있는 최신식 컴퓨터 두 대가 붙어있는, 노래방 기기까지 완비된 구닥다리 호텔의 가족 파티룸. 그곳이 이번 휴가의 회심의 카드였다. 그날을 준비하며 남편은 갑자기 노래를 열창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배도 출항하지 않은 <<모비 딕>>에서 눈을 떼고 나도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몇 년 만에 푸는 목인지. 구름처럼, 콱 잠겨있다.
3시나 되어서야 김해 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 7월 말 석류를 닮은 붉고 매끄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동백나무가 주차장 한편에 촘촘히 심어져 있었다. 나는 동백나무를 보면 동백꽃보다는 동백 열매로 짠 동백기름이 생각난다. 이 동백기름을 머리에 바르던 쪽진 할머니가 떠올라, 뭉클해진다.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여정이 좋다. 내 인생에 유일한 연예인이었던 서태지가 튀어나오고, 어릴 적 온 가족이 모여 올갱이(고디)를 잡고 옥수수를 쪄먹은 기억이 전국의 올갱이국을 맛보게 만든다. 아파서 가는 병원과 약국이 새롭게 보이고, 동백 열매로 쪽진 할머니까지 떠올리는 순간순간까지 겹쳐 쌓인다. 쌓이고 흩어지며 여정은 계속된다.
따로 또 같이
한 나라로 합쳐지지 않았던 가야는 각기 자율과 공존이라는 특유한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토기입니다. 가야 사람들은 지역별로 개성이 뚜렷한 토기를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 썼습니다.
그중 굽다리접시는 금관가야에서는 입이 바깥으로 벌어진 모양, 아라가야에서는 불꽃무늬 구멍으로 장식한 모양, 소가야에서는 세모난 구멍을 낸 모양으로 저마다 개성을 드러냈습니다.
김해 박물관 상설 전시관 초입 벽에 붙은 전시 글을 보며 비로소 책 속에 가야가 좋았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아챈다. 강성한 신라에 복속된 사라진 연맹국, 가야.
<현의 노래>에서 왕의 날들이 이미 캄캄하게 저무는 때에 비어있는 눈으로 왕은 우륵에게 어찌 세상의 소리를 하나로 가지런히 할 수 있겠냐, 가야 여러 고을의 소리를 따로따로 만들라고 명하며 별에 가서라도 듣고 싶다고 한다. 소리도 살아있는 동안의 일이라는 말을 삼킨 우륵은 왕이 죽은 뒤 열두 줄의 금에 물혜, 달기, 다로, 알터, 바람터라는 사라진 고을의 소리를 담으며 악기를 아수라인 서라벌로 보낸다.
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 덧없음으로 늘 새롭다.
-현의 노래, 313쪽
관람객을 따라 백자를 닮은 잿빛 항아리를 마주하고 의자에 앉아 유물멍을 한 지 1분은 지났을까, 아이들이 어지럽다며 나를 끌고 나간다.
아직 햇살이 정수리에서 쏘는 듯 한창이라, 우리는 우산을 쓰고 김수로왕 무덤 앞에서 몇 번을 서성이다 김해에 영혼이 없는 듯한 아이들과 역시나 이곳에 몸만 온 듯한 호두의 단체 사진을 찍고는 돌아선다. 말이 없어진 아이들을 달래고자 좁은 골목길 한편 그늘에 자리한 야쿠르트 아줌마에게서 각자 야쿠르트를 고르게 한다. 나는 콜레스테롤을 케어하는 간 건강에 좋은 쿠퍼스를 마시며 다음 일정을 생각한다. 가까이서 매미가 지리멸렬하게 울어재낀다. 옆에서 웅얼웅얼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에헤이, 더위야 썩 물러가라. 결국 급조한 계획이지만 대성동 고분군 투어를 취소하고 근처 현지인만 아는 갈빗집에서 갈비를 뜯는다. 온몸이 짭조름하고 달짝지근한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어둑발이 내려앉아 얼른 시동을 켜는데 오래전에 한창 들었던, 여전히 통통 튀는 매력적인 이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한여름과 피서지 노래가 잘 어울리는 목소리다. 갑자기 흘러나오는 노래에 남편이 검색을 해달란다. 네이버에 검색된 제목은 심신의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 다. 메모지 탭을 누르더니, 노래방 가서 부를 목록에 음성으로 이 곡을 저장한다. 황당한 표정으로 내가 그를 쳐다보자, 이래야 노래방에서 원하는 노래를 빠트리지 않고 다 부를 수가 있다나, 어쨌다나. 징허다, 징해. 너 다 해.
