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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비율 이대일 Mar 19. 2019

바다 밑 이야기

모든 건 같으면서 다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바다 밑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이다. 대륙붕을 따라 점차 깊어지는 수중 풍경이 차례로 나서더니 얼마 후엔 빛이 닿지 않는 캄캄한 공간에 스스로 빛을 내는 것들이 사방으로 떠다니고 있다. 꼭 눈송이 같은데, 하늘에 뜬 별 같았다는 서양 여인의 해설이 따라나선다. 심해 수중 탐사에 나섰던 여인이다. 베개를 괴고 비스듬한 자세로 화면을 바라보던 중 한층 신기한 장면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 앉는다. 호수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눈 내리는 풍경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이 채널로 들어선 이라면 그 누구라도, 한밤에 촬영한 지상의 호수라거나 눈 내리는 장면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그런 화면이었다.

바다에 내리는 눈, Marnie Snow. 사진출처:Helf Sea Biogeochemistry

 내레이터의 설명에 따르면 눈송이 모양의 것들은 식물 플랑크톤의 사체가 엉켜 붙어 바닥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것이고 호수는 염분 농도가 주위에 비해 다섯 배 정도 높기 때문에 한 곳에 고여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어 화산 활동이 활발한 태평양의 중앙해령으로 들어선 특수 잠수함이, 흰개미집 모양으로 불룩 솟아오른 기둥에다가 열수구에서 아지랑이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이곳에서 솟아나는 물의 온도가 섭씨 400도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것은 바다 거미라는 것도 보인다. 지상의 거미와 같은 모양의 다리에 털이 나 있어 가라앉지 않고 떠다닌다는데 새우나 게의 친척 뻘 생물이라고 한다.

 이 모두가 과학적 사실의 놀라움보다도 감성적 충격이 훨씬 큰 장면들이었다. 지상의 풍경이 해저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면 이것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극미의 세계나 광대한 우주에서도 흡사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TV 화면을 나선 후에도 심해의 호수와 설경 등을 오가며 떠오르는 생각의 아지랑이를 따라나서 보았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만물 만상은 지구나 우주 도처에서 유사한 형태의 반복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가령 같은 모양의 인편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솔방울이나 잣나무 열매를 비롯하여 개미나 벌 등 동종의 생물들이 서로 흡사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나뭇잎 또한 종류마다 유사성을 띄고 있어서 활엽수는 활엽수대로, 침엽수는 침엽수대로 종에 따라 서로 닮은꼴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고사리를 빼닮은 얼음결정도 있다. 어디 이 뿐인가, 바람이 만들어내는 사막의 모래 언덕은 도처에 비슷한 모양으로 반복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으며 냇물이 지어내는 모래밭 무늬나 파도가 그려내는 해변의 줄무늬 또한 그러하다.


 언젠가 경상북도 봉화 석천정사 앞 냇가 통 반석에 한가득 펼쳐진 물결무늬를 만나 감격스러워한 일이 있다. 이것은 어느 거인이 커다란 자귀로 바위를 일정하게 훌쳐낸 듯한 모양의 것으로서 물 빠진 강변 모래바닥에서 볼 수 있는, 움푹움푹 패인 물 발자국이었다. 그러나 이 당연한 현상이 놀랍기만 했다. 광대한 면적에 비슷한 형태의 사구(砂丘)를 수도 없이 만들어내는 바람처럼, 일정한 형태로 바위를 깎아낸 물길이 신비로웠으며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우주 만물은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서 거듭되는 패턴을 통해 자신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묘해 보였다.


 거북의 등이나 가뭄으로 갈라 터진 논바닥의 무늬는 같은 것이며 물고기의 헤엄과 새들의 비상 또한 같은 것이다. 그것이 정적인 형태건 동적인 현상이건 그 어떤 것도 유일한 건 없다. 미시세계에서 거시 세계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형태나 사건들이 종류와 크기를 달리해가며 무수히 되풀이되고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앞으로 생겨날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으며 여기에서 발생하는 일이 저기에서도 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자연계 만의 것이 아니어서 일상생활에서도 이 같은 일은 종종 일어난다. 가령 친구와 더불어 누군가에 대한 얘길 나누며 길을 가는데 마침 그를 만나게 된다든지, 차 안의 FM방송에서 세계적인 성악가의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우연찮게 그와 똑같은 이름의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 같은 게 그것이다. 이 같은 경험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우리의 경험을 모아본다면 그 사례가 허다할 것이다. 이것은 우연이라기보다 형태 반복과 똑같은 상황 반복이다.


 이 모든 건 같으면서 다르다. 세상에 같은 건 아무것도 없다.


눈송이의 결정도 정확한 대칭이 아니고 한 쌍의 쌍둥이도 결코 같지 않으며 우리의 몸조차 좌우가 각기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면서 같다. 생김생김이 비슷하며 생리작용이 같고 감정이나 정신작용이 같다. 이래서 각각의 부족이나 민족의 생김새가 그 조상과 유사하며 삶의 내용이나 방식이 과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인간사가 서로 비슷하고 각각의 역사가 서로를 닮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원자에서부터 지구나 행성 혹은 성운에 이르기까지 우주 만물은 대동소이한 것으로서 생멸을 거듭하고 있음에 이 패턴을 따라가 보면 세상 만물은 다르다기보다 오히려 같을 것이다.

출처 :inscc.utah.edu

 그러나 우리가 단순 반복되는 일이나 무늬에 쉽게 싫증을 내는 것처럼 우주 또한 변화 큰 반복을 통해 자신을 다채롭게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인간과 생물의 생김생김에 무수한 다양성을 새겨 넣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외관상 서로 달라 보이는 우리가 기본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존재며 우주의 만물 만상이 서로에게 투영되어 서로를 되풀이해내는 양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강조하는 개성이란 게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 건지 회의감 깊어진다. 개체성의 강조란 우리가 서로의 다른 모습에 크게 주목함으로써 삶의 지루함을 벗어내기 위한 집단적인 몸부림이거나 아니면 상업주의의 산물이  아닌가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감각의 세계에만 붙들려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바닷속에서도 눈이 내리니 하늘 어딘가에서는 유성의 비가 내리고, 어느 행성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눈이 흩날리고 있을 게다. 구름이 산이나 바다 혹은 동물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처럼 우주 도처엔 크고 작은 호수들이 펼쳐져 있을 게다. 그리고 지상엔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도 무척 많을 게다. 개체란 언제건 전체로부터 결코 분할될 수 없는 분리 불가의 존재로서 하나의 세포로 기능하며 동시에 사방에서 반복되는 어떤 패턴의 한 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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