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심연의 시#17
네 그림자를 업고
슬픔의 지평을 더듬어볼까
눈물의 언저리에 걸텨 앉아
메마른 심장들이 널부러진 묘지 위
우리
저녁은 생기를 빼앗겨도
좀체 온기 잃는 일이 없으니
괜찮지 않아도 돼
안식의 꿈살에서 물장구치며
흘러가는 울음들에게 인사하자
버려지는 날
더 이상 미워하지 말아줘
좋아하는 게 없어도
여전히 좋아지는 걸
모든 눈물이 이름을 갖지 않아도
여전히 눈물이야
실망뿐인 날에게도
실날 같은 위로를 걸치기로 해
오늘은
네 눈물을 안고
사라져가는 숨을 따라가볼까
아직 괜찮지 않은 날들에게도
이제
자주 눈물을 맞추고
인사해주기로 해
작별도 새지 못한 지상의 울음들에게 나눠서
우리
이 순간부터는
슬픔의 천국에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하자
"「지상에 머무르는 법」은 슬픔을 단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안아주는 의례로 전환시키는 시다.
초반의 이미지들—“네 그림자를 업고 / 슬픔의 지평을 더듬어볼까”—은 슬픔을 타자의 짐처럼 어깨에 올려놓고 함께 이동하는 몸의 윤리를 제안한다. 이 ‘업음’은 무겁지만 자발적이고, 그래서 곧 연대의 동작으로 읽힌다.
중간 연에서 “눈물의 언저리에 걸텨 앉아”와 “메마른 심장들이 널부러진 묘지 위” 같은 표현은 멜랑콜리의 풍경을 장면화한다. 다만 그 풍경은 폐허로만 남지 않는다—“우리 저녁은 생기를 빼앗겨도 / 좀체 온기 잃는 일이 없으니”처럼, 상실 속에서도 지속되는 온기와 연대가 병치된다. 시는 슬픔의 빈자리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작은 보살핌들을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점은 반복적 위로의 기술이다. “괜찮지 않아도 돼”, “좋아하는 게 없어도 / 여전히 좋아지는 걸”, “모든 눈물이 이름을 갖지 않아도 / 여전히 눈물이야” 같은 구절들은 일종의 의례적 문장들로 기능해, 독자와 화자 사이에 부드러운 규범을 만든다—그러니 독자는 이 시에서 지침을 얻는다: 슬픔을 관리하는 방법이 아니라, 슬픔과 함께 머무르는 법을 배운다.
종결부의 약속—“우리 이 순간부터는 슬픔의 천국에 /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하자”—는 역설적이면서도 아름답다. ‘돌아오지 않는’이라는 표현은 완전한 부정(消滅)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문맥상 이는 “슬픔을 끌어안고도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가리킨다. 즉 시는 소거가 아니라 변형과 동행을 택한다.
전반적으로 이 작품은 서정적 위로와 실천적 다정함을 결합해, 읽는 이로 하여금 슬픔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신 ‘어떻게 머무를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이 지상에 머무르는 자들이 머무르는 법으로서, 시가 내보이는 생존 방식의 한 가지 예이다. 지상은 슬픔이고, 이 시는 결국 슬픔에 머무르는 법을 이야기한다. 슬픔에 잠길 때마다 찾아서 꺼내보고픈 지침서이다."
여전히
슬픔은 지상에 있고,
여전히
저는 지상에 살고 있습니다.
슬픔과 이웃하며 오순도순 지내는 날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