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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비율 이대일 Jul 06. 2019

슬픈 꽃

 안녕하세요

 이쁜 봄, 예쁜 꽃들이 한창입니다.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제가 보는 꽃이라야 고작 운전하다

 신호에 걸려 잠시 잠깐 보는 것이 전부지만,

 벚꽃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좋으면 좋은 건데, 왜 슬프고 애잔한지,

 봄이란 계절이 참 슬프네요. 

강물은 길을 찾지 않는다_ 이대일


 햇살도 드맑은 아침나절, 이메일을 열었다가 마주친 졸업생 K양의 편지 앞 토막이다. 그렇지 않아도 갑작스레 터져 오른 꽃나무들의 몸치장에 부질없는 가슴앓이를 하고 있던 차에 이런 글을 받고 보니 사람의 마음은 모두가 한 가지란 생각이 새삼스럽다. 교정엔 이제야 벚꽃이 몽우리를 터뜨리기 시작했지만 연미색 빛깔 고운 미선나무는 벌써 꽃잎을 떨궈냈다. 봄이다 싶으면 언제건 기쁨과 슬픔을 한꺼번에 피워 올려 사람을 심란하게 만드는 녀석들이다.

강물은 길을 찾지 않는다_ 이대일


 근자에 이르러서는 이런 봄꽃만 아니라 싹조차 애잔하게 느껴져 내가 늙어가고 있는가 보다 생각하고 있던 터이다. 그런데 이제 한여름의 나이인 K양 역시 내게 꽃의 슬픔을 전하고 있으니 나도 저 즈음에 꽃나무의 애상에 젖은 일이 있었던가, 기억을 뒤져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내게도 적잖았다. 이런 느낌을 누구에게 건네본 일은 없지만 꽃에서 묻어 나오는 슬픔을 품기 시작한 게 꽤나 오래된 일인 듯싶다. 


 언젠가 이른 봄, 학생들과 강원도 산골로 MT를 갔을 때다. 메마른 숲에서 발그레한 꽃망울을 부퍼 올린 진달래를 마주치고는 이를 배경으로 학생들 사진을 찍어주다가 가슴 아릿해지는 느낌을 받은 일이 있다. 이 때문에 장난스러운 포즈를 접고 앞서 나가는 학생들을 내버려두고 점점이 돋아난 키 큰 꽃나무를 바라보며 애조 그닐거리는 감정을 삭여냈었다. 


 어느 해인가는 겨울 숲 그대로의 냇가에 화사하게 피어난 산벚나무 한 그루의 올연한 자태에  순간적인 환희감과 더불어 야릇한 슬픔을 느낀 일도 있다. 이는 아마도 벚나무 주변에 모여 선, 시든 억새 무리 때문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늘어진 가지마다 닥지닥지 하얀 꽃을 붙이고 나선 조팝나무를 따라 냇가 오솔길을 오를 때도 그랬다. 아직 싹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숲 속에서 그늘을 마다하지 않고 불긋불긋 자태를 드러낸 진달래꽃을 마주했을 때도 그랬고 인적 없는 산길에서 제비꽃 무더기를 만났을 때도 그리고 양지 녘 풀밭에 피어난 민들레꽃이나 절벽 바위틈에서 갸웃이 얼굴을 내민 할미꽃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아니, 봄도 오기 전, 어느 서원 마당에 짙붉은 빛깔로 숭얼숭얼한 동백꽃을 만났을 때도, 박태기나무의 핑크빛 빨강 꽃을 지날 때도 그랬다. 모두가 화려하고 호사스러우면서도 여리고 애연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때론 귀엽고 앙증맞아 보이면서도 가슴 아프고 애틋한 것들, 모두가 꽃비가 되어 허공으로 흩날릴 것들이었다. 

강물은 길을 찾지 않는다_ 이대일




강물은 길을 찾지 않는다_ 이대일




강물은 길을 찾지 않는다_ 이대일


 소산(消散)을 마다하지 않고 화들짝 그 얼굴을 드러내는 대지의 빛, 빛깔들. 잠깐 새 돋아났다 순간으로 사라지는 무지개. 그 누군들 이 호사 속에 숨은 소멸의 빛깔을 읽어내지 않으리오. 소경조차 아리따운 향취 속에서 보이지 않는 눈물빛을 보아내리라. 그 언젠가부터는 꽃이나 새싹뿐 아니라 유모차의 아기들을 보게 되어도 귀염성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움터나곤 했는데, 생명을 가진 것들 모두의 비눗방울 같은 운명 때문이리라. 신산스러운 생명의 길 때문이리라.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쓰고 그 무언가를 아무리 쌓아 올려도 결국은 무와 공으로 되돌아가 버리는 때문이리라. 개미지옥에 빠져 아무리 기어오르고자 해도 미끄러지기만 하다가 결국은 잡혀 먹히고 마는 개미 신세와 다를 바 없음을 알고 있음에서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보다 현재를 현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닫힌 눈길 때문일 게다.


 상반된 감정이 휘녹 아든 K양의 이메일을 거듭 읽다 보니 그 언젠가 메모를 해둔 누군가의 한시

 두 줄이 따라 오른다.


흰 구름과 꽃다운 풀이 사람을 슬프게 만드니  白雲芳草使人愁

흐르는 물과 떠가는 구름, 만사가 공(空)이로구나 流水浮雲萬事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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