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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버드 Nov 09. 2019

언제나 네 안의 아름다운 것을 보렴.

 살다 보면 뒤를 보지 말고 앞을 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하지만 힘에 부쳐 걸음이 느려질 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나간 어느 좋은 날에 기대어 마음이 쉴 수 있을 때, 그때 얻는 힘이 있다.


얼마 전 일로 알게 된 사람을 만나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상대를 무시하는 언행으로 기분을 불쾌하게 하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싫은 사람도 담담하게 만나야 하는 일이 어른의 일이다. 가라앉은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꼿꼿이 창밖만 보았다.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고 붉은 브레이크 등이 도로에 일렬로 늘어선 채 앞서거니 뒤서거니 점멸하고 있었다. 버스가 정차하고 사람들이 탄다. 그중 앳된 다정한 연인이 눈에 띄었다. 한 칸 남은 자리에 여자가 앉고 남자는 서서 손잡이를 잡고는 마주 보며 웃는다. 둘의 모습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불쑥 오래전 기억이, 내게 있었던 어느 하루가 떠올랐다. 함박눈 내리던 겨울밤. 스물한 살의 나는 남자 친구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고 눈바람은 점점 거세져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었다. 텅 빈 정류장에는 그와 나 둘 뿐이었다. 우리는 바람을 등지고 꼭 껴안은 채, 서로의 체온에 몸을 녹였다. 한 살이 어렸던 스물의 남자 친구는 무섭게 달려드는 추위에 몸을 덜덜 떨면서도 의젓하게 자신의 머플러를 풀러 내게 둘러주었다. 

  

어른이 되어 밥벌이를 하면서 나의 날들은 자꾸만 힘없이 넘어졌다. 회사 화장실에서 몰래 울던 날, 식은땀을 흘리며 혼자 끙끙 앓던 날. 그런 날이 이어지며 내 안에 있던 것들이 자꾸만 길을 잃고 주저앉았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속 오래된 방에서 하나 둘 기억을 꺼냈다. 사랑하는 사람의 머플러를 두르고 따뜻한 온기를 느끼던 스물한 살의 나를 꺼내고, 발그레 미소 짓던 날들의 행복을 보았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은 언제나 우리를 다시 일으킨다.


기억에 잠긴 동안 내가 탄 버스는 어느새 집 앞 골목에 도착한다. 옷깃을 여미며 길을 올라 빈 집의 문을 연다. 서향 창으로 들어온 마지막 노을빛과 우리 집 고양이가 나를 반기며 마중 나온다. 낮 동안 있었던 불쾌한 일은 그새 저 멀리 자취를 감추었다. 


세상은 나를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로 여기겠지. 하지만 난 기꺼이 모래알이 되어 바다를 보고 별을 볼 거야. 지나온 날이 말했다. 무엇이 되느냐보다 무엇을 보는지가 중요한거지. 


언제나 네 안의 아름다운 것을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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