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이 깨워준 현실감각

돈 & 엄마 & 건강

by 크리잇터

도시락이 현실감각을 깨워줬다. 지금까지 나는 세상 물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어릴 때는 엄마가 해주신 밥과 국, 반찬을 당연하게 먹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선 한 끼에 만 원씩 쓰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게다가 짜고 단 자극만이 맛의 척도라고 생각했다. 입에 착 감기는 음식이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도시락이 내가 놓쳐왔던 것들을 하나둘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우선 돈에 대한 감각이 달라졌다. 점심만 밖에서 사 먹는다 쳐도 일주일에 5~6만 원은 우습게 나간다. 하지만 그 돈으로 장을 보면 2주 치의 식재료 및 음식을 살 수 있게 된다. 물론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하는 과정이 번거롭지만, 직접 만들어 먹는 재미와 뿌듯함이 예상외로 크다. 유튜브에서 해보고 싶은 레시피를 발견하면 그에 필요한 재료들을 미리 컬리나 쿠팡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그리고 외식의 유혹이 뻗치거든 장바구니 앱을 열어본다. 똑같은 돈에 양은 훨씬 많고, 직접 요리하는 재미까지 보너스로 따라온다. 외식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렇게 통장 잔고를 지킨다. 아마 우리 엄마도 이런 이유에서 외식보단 집밥을 선호하지 않았을까.


아마 내가 INFP라서 그런 거일 수도 있으나, 도시락을 싸면서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해왔던 반찬 고민은 고작 1주일에 1-2번이지만 어머니는 최소 3-4번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30년 넘게.

게다가 그땐 컬리나 쿠팡도 없었다. 직접 장까지 봐서 다 들고 와야 했으니, 그 고민이 얼마나 무거웠으랴.

그 무거운 고민이 담긴 반찬들 앞에서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왜 투정이라는 단어 앞에 반찬이 붙게 되었을지 그려진다.


어머니가 늘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은 너무 짜고 달아. 집밥이 최고야”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단순히 비싼 외식값이 아까워서 하는 소리인 줄만 알았다. 근데 그건 말 그대로였다. 정말 짜고 달다. 밤이 되면 자꾸만 물을 찾게 된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얼굴이 '땡땡' 부어있는 걸 느낀다. 피부에 팽창감이 느껴진달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눈이 작아 보인다. 하지만 도시락을 싸면서 내 입맛은 점점 순해졌다. 외식할 때 그 맛을 온전히 즐기기보다는 그 뒤에 벌어질 일들이 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도시락 생활을 하며 내 몸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체중은 10kg 넘게 줄고, 부기가 빠졌다. 덕분에 운동에도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다양한 요리법을 익히며 한층 더 건강한 삶을 지향하게 되었다. 도시락으로 시작한 선순환시스템이 더 잘 굴러가고 있다.


도시락은 내가 무심코 흘려보내던 것들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어머니의 손길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리고 내 건강이 얼마나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는지 말이다. 앞으로도 도시락 혹은 집밥에 더 애정을 쏟을 예정이다. 매 끼니를 삶을 소중히 여기고 내 몸을 돌보는 과정으로 삼고 싶다. 도시락을 통해 깨달은 이 현실감각이, 내 삶에 오래도록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keyword
이전 09화매력적인 김씨