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심연의 시#18
여보세요, 지금, 여기,
밤이, 오고 있어요,
빨리, 좀, 와 주세요,
닫아 놓은 창으로,
여며 놓은 커튼 사이로,
밤이, 지금,
지금, 들어와요.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에서는
고인 눈물이 떨어지지도 못했는데 그만
밤이 와서 내 앞에서 숨이 막히도록
날 숨을 토해내던 당신의 눈망울에 어린
고통을 다 새기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벌써 밤이 오고 말아 떠나간 눈을 다
잡지도 못했는데 날이 새도록 외롭다고
말하던 당신의 어깨 동선이 들썩이던
박자를 다 세지도 못했는데 날이 저물고 있어
밤이, 오고, 있어요
여기요,
지금요,
캄캄한 독 안에서
혼자를 무서워한다는
당신이 걱정되어
나가보고 싶지만
그러기엔 벌써,
나의 사지가
이 밤에
자장가처럼
조근조근히
파 먹히고 있어요
여보세요, 들려요,
밤이, 들려요,
벌써, 왔어요,
빨리, 어서, 좀,
아,
지금, 여기,
「지금, 여기」는 상실의 경험을 ‘밤’이라는 이미지에 응축하여, 몰려드는 부재의 공포와 호흡의 곤란을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밤이 오고 있어요”라는 구절은 단순한 시간의 서술을 넘어, 삶을 덮쳐오는 상실의 불가피성과 그 체험의 압도성을 은유한다.
이 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다 하지 못한 말’의 지연과 단절에 있다. 구절이 길게 이어지며 호흡이 막히는 듯한 문장은 읽는 이를 긴장 속에 머물게 하고, 끝내 표현되지 못한 고통의 파편들을 생생히 드러낸다. 동시에 ‘당신’이라는 호칭은 특정하지 않은 대상성을 띠며, 개인적 경험을 넘어 보편적 상실의 정서로 확장되는 가능성을 확보한다.
「지금, 여기」는 애도의 실패를 숨기지 않는다. 잃어버린 존재를 온전히 불러내지도, 끝내 작별을 마무리하지도 못한 채, 시적 화자는 부재의 그림자와 더불어 현재를 견딘다. 그 과정에서 시는 ‘애도의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 속에서 여전히 살아내야 하는 현재의 자리’를 동시에 응시한다. 이 긴장과 정직함이야말로 작품의 가장 큰 힘이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상실을 투사하고, 다시금 애도의 언어를 모색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