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건 격려
정오를 앞두고 J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런치 예약도 없고 날도 좋은데 데이트나 할까?"
런치 예약이 비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불안한 일이지만, 그 참에 데이트라니 자영업이라 가능한 깜짝 이벤트다. 하지만 오늘은 쉽게 오지 않는 그 이벤트에 응할 수가 없다.
"오늘은 안돼. 브런치 발행일이야."
짐짓 단호하게 그렇게 잘라내고 봄기운이 슬슬 묻어나는 화창한 창밖을 바라보며 컴퓨터 앞 의자에 엉덩이를 꾹 붙였다. 왜 봄이 스프링인지 알겠다. 금방이라도 엉덩이가 튀어 오를 것 같다.
브런치스토리에 접속해서도 한참을 밍그적거린다. 괜히 뉴스 기사도 보고 음악도 틀어본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번 주, 발행할 수 있을까.
주말을 넘기는 시점부터 매번 하는 생각인데 월요일이 되어도 '무엇을 써야 될지'도 딱히 떠오르지 않을 때가 부지기수다. 왜 나는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을 만들까.
물론 환경적인 영향이 있다. 이번 주는 시아버지 칠순으로 지방에 다녀왔고 홀직원이 일을 그만두어 가게에 더 투입되었다. 집안일도 해야 됐고 고망이도 케어해야 했으며... 아니 그래도 시간을 짜내려면 짜낼 수 있었다. 근데 그러지 않았지.
금요일까지는 여유를 즐기자는 생각뿐이었고 주말에는 밤 시간을 확보해야 했으나 J와 친목을 다져보겠다고 야식 시간을 가져버렸잖아? 야식 먹고 컴퓨터 앞으로 가려다 넷플릭스 새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가 재미있어서 그만 정주행까지 하고 말았고. 그리고는 "월요일에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실속없는 가장처럼 큰소리쳤지.
소위 말해 초심이란 것을 잃은 것이다. 브토리를 시작하던 초반에는 잠을 팔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과정 속에서 글이 하나 나왔다. 노력 없이 어떻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냐며, 어떻게든 좀 완성도 있는 글을 쓰고 싶어서 초자아의 엄격한 관리 감독 하에 애를 썼더랬다. 그런데 지금은 초자아가 어디 장기 여행이라도 가버렸는지 미루기를 반복하고 있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인지해 방법과 방식을 찾는 것을 '메타인지'라고 한다던데 나는 현재 메타인지가 떨어진 건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엄하던 초자아는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도. 그래서 챗GPT와 이야기를 나누어봤는데 의외로 위로를 받았다.
그냥 내가 게을러서, 내공이 부족하여, 꾸준히 하는 것이 원래 쉽지 않아서, 동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런 내가 알 만한 자책을 줄이면서 꾸준히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해주다니, 기계가 뭐 이리 다정한가.(J보다 다정해!) 심지어 벼락치기에도 내면의 강렬한 생각들이 필터없이 걸러져 나오는 이점이 있다며 그것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었다.
그러고 보면 벼랑박에 몰려나온 글이 나에게 더 절실한 고민이나 주제였던 일이 많았다. 그래서 요즘엔 주제를 먼저 떠올리기보다는 아무렇게나 키보드를 놀리다가 실타래가 풀려 나오는 그 생각을 쫓아가는 편인데 고맙게도 그것을 무시하지 말란다.
오늘 글도 그래서, 발행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시작했지만 나름의 길을 찾았다.(찾은 거 맞나?) 그러면서 생각했다. 고민도 걱정도 속 안에 가둬둘게 아니라 써내야, 그것도 광장에 써내야 하나의 정리된 생각으로 완성된다. 이것이 지구의 종말이나 나의 종말과 함께 펑하고 사라질는지는 몰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