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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비율 이대일 Jun 30. 2019

표해록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왜 죽게 되는가

 조선 후기 영조 때의 유관(儒冠) 장한철이 쓴「표해록」의 마지막 쪽을 나서며 이백 여 년 전의 그 시절 그 공간이 내게로 바투 밀려온 것만 같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놀랍고도 가슴 아픈 기록으로서 ‘사는 게 대체 뭔지...?’, 질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표류기였다.

 어린 날「15 소년 표류기」를 읽을 땐 흥미진진하기만 했는데 이건 소설이 아닌 탓인지 적잖이 긴장되었을 뿐 아니라 나 또한 장한철의 일행이 되어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가 하면 삶과 죽음을 오락가락하는 둥, 끔찍한 현실에 동참해야 했다.


 그 언젠가 알바노프의 북극 탈출기「위대한 생존」의 책장을 넘기면서도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 숨이 막혀오는 듯했는데 석 달간에 걸친 이 필사의 탈출 못지않게 「표해록」 또한 위급성과 긴박감이 대단하여 열 사흘 간의 고초가 나로 하여금 여간 마음 졸이게 한 게 아니다. 그러나 그 내용만큼은 간단한 것이다.


 영조 46년(1770년) 12월 25일, 고향이 애월인 장한철이 과거시험을 위해 제주항을 떠난다. 일행은 선비 2명에 선원 10여 명과 상인 17명 등 모두 29명. 그러나 이들은 육지를 30Km 정도 남겨두고 폭풍을 만나 사흘간을 표류한다. 그리하여 일본 유구 열도(琉球列島)의 호산도(虎山島)에 닿아 섣달그믐까지 나흘을 보낸다. 이듬해 정월 초사흗날 섬 인근을 지나던 중국의 안남 상선(安南商船)에 의해 구조되나 이들이 제주도 사람임을 알게 된 안남인들은 옛 탐라국 왕이 저희 태자를 살해한 일이 있다 하여 장한철 일행을 이들의 배와 함께 망망대해에 내버린다. 멀리 한라산이 바라보이는 곳에서였다. 정월 초엿새. 흑산 앞바다를 지나고 눈보라 폭풍 속에서 완도 동남쪽 20Km 지점의 청산도에 간신히 기착한다. 그러나 그동안 살아남은 열 명 가운데 두 명이 암흑의 섬을 기어오르다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사망하니 그간 물에 빠져 죽은 이 열아홉 명을 제외하고 생존자는 모두 여덟. 1771년 1월 6일로 생사의 표류는 막을 내린다.


 이 책을 읽으며 내게 무겁게 닻을 내려온 대목은 대략 서너 가지다. 그 하나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문제로서, 똑같은 위급 상황에서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왜 죽게 되는가 하는 문제다. 이것도 물론, 죽는 사람은 그가 죽음이란 현실 앞에서 마음을 다잡지 못하여 허둥대고 경솔했다든지 아니면 누구보다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든지 하는 표피적인 원인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겐 이것만으로 충분한 설명이 되질 않는다. 여기엔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는, 우리의 지혜로 헤아려지지 않는 보다 깊은 원인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국립제주 박물관_표해록

 


 또 한 가지는 꿈의 예시 성이다. 마지막 위급 상황에서 장한철은 거의 비몽사몽 지간에 소복 입은 여인이 자신에게 음식을 갖다 주는 꿈을 꾸고 이것이 현실화되는 경험을 한다. 일행이 청산도에 이르러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력을 회복하게 되었을 때 장한철은 꿈에서 보았던 여인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며 하룻밤 사랑까지 나누게 된다. 여인은 열일곱 살에 혼인을 하였으나 이듬해에 남편을 잃은 청상과부로서 유관과 하룻밤을 보낸 후 새벽닭이 울자 장한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어머니 친척집에 가 있으면서 낭자께서 과거에 합격하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 섬은 돌아보아야 할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아 적적하고 편지 받아보기도 힘듭니다. 그러니 어찌 이 섬에서 늙어 죽을 수 있겠습니까. 낭자께서 저를 버리지 않는다면 남풍이 불 때 좋은 소식이나 전해 주십시오. 저는 꼭 5년 기한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낭자께서 만일 기한이 지나도 오시지 않으면 그때는 다른 집안으로 시집가겠습니다.”


 또 하나는 살아남은 이들이 고향 제주도로 돌아간 다음 거개가 병이 들거나 죽어버린 일이다. 장한철 혼자만 완도에서 바로 서울로 올라가 과거시험을 보고, 낙방하여 나중에 돌아오는데 먼저 돌아온 표류자 일곱 사람의 행방을 수소문해보니 한 사람만 한라산 남쪽 어딘가로 가 있다는 얘기뿐, 두 사람은 병들어 있고 나머지 넷은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엄청나게 충격적인 현실이 정신과 몸을 크게 망가뜨렸음에서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적인 경험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와, 살아 있음 하나의 고마움에 대한 장한철의 얘기다. 


 “춥고 배고픔은 사람들이 근심하는 것이지만 바다 위에 떠있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배부르고 따뜻하다 할 것이요, 질병은 사람들이 모두 괴로워하는 바지만 바다 위에 있는 고통에 비하면 차라리 강녕(康寧)한 셈이지요. 내가 바다 위에 있던 때를 잊어버리지 않는 한, 하늘과 땅 사이의 어떤 물건이라도 나를 즐겁게 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어떤 일이라도 나를 즐겁게 하지 않을 것이 세상에서 득실(得失)에 급급하고 화복(禍福)에만 마음을 쓰고 근심할 것임은, 내 이야기를 듣고도 그대로일 것이지만, 그 양생(養生)에 있어서는 내 말이 아마 옳을 것이오.”


 장한철은 담담하고도 침착한 성격으로 모진 위험 속에서 일곱 명의 생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처음 올라서게 된 섬에서 기력을 회복한 후 완도에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과거 시험장 한양으로 올라간다. 물론 낙방하긴 하나 다른 이들처럼 쉽게 쓰러지지 않고 훗날 과거에 급제한다. 그는 말한다.


 “대저 사물에 통달한 사람은 복(福)에 의지함은 아나 기뻐하진 않으며, 한편 화(禍)를 감출 줄 알고 이를 근심하지 않으며, 또 무엇을 얻는다고 해서 마음이 들뜨도록 좋아하는 법이 없고, 잃는다 해서 마음이 상하도록 안타깝게 생각하는 일이 없지요.”


 스물다섯 살 때 남제주의 산방산에 올랐으며 스물여섯엔 한라산에 올랐던 사나이. 스물일곱 살에 향시에 합격하고 서울로 향하다가 태풍의 홍역을 치른 사나이. 그리하여 서른둘이 되던 1775년, 드디어 별시에 합격하여 제주도 현감이 된 사나이.


 그런데 내가 정작 궁금해하는 건 이 유관이 과거급제 후 청산도에서 하룻밤 밀월을 나눴던 그 여인을 과연 다시 찾았을까 하는 점이다. 과거에 급제한 것이, 여인이 기한 두었던 바로 그 5년째의 마지막 해였으니 말이다. 혹시 이 여인은 장한철이 5년째에 급제하리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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