쨍한 더위가 한풀 꺾이고, 한여름 해 질 녘이 싱그럽다.
오늘은 한밤에 김해 천문대에서 별을 보려고 근처인 카라반에 숙소를 잡았다. T맵을 따라 좁은 산비탈을 홰홰 돈다. 올라가는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깜깜하고 비탈진 외길을 계속 돌고 돌자, 예전에도 티맵이 이러다 엉뚱한 저수지로 몰고 간 적이 있었던지라, 남편은 불안한 듯 쉬지 않고 투덜투덜 댄다. 네비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앞에 차 한 대라 오면 어쩌지. 진짜 이런 곳에 카라반이 있고, 천문대가 있을까. 깜깜한 밤에 그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더 섬뜩한 나는 내가 운전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멈추라니, 멈출 수 없었는지, 아직은 버틸만한 지, 남편은 핸들만 더 움켜 잡는다. 남편의 꽉 쥔 울퉁불퉁한 두 주먹이 애처롭다. 문득, 창 너머 어둠이 검은 구름 같다고, 그 속에 별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별을 본다. 우리는 무사히 카라반에 도착했고, 역시나 꼴찌로 도착했다는 남편의 잔소리를 듣고 천문대 망원경에서 여름 별자리를 보았다. 오랜만에 카라반에서 늦도록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휴가 첫날, 순서와 체력과 기분이 아직 괜찮다.
다음 날, 평평한 길 두고 반대편으로 올라왔다는 사실을 안 남편은 다시 그 길을 내려가고 싶다고 말해서 우리의 공분을 샀다. 그러고는 우리는 다시 같은 길을 내려갔다. 아침에 내려가는 그 길은 시원했으며 햇살이 내려앉아 아름다운, 구불구불한 흙길이었다. 이제 아는 길이 되었으니, 다음에 또 이 길로 올라오자고 누군가 말했다.
최근에 부여 말고 가장 인상 깊은 지방 도시는 아라가야 지역이었던 함안이었다. 불꽃 무늬 토기 모양의 건물인 함안 박물관에서 그곳을 에워싼 말이산 고분군을 바라보면 그 능선이 참 아름답다. 능선에 자리한 봉분들 사이를 관람객이 직접 걸어 다닐 수 있어서 우리는 무덤 사이사이로 걸어 다녔다. 봉분마다 ‘조상 묘에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놓여있다. <<현의 노래>>에는 죽음을 목전에 둔 가야 왕이 죽은 왕들의 묘가 있는 산의 능선에 시선을 두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김훈 작가가 이곳을 염두에 두고 상상한 글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제비 한 마리가 호를 그리며 끈질기게 우리를 쫓는다. 정수리가 벗겨질 정도로 뜨거운 햇볕 아래 캐리어에 들려 나온, 철심 박은 호두가 문득 불쌍해진다. 호두는 어떻게 죽고 싶을까. 자유롭게 난다는 것을 알긴 알까. 제비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는 능선 자락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함안 읍내를 굽어보았다. 왕들은 이 높은 데 묻혀서 뜻하는 대로 극락왕생을 누리게 되었을까 모르겠다.
가야 최초의 별자리가 확인된 덮개돌이 나온 13호 봉분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김해에 천문대가 있는 것은 우연히 아니었나 보다.
한낮에 더위를 먹은 양, 헉헉대며 걷다 지친 우리는 함안 박물관 안에 쉼터로 향한다. 쉼터를 가꾸는 사람은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신작이 많았다. 우리 모두를 만족케 하는 그 책 들 속에서 기분 좋게 한참 쉬었다. 산 이름에서 따온, 보쌈 점심 특선이 훌륭한 ‘매미 궁뎅이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는 다시 돌아와서 책을 보았다. 이날이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제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창녕으로 향한다. 창녕 박물관과 순장된 송현이가 발굴된 송현리 고분군과 교동 박물관이 있는 창녕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뙤약볕에 검은 우산을 쓰고 푸른 고분 사이를 거닐었고, 세 가야의 박물관을 둘러보며 가야와 한층 더 가까워졌다. 가야국 마지막 여행이라 나는 해 질 무렵까지 고분에서 머물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유흥이 가득한 숙소로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어 했다.
