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의 비율 이대일 Jun 30. 2019

빗방울

우리의 마음 작용

 

 흐리긴 했으나 비가 오실 것 같진 않은 날씨다. 하나 버스에 오르니 갑자기 컴컴해지며 알 굵은 빗방울이 유리창을 때려대기 시작한다. 빗발은 삽시간에 촘촘해지며 창문으로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그러다가는 얼마 후 성글어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창유리에 어린 물방울이 아래쪽으로 꼼질거리다가 서로 합쳐지며 냅다 빠른 속도로 흘러내린다. 작은 물방울들이 서로 한 몸 되는 걸 유심히 살펴보니 이건 단순히 합쳐지는 게 아니라 서로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것 같다. 유리창과의 마찰에 힘이 부쳐 조금씩 미끄러져 내리던 녀석이 제 길에 놓인 작은 것을 만나면 무슨 먹이라도 잡아먹듯 덥석 뭉쳐 들곤 하는데, 물방울이 꼭 살아있는 것만 같다. 이것들이 띄엄띄엄 흘러내리는 정경을 바라보다가 몇 년 전 국제 디지털 아트전에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느 서양인의 작품으로서, 분무기로 만들어지는 물방울이 점점 커지며 조금씩 미끄러지다가 다른 물방울과 한 살 되며 급속히 사라지는 장면이 벽면에 크게 투사되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물방울이 사방에서 자라 오르다가 일정한 크기가 되면 일시에 흘러내리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때도 이것들이 서로 달라붙는 순간을 바라보며 물방울도 자석 같은 기운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물도 완연 살아있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지금은 더욱 그렇지만, 유생물과 무생물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무기물 역시 나름의 의식 같은 걸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다못해 원자나 분자도, 인간처럼 높은 단계의 수준은 아닐지언정, 최소한의 인지나 반응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소와 산소의 결합물이라는 물 또한 박테리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위 상황에 반응하는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범심론(汎心論)적인 생각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 언젠가 에모토 마사루(江本勝;1943~2014)가 물에다가 사랑이나 미움 등의 언어를 부여하여 각각의 물 분자 형태가 달라짐을 사진으로 소개한 일이 있고 이것이 한동안 시중에 회자된 일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을 우리가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건 아니건 우리 인간의 언어나 마음이 물뿐 아니라 유기물과 무기물을 막론하고 그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각기 이에 상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만큼은 상당히 수긍하고 있는 편이다. 인도의 성자 요가난다(Yogananda: 1893~1952)에 따르면 생각이란 에테르 속에서 움직이는 매우 섬세한 진동이다.


 이게 어디 물 만일까. 어느 책에서였는지 출처가 막연하긴 하나 캘커타 모 대학의 인도인 물리학자가 20세기 초 영국에서 개최된 세계 물리학회에서 쇠가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글을 발표하여 장내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도 있다는데, 물이건 돌멩이건 아니면 금속이건 세상 만물이 원자의 구성인 다음에야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되는 일이다.


 새나 꽃과 얘기를 나눴다는 프란치스코(Pope Francis ; 1936 ~ ) 성인의 말은 사실일 것이며 우리 같은 속인도 일정한 훈련을 거듭하면 이 같은 일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동식물과 얘길 나눈다는 게 에너지 교감인 다음에야 그것이 굳이 우리 인간의 언어일 필요는 없을 터이다. 언어가 생각에서 비롯되고 생각의 뿌리가 마음에 두어져 있음을 염두에 둬본다면  마음의 때가 벗겨질 때 생물과의 소통은 언제건 가능할 것이다.


 언젠가는 영성(靈性) 관계 책을 읽다가 인간의 마음이 무생물에게 작용하는 실예를 접하고서 이를 직접 시험해본 일도 있다. 즉 먼 하늘의 작은 구름 덩이를 집중해서 바라보며 ‘사라지라’고 주문처럼 계속 반복하면 얼마 후 이것이 정말로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서너 번 반복해보았는데 때마다 실제로 사라지기는 했다. 이 때문에 주변의 아는 이에게도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하여 이들 역시 그랬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전해 들은 일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껏 ‘먼 하늘의 작은 구름 조각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지라고 하지 않았어도 주문을 외워댄 시간 정도면 저절로 지워졌을 거야’하는 정도로 반신반의하고 있는 편이긴 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 작용만큼은 굳게 믿고 있는 터이다. 마음의 움직임이란 특별한 심적 파동이자 에너지로서 그 상태가 주변 에너지 덩어리의 질을 변화시킨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경험하는 일이다. 가령 낯선 사람들과의 모임에 자리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선심(善心)과 아량의 마음을 갖추고 있으면 생면부지의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게 되는 일이 자연스레 일어난다. 그 반대의 경우엔 타인으로 하여금 소원함이나 경계심을 유발하는데 이는 동식물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네 마음처럼 간사스레 요동을 쳐대는 것도 세상엔 없으리라. 마음은 호면과도 같아서 나뭇잎 하나만 떨어져도 바르르 떨어대는가 하면 돌덩이 하나라도 빠져들 경우엔 경기(驚氣)라도 일으키듯 소리와 거품을 내지르며 오래도록 굵은 파문을 그려낸다. 가벼운 칭찬 한 마디에 희희낙락해하는가 하면 시시껍절한 지적 하나에 미움이나 분노감을 드러낸다. 이런 게 마음이고 보면 생물 최고의 수준이라는 인간의 의식은 우리가 이를 다스리는 힘을 갖추지 못하는 한 형벌 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의식 덕분에 물을 알게 되고 우주의 비밀까지 한 꺼풀씩 벗겨내고 있으니 혹시 마음을 지워버리면 한 종지의 물과 얘길 나누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전 08화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