물론, 고대하던 숙소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주차장에 쏘렌토를 주차하려고 후진을 하는데, 있어야 할 주차턱은 없고 대신에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는 마을의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었는데, 심정적으로 낭떠러지였다. 상상만 해도 무서운데 더 끔찍한 것은, 갑자기 겁을 상실한 남편이 없던 도전 정신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우리들의 비명 소리에도 불구하고, 턱이 없는 라인 끝까지 차를 몰아붙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당장 나랑 애들이라도 내리고 니 마음대로 주차하라고 길길이 날뛰었고, 그 뒤로 기억에 없다. 그저 아직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을 확인했고, 세 여자의 비명 소리에, 지나가던 한 여자의 어리둥절한 시선만 여태 각인이 되었다. 다음날 나는 체크아웃 후에도 주차장에 나가지 않았다. 도롯가에서 바로 쏘렌토에 올라탔다.
물론 전날 밤, 아이들은 광란의 시간을 보냈다. 널찍한 방 한편에 자리한 박스 안에서 마이크는 남편과 나에게 넘어올 순간도 없이 아이들 차지가 되었고, 급기야 마이크가 고장 나서 남편과 내가 차 안에서 몇 날 며칠 연습한 노래들은 불릴 수 없었다. 결국, 넷플릭스에서 <K팝 데몬 헌터스>를 보다가 잠들었다.
마산으로 넘어가기 전, 몇 천 년 만에 둘째 고모에게 주소를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한 번 전화하면 기본 1시간 통화인 고모에게 차마 전화를 할 수 없어서 문자를 보낸 것인데, 답답증이 일어 문자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는 고모로부터 마산에서 이사 간 지가 언젠데, 지금은 남해와 극과 극인 울주군에 산다며 욕만 얻어먹고 전화를 끊었다. 할 수 없다. 고모를 보러 조만간 다시 내려와야지. 그냥 남해로 가야 한다.
드디어 해가 내려와 회색빛이 출렁 출렁이는 바다를 끼고 산비탈을 내려간다. 낯익은 구불구불한 길에 들어서자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푸근해지며 이제야 스르르 잠이 온다. 조수석 의자에 몸을 누이며 기분 좋게 잠이 들락 말락 하는데 남편이 갑자기 나보고 운전하란다. 몇 해 전, 하모니 펜션에서 후진하다가 필로티를 들이박은 기억이 떠올라 운전을 못 하겠단다. 늘 지나쳐만 갔던 비탈 한편에 자리한 커피숍 주차장에 내려 집 앞 메가커피숍의 2800원짜리 커피맛을 그립게 만드는 7천 원짜리 아이스 라떼를 한 잔 사서 나는 운전석에 앉는다.
도시에서 잘게 파편화된 일정을 소화하는 척박한 드라이브만 해온 내가, 이 야생의 산비탈을 잘 내려갈 수 있을지 꽤 염려되지만, 운전자는 멀미를 안 하니까 우선 해본다. 조수석에 앉은 남편은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쥔다. 우리 알랑방구를 잘 뀌는 첫째가 멀미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는 무사고니까,라고 말해준다. 둘째는 아무 말이 없다. 둘째 표정이 궁금해서 사이드 미러로 훔쳐보니, 심드렁하다.
어떤 노래든 원곡을 뛰어넘는 리메이크곡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나는 다양한 커버곡을 두고 전날 노래방에서 부르지 못한 나의 애창곡인 박성신의 ‘한 번만 더’를 틀고 핸들에 손을 얹는다. 우리의 떼창 속에 나의 쏘렌토가 달린다. 그래. 바다야, 간다아.
가까이 상주은모래비치의 작은 만에 자리한 신축 펜션 ‘썬앤문’ 이 보인다. 우리가 묵을 곳은 썬앤문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그 옆에 낡고 오래된 “하모니” 펜션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하모니를 인수해서, 이제 그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다는 부부의 깔끔한 손길이 느껴지는, 남편 말을 빌리자면 커튼마저 쾌적한 조화로운 펜션이다. 쏘렌토가 이제 외길에 들어서자 온통 구름으로 휘장 쳐진 천장 아래 작은 바다가 보인다. 썬앤문을 끼고 우측으로 틀면, 바로 “하모니”다.
필로티 기둥에 쏘렌토가 남긴 흔적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드디어, 남해에 왔다.
I keep saying
Over and over and over and over again.
Let it rain
Let it rain
-이번 여정에서 검색으로 새롭게 알게 된 곡,
레이첼 야마가타의 over and 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